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두 민족 갈라설 운명
  • 프라하.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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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국가 출발부터 갈등…6월께 '분리' 묻는 국민투표
체코슬로바키아의 '명예혁명'을 이끌어낸 프라하의 민주광장은 언제나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지난 18일에는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펼쳐진 민주광장 한가운데서 조촐한 추도식이 열렸다. 68년 미완의 혁명 '프라하의 봄'을 잠시 살다 죽어간 민주인사에 대한 추도식이었다. 그들의 빛바랜 영정 주변에는 체코 국기가 꽂혀 있었다.

 그날의 봄을 주도했던 알렉산더 두브체크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걸고 이제 당당히 연방국회의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이 무명의 민주인사들은 퇴색한 사진만 이 광장에 남겨두었다. 그래서 가족들의 슬픔은 더한지도 모른다.

수심에 잠긴 민족지도자들
 미완의 봄은 다시 찾아왔지만 새 혁명의 주인공들은 수심이 더욱 깊다. 프라하의 연방국회와 브라티슬라바의 슬로바키아 정부청사에서 만난 지도자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지 못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한 이래 내연해오던 연방분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가 세워진 것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마침내 1천년 만에 헝가리로부터 독립한 슬로바키아는 단독정부를 구성할 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헝가리는 1차대전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슬로바키아 영토에 대한 '권리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슬로바키아 지도자들은 결국 고육지책으로 체코인 관료를 다수 영입, 국력의 강화를 꾀했다. 이것이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구성의 씨앗을 뿌린 셈이 됐다.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출발부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다른 언어, 다른 역사와 전통에서 기인한 분질적 문제 외에도 그 이후의 역사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년에 제정된 헌법은 체코슬로바키아주의를 근간으로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상대적으로 더 서구화한 체코가 일방적으로 슬로바키아를 편입하는 결과가 돼버렸다. 연방정부의 정책은 슬로바키아의 체코화에 초점이 모아졌다. 연방국가가 출발할 때부터 슬로바키아 민족주의는 자극받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소련 경제정책이 '지역감정' 부채질
 두 민족간의 감정은 체코연방이 소련블록으로 편입된 이후 더욱 강해졌다. 소련의 경제정책은 두 공화국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지역감정을 부채질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슬로바키아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중공업시설은 두 민족의 감정을 극도로 악화시켜놓았다. 이 시설은 공해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이제 경쟁력마저 거의 없어져 실업자를 무더기로 배출했다. 체코측은 그 원인이 소련이 이익에 근거한 제국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슬코바키아인들은 이것이 바로 체코인의 독주에 의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89년의 민주화는 두 민족간의 연방분리를 예고한 사건이었다. 지난해 새 국호 제정을 놓고 가열된 민족감정은 앞으로의 어려운 항로를 예상하게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개정할 때 슬로바키아측은 체코와 슬로바키아 사이에 줄표(하이픈)를 넣어 '체코-슬로바키아'로 하자고 주장,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서방 언론은 이를 '하이픈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체코측은 연방제를 개선하는 정도에서 현체제를 고수할 방침인 반면 슬로바키아측은 현단계에서는 느슨한 국가연합(confederation)을 주장하고 있다. 슬로바키아측은 내정에서의 완전한 자율권뿐만 아니라 외교권까지도 요구하고 있으나 당면한 경제개혁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는 시점에서 궁극적으로 독립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체코의 연방문제의 흐름을 결정하는 최대의 변수는 6월경으로 예정된 연방분리에 대한 국민투표이다. 그러나 "국민에게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를 두고 양측간에 상당한 감정대립이 있다는 점에서 투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연방분리는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발칸화(유고슬라비아화)'라는 극단적인 사태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이 양측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선 유고연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질성이 강하고 체코 연방군 역시 정치 불개입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국회 부의장 즈데넥 이친스키 박사나 슬로바키아 정부 국제관계부 차관 로만 젤레네이 박사 모두 연방분리 문제는 시간을 두고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바로 이 같은 배경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슬로바키아 정부청사에서 만난 한 고위관리는 제헌국회의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슬로바키아의 완전독립이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고 시사했다. 앞으로의 2년은 그래서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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