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꺾는다.(꺾기)'하면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쉽게 말해 '꺾기'는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대출금의 일부를 다시 예금하도록 하는 것이다. '꺾기'는 ' 예금'(구속성예금의 하나)의 속어다. 일본에서 건너온 양건이란
말은 예금과 대출 두 계정을 동시에 세운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최근 자금난이 극심해지면서 꺾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꺾기의 '갖가지 요술'이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다.
ㄷ기업 ㄱ부장은 좀처럼 울분을 삭이지 못한다. 당일 결제할 돈을 ㅅ투자금융사에 긴급 요청해
구하긴 했는데 요구조건이 '파격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이다. ㅅ투자금융사는 1백억원을 꾸어주는 대신 45억원(꺾기비율 45%)은 자신들이 발행한
어음을 사라고 요구해왔다. ㄷ기업은 1백억원을 꾸기 위해 1백45억원을 꾼 셈이었다. 3기업은 기업체 신용평가상 C급 업체라 최고로 비싼 금리로
매겨진다. 꺾기를 강요당함으로써 실질부담 금리는 19.5%로 치솟은 셈이다.
ㅅ투자금융의 항변도 만만치 않다. ㄷ기업이 급하다고 해서 콜시장에서 콜금리가 19%였다는 것이다. 여기다 최소 유통마진 0.5%를 얹어 19.5%가 됐다는 것이다. 이 금리가 보전되지 않으면 대출을 해줄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근거를 댄다.
위에서 예로 든 단자사의 꺾기는 정도가 그리 심한 편이 아니다. 단자사가 꺾기의 온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전 금융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다. 금융관행인 것이다. 단자사 관계자들은 꺾기의 정도로 보면 단자사는 은행에 비해 '세발의 피'라고 주장한다. 은행은 단자사에 비해 예금의 종류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따라 꺾기의 대상은 다소 다르지만 원리는 똑같다. 대출을 해줄 때 자신들의 예금(수신)상품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 우선 고전적 유형을 살펴보자.
CD 끼워넣기 등 수법 다양
은행의 꺾기는 어떤 기업에 대출을 할 때 정기예금(만기 1~2년
이자율 10%)·정기적금(10%) 등 저축성상품이나 요구불예금으로 꺾기를 한다. 요구불예금은 이자가 없어 꺾기의 정도가 국내은행보다 훨씬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단자사들은 수신(예금)상품인 자기발행어음(2%)이나 담보어음(3.5%) 또는 무담보어음(7%)을 사도록 요구한다. 증권사들은
회사채인수 주간사라는 지위를 활용, 채권을 하도록 요구한다. 보험도 기업대출 금리는 표면금리가 13.5%지만 차입금의 절반을 각종 보험에 들도록
강요해 실제 부담금리는 18%가 넘는다.
수신상품이 다양해지면서 금융기관들은 날로 새로운 '수법'을개발해낸다. 주고 CD 등 채권매입이다. 은행은 신탁자금(보통 14%)을 대출할 때 양도성예금증서(CD·은행이 5천만원 이상의 돈을 91일에서 1백80일 동안 예치받아 표면금리 연13%로 할인발행하는 예금증서)와 금융채를 곧잘 끼워넣는다. 단자사는 어음할인(대출)시 그 중 일부를 어음관리구좌(CMA·운용실적에 따라 배당해주는 실적배당부 상품. 연 수익률 14%예상)에 끼워팔기를 한다. 증권사도 통화채권펀드(BMF·80%를 통화조절용 채권에, 나머지를 회사채에 투자해 얻은 수익을 실적에 따라 배당해주는 상품) 매입을 요구한다.
