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하게 다른 역사와 문화
  • 프라하.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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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자유인 보헤미안의 고향 체코슬로바키아. 이 땅에 슬라브인의 발길이 닿기 시작한 것을 역사는 기원후 5세기경으로 기록하고 있다.

 보헤미아 모라비아 실레지아로 구성된 체코와 그 동부 지역의 슬로바키아는 출발시점에선 뚜렷한 차이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구별이 모호했다.

 9세기경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4개 슬라브 민족이 주축이 된 모라비아 공국의 흥망(830~907년)을 계기로 두 민족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모라비아 공국의 멸망 이후 체코인의 보헤미아를 비롯, 폴란드·헝가리 등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체코인의 민족주의는 그래서 늘 보헤미아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보헤미아 왕국은 슬라브 인종의 서쪽 경계선과 독일의 동쪽 경계선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체코인의 민족주의는 게르만적 요소와 슬라브적 요소의 대립의 산물이다.

 14세기 보헤미아를 강타한 존 후스(John Huss)의 종교개혁도 그 바탕에는 독일인에 대항하는 민족주의가 짙게 깔려 있었다. 17세기초 보헤미아의 신교도와 독일인 가톨릭 교도와의 무력투쟁 이후 체코인은 체코어 사용과 자치권마저 상실하게 된다.

 합스부르크 제국시대를 거치면서 게르만적 요소는 상류층의 귀족문화로, 체코어는 하층민족과 농민들의 '비어'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18세기말 이후 부상한 근대 민족주의는 보헤미아를 오늘에 구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저력은 드보르자크나 스메타나 등 음악의 거장을 낳을 만큼 역사적·문화적 폭이 넓고 깊다.

 이에 반해 슬로바키아인은 1천여년을 헝가리에 지배되어 살아온 민족이다. 압제에 눌려 희미해져 가던 민족의식은 1차세계대전때 헝가리에 맞서 무장투쟁을 펼침으로써 눈뜨기 시작했다.

 1차대전 이후 비로소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서 슬라브족 국가가 되었다. 슬로바키아는1938년 뮌헨회의에서 폴란드와 헝가리에 영토의 일부를 할양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39년에는 독일의 보호국이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함으로써 다시 체코슬로바키아로 복귀했다.

 이같이 역사적 사정으로 슬로바키아 문화는 발달이 지연되기도 했으나 1863년 문화운동단체가 설립되면서 점차 발전해왔다. 특히 최근의 민주화 과정에서 문화예술인들은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왔다.

 호사가들은 체코인들은 세련된 도시적 문화인으로, 슬로바키아인을 우직한 농촌의 서민문화를 간직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오늘의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종적·언어적 요소라기보다는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문화적 전통의 차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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