방송자율성 어디로 갔나
  • 정리.·김당 기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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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두·한완상 교수 대담/“가진자의 잣대로 재면 안된다”

 강현두 : 최근 <땅>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도중하차된 것과 관련하여 과연 방송이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지, 또 방송민주화가 아직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방송의 자율성을 다시 상실해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큰 것 같습니다. 방송민주화를 추진했던 중요한 기간에 한교수께서는 방송위원으로 활동하신 적이 있으니 그와 관련해 말씀해주시죠.

 한완상 : 단적으로 말해 <땅>이라는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지배세력이 역사적으로 갖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시다시피 제1공화국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권력층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그래서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는 문제는 빈부의 심각한 격차, 부정한 불평등입니다. 그것도 땅을 중심으로 한 불평등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 뒤 미군정에서의 토지정책이 실패한 구조적인 잘못에다가 최근 토지 공개념 정책이 무산되고 그와 더불어 부동산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층의 부도덕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데다가 수서사선까지 겹쳐 땅을 중심으로 한 ‘가진자’와 ‘못 가진자’간 격차가 더 심각하게 부각됐습니다. 국민이 해방 뒤 지금까지 재생산돼온 불평등구조에 대해 심각하게 혐오하고 있는 마당에 MBC가 <땅>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것이죠. 땅이라는 용어 자체가 총알이 ‘땅’하듯이 국민 가슴에 와닿는 문제거든요. 시의적절하게 우리 사회구조와 잘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지배계층에서 보자면 자기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민중쪽에서 보자면 자기들의 울분을 드러내준 드라마인 셈이죠. 그런데 이 드라마가 방송위로부터 경고를 받았을 때 국민은 이 경고를 한 오락물에 대한 경고로 보지 않고 우리 역사의 치부를 극복해야 된다는 국민의지에 대한 경고로 보는 것이고 그런 권력층의 치부를 웅호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러니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문제가 될 것으로 짐작됩니다.

 강 : 물론 보도된 바에 따르면 방송사쪽에서는 당초의 기획외도와 달리 정치드라마로 변질됐기 때문에 서둘러 끝내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방송사 발표와는 다른 이유로 끝내게 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치드라마는 그렇게 빨리 끝내야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따져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땅>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정치를 다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방송의 조류가 사실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거든요. 그런 추세로 보자면 <땅>은 현재 방송의 경향에 맞춘 새로운 포맷으로 등장한 것인데, 정치드라마이기때문에 안된다는 것은 방송드라마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 외압의 주체와 관련해서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 우리나라 정치가 표류하는 중에서도 5공회귀라는 일정한 방향으로, 즉 언론을 권력에 종속시켰던 가장 전형적인 정권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그런데 <땅>의 중단 사태는 그런 우려와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외압의 상황적 증거가 더 보강된 셈입니다.

  : 그런 얘기를 내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중단된 이유 중 하나는 현존하는 정치인들이나 이른바 ‘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진다는 데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해봅니다. 사실 구체적으로 그것을 암시하는 것이 바로 첫회분이 방영되었을 때 나온 경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빈부격차를 드러내고 뉴스장면을 썼다는 게 경고 사유였는데, 사실 전 대통령이 나오는 등 뉴스장면을 쓴 것은 종전의 드라마 기법과는 다른 새로운 드라마 기법이고 근래에 유행하는 이른바 다큐드라마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거든요. 더구나 다큐드라마의 생명은 실명 인물과 실재 사건을 다루는 것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한 : 그런 사람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느냐 하면 토지분배 과정에서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 냉전논리 또는 반공이라는 이념적 경직성을 갖고서 지배집단의 자리를 유지해온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연속물을 끝까지 다 보지도 않고 한두번 보고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처럼 여기는 건데, 왜 그런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공공기관인 방송위원회가 대변해서, 그사람들이 보는 공공성이라는 잣대를 갖고서 그 드라마를 재느냐 이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방송위원회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는 거지요. 물론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해서 MBC라고 하는 거대한 언론 기업이 드라마를 즉시 중단한 것도 문제입니다.

 강 : 방송의 발전을 위해 있는 방송위원회가 다큐드라마의 속성상 사실을 다루게 되는 당연한 점을 문제 삼고 있으니, 그점이 바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신문·잡지·논픽션 소설에서는 당연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텔레비전에서는 이제 막 정치드라마의 모습으로 시도하고 있는 건데 갑자기 적신호를 받은 거죠.

