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드라마<땅>은 지난 반세기의 역사적 격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명의 전형적인 주인공과 이들 가족의 삶을 통해 현대사의 질곡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고지식한 이상주의자인 장건식(길용우 분)과 냉혹한 현실주의자인 장대식(오지명 분), 그리고 그 중간에서 늘 고민하나 결국 힘과 돈에 굴복해 장대식을 따르는 기회주의자 윤기현(최낙천 분). 이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대와 더불어 역전을 거듭하는 가운다 왜곡된 ‘땅’의 역사가 펼쳐진다.
서막 ‘오늘의 땅’은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극단적 대비를 통해 부동산투기와 빈부격차로 얼룩진 오늘의 사회현실을 고발한다. 영남 대지주의 아들로 젊은 날 문학청년의 이상을 좇던 장건식은 산동네 판자촌에서 영락한 노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일류대학을 나온 막내아들은 현실적응에 실패해 떠돌고 딸은 가난이 지겨워 가짜 대학생 노릇을 하며 룸살롱 호스티스가 돼 재벌들과 어울린다.
강남의 땅재벌 장대식 일가의 삶은 이 시대 졸부들의 도덕적 붕괴를 폭로한다. 사장인 아들 강(조경환 분)은 유력한 정치인들과 어울리고 ‘큰 손’인 딸 윤(김미숙 분)은 부동산투기에 열을 올린다. 장대식의 하수인이 된 윤기현은 부동산소개업을 하면서 장씨네 떡고물을 얻어먹고 산다.
이야기는 다시 해방 직후로 돌아가 젊은 날의 세 주인공이 기현의 어머니가 하는 서울의 한 여관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본군 시절의 동료인 건식과 기현 앞에 정체불명의 박식가인 대식이 등장하고 이들은 금세 형님·아우 사이로 가까워진다.
좌우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건식의 고향에는 토지개혁 바람이 몰아친다. 건식은 “땅을 무상으로 거두어 무상으로 나눠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후 대구 10월폭동이 일아나 이 와중에서 건식의 집은 동네 청년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농지개혁 후 시골로 내려간 건식을 농사를 짓는 한편 야학을 개설해 동네 청년들을 가르치고 대식은 고향의 경찰서장으로 부임한다.
6·25 동란 중 인민위원회 간부가 된 건식은 지리산에 숨어들어 빨치산에 가담한다. 대식은 지리산 공비 토벌대장에 임명돼 토벌에 앞장선다. 결국 포로가 된 건식은 2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전향을 완강히 거부하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뜬 후에야 전향서를 쓰고 풀려난다. 출세가도에 오른 대식은 치안국 대기발령을 받지만 자유당 정권이 얼마 가지 못하리라는 감을 잡고 스스로 도경국장의 옷을 벗는다.
4·19를 계기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지만 연일 데모가 계속된다. 건식은 정치에 참여하자는 주변의 권유를 마다하고 물려받은 유산으로 출판사를 차린다. 5·16 쿠데타가 발생하자 대식은 혁명 주체세력들의 신상파악에 혈안이 되고 일대 검거선풍 속에 경찰에 연행된 건식은 출판사의 자금 출처에 관한 수사를 받고 수감된다.
출감 후 건식은 무등산 한씨와 결혼한다. 대식은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 전국 주요지역의 땅을 사들일 준비작업에 착수한다. 한편 대식의 아들 강은 학생운동에 연루돼 수감되고 쿠데타의 주역인 박정희 장군에게 줄을 댄 대식은 그에게 은근한 접근을 시도한다. 남대문시장에서 순대국집을 차린 건식은 산후 몸져누운 아내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식당을 처분하고 지게꾼으로 전락한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방영된 대략의 줄거리인데 앞으로의 전개 내용에 대해 작가 김기팔씨는 “플롯을 끝까지 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흐름을 보면서 집필하기 때문에 구체적 구상을 밝히기 힘들다”고 답한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방영분이 땅에서 비롯된 경제구조적 모순의 근원을
밝히려는 기초공사였다면 3·5·6공하에서 다져진 ‘더럽혀진 땅’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정작 궁금한 이 드라마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