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낙하산 부대 교원공제회 ‘입성’
  • 김당 기자 ()
  • 승인 199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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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관료들, 윗자리 차지 … “양로원인가” 노조, 전 이사장 불명예 퇴진에 반발 소송

올 초부터 터진 대학입시 부정과 사학재단과의 유착비리 파문으로 홍역을 앓은 교육부가 이번에는 내부 송사에 휘말리게 되었다. 교육부 산하기관인 대한교원공제회(이사장 박용진) 노동조합에서 지난 8월23일 국가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교원공제회 노동조합(위원장 정석희) 조합원 1백33명은 이 날 자녀의 부정편입학과 관련해 강제 퇴임한 김영식 전 교원공제회 이사장의 불명예 퇴진에 따른 집단 손해배상소송(조합원 1인당 1천만원씩 총 13억3천만원)을 서울민사지법과 서울지구 국가배상심의위에 각각 제출했다.

김영식 전 이사장 “교육부가 사퇴 종용”
 이 소송이 관심을 끄는 것은, 사건의 발단이 된 부정입학자 학부모 명단 공개 파문에 연루된 전 이사장에 대한 신원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의 소송이유서에 따르면 ‘교육부가 미확인 자료를 공개해 산하기관의 기관장(김영식 전 공제회 이사장)을 강제 퇴임시킴으로써 자산 2조원을 보유한 교원공제회의 공신력을 크게 떨어뜨린 결과를 낳았다. 이같은 국가기관의 허위자료 제공으로 말미암아 입은 명예훼손에 대해 13억원의 배상금과 주요 일간지에 사과광고를 실어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5월8일 교육부가 ‘대학 신·편입생 부당 선발 내역’을 공개한 데서 비롯된다. 교육부는 이 날 각 대학에 대해 실시한 감사(88.1~93.4)에서 지적한 대학별 입시 부당 선발 내역과, 그 중 확보된 부당 입학 및 편입학 관련 학생과 학부모 명단을 공개했다. 입시부정 파문과 사립대 재단과의 유착비리 등 교육부에 쏠린 의혹을 벗어나려는 고육지책이긴 했으나 명단 공개는 교육행정 사상 최대의 대규모 인사조처 단행(3월19일)에 이은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자료를 공개한 교육부 성기선 감사관도 이같은 부담을 의식해 “특히, 관련 학생 및 학부모의 명단은 교육부가 대학은 통해 확보한 것으로,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개별 확인이나 수사기관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임”을 수차례 강조함으로써, 자료의 부정확 탓으로 제기될 수 있는 만약의 시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국 38개 대학에 걸친 부정 및 부당입학 사례(학생 1천69명)와 학부모 명단(4백51명)을 공개한 것은 국민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 명단에 전 문교부 장관이 끼여 있다는 사실이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명단 공개 내용을 크게 보도했으면, 특히 일부 신문은 ‘김영식 전 문교 아들 포함’이라고 부제를 달아 강조하기도 했다. 그나마 관련 당사자의 해명을 소상하게 실은 언론매체는 <한겨레신문>뿐이었다. 이 신문 5월9일자는 이렇게 보도했다.

 둘째아들(31)이 지난 89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부정 편입학한 것으로 발표된 김영식(63) 전 문교부장관은 “아들이 부정 편입학했다는 교육부 발표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김씨는 “문교부장관을 그만둔 위인 89년 ㅇ대를 졸업한 둘째아들이 고려대와 ㅎ대 경영학과에 편입시험을 치러 ㅎ대에만 붙었으나, 고려대 쪽에서 ‘미등록결원이 생겼으니 입학등록을 하라’고 통보해 와 고려대에 입학했다”고 해명하고 “당시 직위나 금전을 이용해 부정 편입을 의뢰한 적은 결코 없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씨는 교육부 발표 전날인 5월7일 대한교원공제회 이사장직을 전격 사임한 배경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로부터 ‘부정입학 명단을 발표하니 사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계속 사임을 종용했다. 사표를 낸 뒤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뜻일 뿐 부정입학을 시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이같은 해명은 한달 뒤에 사실로 밝혀졌다. 교육부가 대학 부정입학과 관련, 5월8일 명단을 공개한 학부모 가운데 이의를 제기한 40명 중 16명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6월10일 공개 내용을 정정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재조사 결과 13명은 학생이나 학부모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공개 내용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정 발표는 대개 신문에서 관행대로 1단 기사로 취급되었다.