우리 금융시장에 꺾기가 존재 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80년대만 해도 꺾기는 금융기관에서 대회비로 취급됐다. 그러나 매년 자금난이 반복되면서 과도한 꺾기는 꼬리가 잡혔다. 금융인들은 "순진한 고객이 입을 열었다"고 표현한다. 말썽이 일자 재무부는 89년 꺾기를 없애라고 은행관계자들을 불러 다그쳤다. 지점설치와 연계, 불이익을 주겠다고도 몰아쳤다. 그러나 그 실효가 거의 미미했음은 지난해 있었던 '6.28조치'(단자사 수신금리인하조치)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규제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이를 회피하려는 방법도 백출한다. 당국의 손길에 잡히지 않는 교묘하고 지능적인, 이른바 '신종꺾기'가 생겨난 것이다. 91년 현재 금융시장에서 횡행하는 꺾기는 그 경로가 복잡해 어지러울 정도다. 요금 꺾기대상으로 인기 0순위는 회사채다. 3년만기라 장기차입 자금으로 기업들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수요가 많다보니 '4각꺾기''5각꺾기'같은 신조어도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경로가 매우 번거로워지고 기업부담도 그만큼 무거워 짐을 느낄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실제부담 금리는 2~3%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규제 피해 '신종꺾기' 성행
자주 애용되는 방법을 들여다보자. 회사 채발행은 표면금리가 현재
15%까지 올라갔지만 인수 및 보증수수료(발생가액의 7%)를 합치면 인수기관(은행·증권)에 기업들이 실제로 감당하는 기준수익률은 18.08%로
뜀박질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어서 문제다. '꺾기'가 가세한다. 기업들은 우선 인수자로부터 CD나 BMF 등을 사야 한다. 또 기업은
떠안은 발행물량의 30~40% 정도를 팔기 위해 최종 인수자인 보험 투자신탁사에 실세금리에 맞춰 종업원퇴직보험 또는 투신신탁예금(5%) 등에
돈을 묶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금융계에서는 기업의 실질부담 금리가 통상 20~30%선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유통수익률 19% 남짓을
맞춰주기 위해 기업은 '안팎 곱사등이'가 되는 것이다.
꺾기는 날로 변신을 거듭, 최근에는 이것이 꺾기였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계열사 예금방식 꺾기를 보자. ㅅ물산이 ㅎ투자금융에서 10억원을 빌릴 때 15억원어치의 어음을 할인하고 5억원어치의 어음을 할인하고 5억원어치 어음을 계열사인 ㅅ전자가 ㅎ투자금융에서 대신 사준다. 이렇게 되면 ㅅ물산과 ㅎ투자금융 사이에는 꺾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ㅅ전자가 ㅎ투자금융에 예금을 한 것으로만 나타난다. 보험사들도 보험감독원의 규제가 강화되자 대출 후 일정기간이 지나 일시납으로 보험금을 내는 꺾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금리차를 보전하기 위해 수신 상품을 묶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주로 투자자문료 등 수수료를 높여 받는 방법이다. 유사꺾기이다.
꺾기가 사실상 어떻게 이루어지며 실질금리가 얼마로 형성되는지는 당사자 외에는 알길이 없다. 같은 방법을 거치더라도 금융기관과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꺾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당국의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은행감독원 부원장은 최근 은행전무회의를 소집, 꺾기행위를 자행하면 담당자와 관련 임원을 문책하고, 횟수가 빈번하고 규모가 과다한 은행에 대해서는 기관경고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규제대상도 종래에는 예·적금과 금전신탁에 국한시켜왔으나 앞으로는CD와 금융채를 매입토록 유도하는 행위도 꺾기로 간주,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꺾기의 근절은 요원하다는 것이 금융계의 시각이다. 우선 보상예금이라는 점이다. 금융기관의 수지보전 용도로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우리는 만성적인 자금수요 초과상태여서 빌리려는 손은 많고 빌려주는 곳은 여력이 많지 않다. 또 명목금리 상한선이 규제돼 있는 상황에서 조달금리가 높아지면 이를 메워줄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경우도 많다. 예금계수로 금융기관 순위가 매겨지다보니 예금유치 경쟁이 격화되기 마련이다.
외국에도 꺾기와 유사한 형태는 있다. 보상예금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상업은행들은 대출을 해줄 때 대출금액의 10~15% 예금과 2% 정도의 높은 금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꺾기는 기업에 실질부담 금리를 높여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금융시장의 금리체계를 더욱 왜곡시킨다. 또 장부상에는 예금과 대출이 같이 늘어난 것처럼 기록돼 총통화량을 불려놓는다. 이 허수통화량은 통화관리를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꺾기를 '악덕'으로 매도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기업측에서 대출금 상환을 위한 기금으로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대로 방치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조사자료의 회수율이 낮고 기업들이 감정이 섞여 통계의 신뢰성은 떨어지지만 지난 1월 은행감독원의 실태조사에서도 꺾기가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1천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의하면 45%의 업체가 꺾기를 강요당해 고금리부담을 했다고 답했다.
은행감독원 금융개선국 국장은 "규제만으로 꺾기를 근절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물가안정이 되어야 하며 진정한 금리자유화가 진행되면 명목금리와 시장실세 금리와의 차이가 줄어든다. 꺾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꺾기는 우리 금융시장의 환부이지만 금융시장 전체의 건강 회복없이는 근본적 치료가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