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생산 않겠다" 88년 눈물의 다짐 퇴색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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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납품 '삼양화학 제품' 시위진압용으로 계속 사용돼

 지난 88년 10월28일자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옆)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익은 것이다.이 인상적인 사진은 '악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두 사람, 즉 최루탄 때문에 아들    군을 잃은 裵恩深씨와 최루탄 제조회사인 삼양화학의 韓英子 사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두손을 맞잡은 장면을 담은 것이다. 그 이틀 전인 10월26일 오후 7시30분께 삼양화학(당시 서울 도화동 성지빌딩 16층) 사장실에서 이루어진 이 만남은 한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움과 갈등을 넘어선 화해와 용서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자기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간 '치명적인 무기'를 생산한 사람과 자기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만남 첫머리의 적개심을 풀고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에 이르는 그 대화를 살펴보자(이 대화는 당시 이 만남에 자리를 같이 했던 나건용씨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한영자 : 잠깐 이열사 모친께 용서를 빌고 싶다.

배은심 : 필요없다. 다음에 해라.
(중략)

한영자 : (배은심씨와 같이 농성을 하던 광주·전남최루탄부상자협회 회원들이 최루탄 생산을 중단할 것을 종용하자) 법에 저촉이 되더라도 이 시간 이후부터 최루탄 생산을 하지 않겠다. 이미 치안본부에는 납품하지 않고 있다.
(중략)

한영자 : (최루탄 생산 수익의 사회환원 의사를 묻는 질문에) 그 문제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는데, 병주고 약준다는 비난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었다. 이제 후련하게 말하겠다. 협회와 함께 최대한 노력하겠다.
(중략)

배은심 : (분을 삭이며) 격정을 못이겨 죄송하다. 최루탄의 '최'자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내가 최루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앉아 있다는 게 한심스럽고 원망스럽다. 어쨌든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여러분들이 고맙고, 성의를 다해주신 한사장께도 감사의 뜻을 표한다.

 최루탄 생산중지와 최루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던 한사장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을까. 그동안 약속이행 여부를 조사해줄 것을 국회와 각 정당, 정부쪽에 줄곧 청원해왔던 광주·전남최루탄부상자협회(이하 광주·전남최부협·회장    )가 지난 4월8일 삼양화학(서울 서초동 1500-10)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몇몇 잡지에서 삼양화학이 최루탄 생산을 전면중단하고, 무공해 세제의 원료인 제올라이트를 생산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 것이 사실 확인작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기자들이 단순히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는 선언을 넘어서 삼양화학쪽이 지난 일에 대한 '한풀이'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 이 단체에서 그 회사의 최루탄 생산중단 여부를 추궁했기 때문이다.

 삼양화학은 일반적으로 알련진 것과 같이 최루탄 생산만으로 성장해온 기업은 아니다. 72년에 부동액을 만들어 파는 소규모공장으로 시작한 이 회사가 오늘날의 규모로 성장한 데는 79년 화생방 물자와 탄약을 납품하는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것이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최루탄은 당시 이 회사에서 생산하던 군수용 98개 품목과 민수용 35개 품목 중 3개 품목에 불과했고, 4백억여원에 달하는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겨우 7%에 그쳤다.

 87~88년 두해 동안 최루탄 생산업체라는 이유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후 이 회사는 많이 달라졌다. 이미 88년 1월 개인 기업체에서 삼양화학공업㈜과 삼양화학실업㈜의 양법인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87년 개인 소득세 납세실적 1위였던 한사장이 88년 이후부터 납세실적 상위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공해 세제 원료를 비롯한 민수용품의 비중도 커졌다. 연간 매출액은 5백억원 정도로, 종업원도 1천명 규모로 늘어났다.

 광주·전남최부협이 밝힌 바에 의하면, 변하지 않은 점은 최루탄을 계속해서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최근 삼양화학과 관련한 보도가 나가자 배은심씨를 비롯한 단체 회원 8명이 상경하여 회사쪽에 항의하는 자리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 자리에서 회원들이 최루탄 생산중지 여부를 집중 추궁하자 회사관계자가 "치안본부에는 납품을 안하지만 군에는 계속 최루탄을 생산·납품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광주·전남최부협쪽에서는 이를 증명하는 입회인의 '사실확인서'(34쪽 사진)도 받아두었다.

삼양화학 "생산중단 요구는 지나치다"
 회사쪽에서는 최루탄을 계속 생산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88년 이후 치한본부쪽에 못만들겠다고 알리고 납품을 중단했다. 군훈련용으로 국방부에만 납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삼양화학 제품이 예전과 달리 시위진압용이 아니라 군 훈련용으로만 쓰이는냐 하는 것이다. 이 제품이 실제로 넓은 거리에 난사되어 부상자를 속출시키는 것이 아니고, 좁은 화생방 훈련장에서 훈련병들이나 '괴롭히고'있다면 삼양화학이라는 기업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최부협에서 입수한 90년 국정감사 자료(표 참조)에는 이 부분에 대한 대답도 들어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89년의 경우 시위진압용으로 치안본부에서 사용한 최루탄은 총 16만3천8백61발로 약 35억원 상당액인데. 그 대부분을 국방부로부터 빌려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작년의 경우 10월31일까지의 사용량은 17만9천1백15발로 약 44억원 상당액이고, 이가운데 19억원어치를 국방부로부터 빌려썼다. 또 이 자료는 이 차용분에 대해서는 90년에 예산을 재배정(국방부 예산을 내무부 예산으로 바꾸는 것)하거나 91년에 현품으로 상환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삼양화학으로서는 치안본부에 시위진압용 최루탄을 납품하지 않고 있지만, 89년과 작년에 시위대를 향해 발사된 많은 양의 최루탄이 삼양화학 제품일 것이라는 얘기다.

 회사쪽에서는 "방위산업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납품을 마음대로 중단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회사에서 생산만 하지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생산을 중단하라, 제품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 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 하는 88년 이후의 일관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삼양화학의 경우만큼 한 기업의 제품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기업이 자기 제품의 사용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 삼양화학이 최루탄 생산을 중단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업체가 생산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삼양화학만을 문제 삼는 것은 삼양화학을 '속죄양'으로 삼으려는 온당치 못한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작년 내무부가 국방부로부터 빌려온 최루탄의 양이 89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이 업체의 납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모든 판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공인으로서의 기업인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감동적인 화해의 드라마가 거짓으로 퇴색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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