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원 70~80명이 알맞다”
  • 김재일 차장 ()
  • 승인 1993.09.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재 1백32명, LA 15명·뉴욕 36명 … ‘지방조직 민주화에 기여’ 평가도



 지난 1일 오후 3시 서울시의회. 3분전부터 본회의장에 입장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연이어 나왔다. 그러나 시의원들은 본회의장 앞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20회 정도 안내방송을 했으나 적지 않은 의원들은 여전히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이상돈 의사담당관은 3시7분께 아직 3분의 1 정도의 숫자가 회의장 밖에 있는 상태에서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서울시 의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백창현 서울시의회 의장의 인사말에 이어 인사 이동한 서울시 교육 간부 소개와 지난달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이춘수 의원(민자·은평구)의 선서와 인사말이 뒤따랐다. 의사 담당관의 보고가 있은 후 김기영 의원(민주·구로구)의 의사진행 발언이 있었다. 그는 지난 회기중 서울시의회 의장과 상임위원장을 시의회 의원들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민자당이 지명하다시피 한 사실을 들어 “지방자치에 역행하고 1천1백만 서울 시민을 모욕한 오류”라고 질타하고 이에 대한 의장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하자 있는 상임위원장 상당수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91년 8월 문을 연 서울시의회는 지난 7월초 전반기 2년을 마무리하고 후반기를 이끌어갈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게 됐다. 민자당 소속 시의원들은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경선으로 선출하자는 파와 당이 지명한 사람을 선출하자는 파로 갈렸다. 전체 시의원 1백32명 중 1백9명이 민자당 소속이어서 이들이 결정한 사람이 의장이나 상임위원장으로 선출되게 돼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민자당 시의원 총회에서 투표한 끝에 43 대 31로 당이 지명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민자당은 백창현 현의장을 지명했던 것이다.

 물론 중앙당이 지명한 사람을 본회의에서 선출하는 형식이므로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내용으로는 중앙당이 지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기배 민자당 서울시지부장이 민자당 시의원 총회에 참석해 그 방향으로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부의장 중 민주당 몫 부의장 후보를 민주당 중앙당에서 추천했다.

 의장단뿐만이 아니었다. 민자당 소속 서울시 의원들은 상임위원장과 간사까지도 실질적으로 중앙당이 임명하게 해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했다. 게다가 상임위원장 후보로 당성과 대선 기여도, 개혁의지·도덕성 등을 고려해서 추천해 달라고 중앙당에 요청했으나, 민자당이 상임위원장에 지명한 인사들은 시의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민자당 소속 시의원들만 참석한 각 상임위원장 투표에서 백지표가 25~26표가 나온 것만 보아도 상임위원장 인선에 대한 그들의 불만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상임위원장으로 선출된 의원 가운데는 여자 관계가 복잡해 말썽을 일으킨 사람, 회기 때 출석률이 형편없어 빈축을 산 사람,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 없이 지명된 사람 등 하자 있는 인물이 상당수 있어 중앙당의 인선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한 의원은 상임위원장에 선출된 후 자신의 지역구 30여 군데에 플래카드를 붙여 상임위원장 피선을 자랑하기도 했다.

 의사진행 발언을 한 김기영 의원은 “서울시의회 의장은 의원 모두가 참여해 자율적으로 선출해야 한다. 민자당 지명에 의해 민자당 의원들만 참석해서 선출한 의장은 민자당의 대표일지 모르지만 서울시의회 대표는 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민자당 소속의 한 시의원까지도 “자주성과 독립성 확보에 힘써야 할 지방 의회가 스스로 권한을 포기한 형태다. 더구나 개혁을 표방한 민자당이 지방의회 의장과 상임위원장을 지명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개혁적이다”라고 못마땅해했다.

 태평로 코리아나 호텔과 성공회 건물 사이에 자리잡은 서울시의회. 옛 국회의사당인 이 건물이 서울시의회 건물이라는 것을 아는 서울 시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의회가 구성된 후에도 집권당 대통령후보 문제를 둘러싼 권력 투쟁과 국회의원선거, 대통령선거, 그리고 지금은 새 정부의 출범으로 인한 개혁 정치 와중에서 국민들의 관심은 중앙 정치 무대에 집중됐다. 지방의회 정치에는 그만큼 무관심했던 것이다.

재산은 국회의원보다 많아
 지방의회 정치와 관련해 의원들의 자질과 전문성, 도덕성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돼 왔다. 거기에 서울시의회 의장 선출에서 보듯이 의회 운영이 미숙성과 더불어 반개혁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곤 했다. 임익근 의원(민주·도봉구)은 서울시의회의 역기능을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시의원들의 철저하지 못한 의정활동이 공무원들의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줄 뿐 아니라 정당성을 부여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시의원이 전문 영역에 따라 선출된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당선돼 전문가가 시의회에 진출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달리 시의원은 전문 보좌관을 둘 수 없다는 점도 시의회의 전문성을 약화하는 한 요인이다.

 시의원은 공무원과 밀접하게 맺어질 수 있는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건설위원회에 속한 시의원은 도로국 등 소관국을 감싸고 도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 경우라면 건설회사를 가진 의원은 건설위원이 될 수 없고, 학원 이사장은 문화교육위원이 될 수 없는 등 제척사유가 철저하게 적용되나, 시의회의 경우 명시적인 규제가 없어서 의회 활동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쪽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임의원은 예산 심의와 결산을 통해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당연하나, 실제로는 공무원들의 로비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실토했다.