 한 : 쿠데타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처들어가는 데가 방송국 아닙니까. 권력자에게 있어 방송매체는 반드시 권력이 잡아야 한다. 말로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그런 강박관념이 있는 겁니다. 특히 비민주적 방식으로 집권했거나 민주적 방식으로 집권했더라도 권력의 도덕성이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에는 더 방송·전파매체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뉴스부분이 아닌 드라마 같은 것까지 통제하는 경우는 명백히 정치적 후진국이라는 증거란 말이죠. 방송위원 선출 자체가 방송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없는 방법으로 돼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에는 방송위원이 12명이었는데 야당몫 2명을 뺀 10명은 친여권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단 말입니다. 방송위가 KBS 이사를 뽑게 되어 있는데 이사를 뽑을 때 방송위원에게 암시나 권고의 수준에서, 혹은 명령 수준에서 이런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다는 압력, 곧 외압이 있었단 말입니다. 또 방송위가 구성되어 첫날 위원장을 뽑을 때 보니까 완전히 다 각본이 짜여져 있어요. 누가 제청하고 누가 되게끔 마치 드라마처럼 각본이 마련되어 있더라구요. 지금의 방송위원회는 그때보다도 훨씬 더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때는 공익자금을 최종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하부기관의 눈치를 봐야하고, 심의기능만 확대된 셈입니다.

 강 : 문제는 방송위라는 독립된 국가 심의기구가 개개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포괄적 심의기능을 가진 방송위에 정책심의 기능은 없고 프로그램 심의 기능만 있다 보니 더욱 국가가 간섭하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두가지가 독립,분리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 방송위의 심의기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인데 강화 그 자체는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정부당국 또는 정치권에서 개별,집단적으로 어떤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 불평을 방송위원이나 심의위원에게 했을 때, 그 불평을 압력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심의로 흘러들어가게 돼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방송위원 스스로가 외압에 약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외압을 환영하고 초청하는 자세라고 보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 자세를 가진 방송위원들이 강화된 심의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 예전과 달리 자회사나 독립프로덕션 제작체제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제작관행이 또 다른 통제장치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유선 텔레비전이 들어오면 독립프로덕션을 운영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텐데 앞으로 독립프로덕션이 1백개쯤 생긴다고 가정해볼 때 정부로서는 ‘분할통치’하기에 아주 좋을 겁니다. 그래도 KBS MBC 같은 큰 방송사의 경우 방송민주화 과정에서 드러났듯 국가가 통제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는데 앞으로 조그만 독립프로덕션은 국가의 상대가 안된다는 거죠. 따라서 지금 일반 시청자들은 독립프로덕션이 많이 늘어나면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만 이런 작은 독립프로덕션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과연 더 좋을 것인지 의문입니다.

 강 : 본격적인 독립프로덕션 시대로 접어들게 될 때, 아무리 독립프로덕션이 제작을 독립적으로 맡는다 해도 방영 자체를 큰 방송사가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형식상 예속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제작과 송출의 전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독립프로덕션이 아닌 한 참된 독립프로덕션이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또 하나는 이번 경우에서도 나타났지만, 모회사가 자회사간의 계약관계가 아직은 정립되지 않은 탓에 큰 갈등없이 프로그램 제작이 중지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약관계가 확립되면 모회사가 함부로 자회사에 계약에 위배되는 결정을 강요하지 못할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 덩치가 큰 양대 방송사와 권력과의 관계는 아직도 좋지 않은 편인데, 앞으로 독립프로덕션이 많이 생기게 되면 독립프로덕션에 종사하는 제작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연합노조를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중적인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모회사의 압력에 굴복해 계약이 파기되는 문제 즉 자신들의 작품이 방영 안되는 문제에 대해 싸울 것이고, 또 하나는 권력과의 싸움이라는 이중부담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섣부른 제재를 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용 독립프로덕션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 지금은 드라마도 픽션의 세계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사실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드라마를 오락물로만 받아들이는데 사실은 드라마도 저널리즘이고 역사입니다. 사실에 대해 시청자의 욕구가 커진 탓입니다. 그런 점에서 ‘땅 사태’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어두운 징조를 드리운 것입니다.

  : <땅>이라는 다큐드라마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국사의 비극적 일면을 묘사한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제재를 당함으로써 이것 자체가 부끄러운 역사가 된 것입니다. <땅>은 역사에 대해 한편의 드라마였는데 <땅>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한국 매스컴 역사에 오점을 남기고 이 세대의 언론정책을 관장하는 모든 기관과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역사의 증거물이 됐다는 겁니다. 이 역설적 교훈 앞에 방송 관계자들은 옷깃을 여미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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