 김씨와 그의 아들에게는 말 그대로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가족에 따르면, 김씨는 현재도 지방을 여행중이며, 올 가을에 결혼할 예정이던 그의 아들은 이 사건으로 파혼당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제회 노조에서 명예훼손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것을 권유했으나 김씨는 “다 지난 일이다. 문교부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교육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교육부 “노조 주장은 집단이기주의”
 교육부 관계자들이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제3자가 명예훼손 운운한다”고 불쾌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노조에서는 교육부가 공개한 학부모 명단에 당시 김이사장이 포함된 것은 단순한 사무 착오나 실수라기보다는 의도적이거나 적어도 부정입학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모른 체했다는 쪽이다. 노조 관계자들은 그 근거로 김이사장이 재임중 공제회에서 100% 출자한 자회사인 (주)대교개발(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대외 명칭은 국민호텔 서울교육문화회관)의 사장 선임과 관련해 교육부와 빚은 마찰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교육부의 압력을 든다.

 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대교 개발 초대 사장 김 영씨의 임기 만료일(4월20일)을 앞두고 공제회가 더는 교육부 ‘최임 관료들의 양로원’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지난 2월부터 김이사장에게 전문 경영인 위촉과 책임경영 등 기준을 제시해 왔다. 호텔업이 주업종인 대교개발의 경우, 당시 교직국장이던 모영기씨의 추천으로 취임한 전임 사장이 경영을 부실하게 한 전례에서 보듯 호텔 전문경영인이 아닌 교육부 ‘숨통 틔우기식 인사’로는 더이상 회사 발전을 꾀할 수 없다는 것이 노조측 주장이다. 그 과정에서 김이사장은 4월20일 주주총회에서 교육부 전 공보관 유해강씨를 사장으로 선임하려다 노조의 반발로 유보되기도 했다. 당시 유씨는 3월16일 교육부 ‘개혁 인사’에서 전남대 사무국장으로 발령이 난 상태였는데 발령을 거부하고 대교개발 사장자리를 원하자, 교육부에서 공제회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의 반발이 계속되자 김영식 이사장은 5월2일 월례조회에서 국민호텔 인사원칙을 발표했다. 요지는 교육부 관료의 낙하산 인사로 사장을 임명하지 않고 내부 승진을 원칙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석희 위원장은 “그 와중에 교육부 교직국장이 학부모 명단 공개를 앞두고 김이사장을 방문해 퇴진을 종용했다”고 주장한다. 노조에서 김이사장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내일 명단이 나갑니다. 장관 출신이므로 이름이 대서특필됩니다. 사퇴하는게 좋겠습니다.”라는 권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김이사장은 5월7일 저녁에 사표를 썼다. 그러자 7월1일 새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용진씨(전 교육부 장학편수실장)가 7월10일 ‘비밀 주총’을 열어 유해강씨를 대교개발 사장으로 선임하는 낙하산 인사를 강행했고, 여기에 노조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최이식 교직국장은 “김이사장을 5월7일 만난 것은 사실이나 퇴진을 종용하지도 않았고 그럴 형편도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부정입학 학부모 명단 공개시기와 맞물려 오해를 살 만한 소지는 있으나 본인이 알아서 스스로 진퇴 문제를 결정한 것이지 강제 퇴임은 아니라는 것이 최국장의 주장이다. 최국장은 유해강 사장을 선임한 데 대해서는, 대교개발이 호텔영업과 청소년 교육사업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사업수완이 있는 유씨를 사장으로 선임한 것은 회사 발전에 바람직한 인사라면서 노조의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라고 일축했다.

 소송 발단의 당사자이자 직접 피해자인 김 전 이사장이 입을 다물고 있는 지금 사실을 규명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이 소송을 맡은 ㅇ변호사의 말대로 “개인의 명예훼손이 단체나 그 구성원의 명예까지 훼손했다고 인정되려면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소송 진행 여부에 따라 교직국장은 물론 교육부장관까지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소환될 형편인 데다가, 그동안 정부 부처의 지시나 간섭에 무기력하게 순응해온 산하기관의 첫 법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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