 의회 운영과 관련한 문제점도 많다. 운영위원회를 뺀 9개 상임위원회는 기능별이 아닌 사람 위주로 분류돼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전문가는 환경문제를 함께 다루는 수자원관리위원회와 생활환경위원회, 그리고 내무위원회와 재무위원회로 분류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집행기관의 직제에 관한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어 시의회의 의견을 반영할 여지가 없다. 직제를 조정하지 못하는 의회인 셈이다.

 임의원은 시의원 재산 공개에 대해 강한 불만은 터뜨렸다. 우선 시의원을 공직자로 만들어 놓고 재산을 공개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시의원 재산 등록은 지난달 12일부터 이 달 11일까지다. 마감을 열흘 남긴 지난 1일 현재 이문광 김태웅 유상근 이종석 김남종 백창현 전명호 최종덕 이상돈 이원국 장정일 의원 등 11명만이 등록했다.

 시의회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서울시 의원 재산 공개로 적지 않은 파문이 일 것으로 내다봤다. 시의원은 국회의원과 비교해 위상은 낮으나 평균 재산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시의원 우선 공천 기준은 재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의원 재산가들 중 많은 사람은 사업으로 재력을 쌓았다기보다는 부동산 투기를 한 경력이 있어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도덕성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내무부는 시의원 재산 공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국회의원들이 시의원들을 견제하기 위해 이를 밀고 나갔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같은 지역의 국회의원과 시의원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사이가 좋지 않다. 힘이 약한 지구당위원장일수록 시의원에 대한 견제가 심하고 과민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이같은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지방의회는, 특히 지방자치 단체의 행정 견제와 지방 정치의 민주화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명수 의원(민자·양천구)은 지난 2년간의 시의회 활동이 “무척 어려웠다”고 실토했다. 막상 의회에 들어가 보니 법률과 제도 등 활동할 만한 여건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시의원들이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 열심히들 뛰었다고 자평했다.

70% “재출마하지 않겠다”
 그에 따르면, 서울시의회는 60건의 조례를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등 총 2백38건의 조례를 행정 편의 위주에서 시민 편의와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또 증언 감정에 관한 조례를 발의하기도 했다. 이는 시의회가 서울 시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의 출석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은 시의회의 출석 요구를 무시해 버려도 법적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서울시는 위의 조례가 상위법인 지자제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어 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서울시의회는 청원 75건과 진정서 4백86건을 처리하고 현장을 90회 방문했다.

 이문광 의원(민자·성북구)은 시의원의 경우 국회의원보다 지역구민과 접촉할 기회가 훨씬 많아 집단 민원이 많이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서로가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주민의 요구대로 일이 안되는 이유를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어린애가 어른 옷을 입고 있는 식으로 시의원의 운신 폭을 제한하고 있는 지자제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법뿐만 아니라 중앙의 권력을 분권화 시대에 맞춰 지방에 과감하게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중앙 정부가 시시콜콜한 문제에까지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내무부가 서울시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준칙을 내려보내 꼼짝 못하게 한다고 한다.

 민자당 이원국 시의원(송파구)은 마침 ‘후반기 서울특별시의회 운영개혁에 관한 건의서’를 내놓아 관심을 끈다. 그는 서울시의회가 시정부의 행정 행위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시정부의 행정 행위를 합리화해 준 측면이 많았음을 자인하고, 의회 운영을 민주화하고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일분 간부들의 결정에 따라 시의회가 운영됨으로 말미암아 소외감을 느낀 평의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시의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자문위원회 설치, 전문위원실 강화, 정책연구관제 신설, 시의회 발전연구소 설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지 않은 시의원들은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잔뜩 짊어지고 있다”며 자신들의 입장과 위상에 대해 강한 불만을 떠뜨렸다. 처음에는 무보수 봉사 정도로 마음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민원과 진정 처리, 그리고 자료 수집을 제대로 하려니깐 많은 돈이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지방자치연구소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는 시의원들의 불만족스런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내 준다. 시의원의 70% 정도가 다음번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한 거울시 의원은 “자기 돈 없는 사람은 활동 자체를 할 수 없는 여건인데, 과연 시의회에서 유능한 재목이 길러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세욱 교수(명지대)는 지난 2년 동안의 지방의회 활동에 대해 “지방의원들이 예산 심의, 감사 등을 통해 관료화한 지방조직을 민주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부 인사들 때문에 지방의회 의원들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의회 운영 미숙과 몸싸움 등 부정적인 면이 많이 노출됐으나 그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정교수는 애초에 시의원 후보를 중앙당이 공천한 것 자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인데, 시의회 활동에 정당의 참여와 간섭을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지금 1백32명인 서울시의원 수를 70~80명 선으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 로스앤젤레스 시의원 수는 15명, 워싱턴 D.C.와 뉴욕의 경우 각각 13명, 36명에 불과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지자제 실시를 반대한 내무부의 시안을 기초로 한 현재의 지자제법을 ‘지방자치단체 규제법’ ‘지방 관치법’이라고 비판했다. 현 지자제법을 송두리째 폐기하고 골격부터 새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金在日 차장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