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상속세 면제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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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지위향상·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를 위해 배우자간 상속세를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세형평·과세기술상 난점이 없지 않다. 현실론과 이상론의 마찰 속에서 세법 개정은

.찬.  한명숙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성심여대 여성학 강사.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졸업.

배우자 상속세 면제에 찬성하는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인간이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권을 가져야 한다. 경제권으로부터의 소외는 곧 생활의 물적 기반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제도적으로 여성을 경제적 권리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다. 가정주부를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많고 사회가 여성을 경제적 무능력자로 만들고 있다. 지난 89년 12월에 개정된 가족법은 여성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부부가 혼인중 이룩한 재산은 부부공동의 소유라는 전제 아래 이혼시 아내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재산형성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은 자녀에게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배우자에 대해 상속세를 물리는 것은 옳지 않다. 재산은 부부가 함께 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여성의 경제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 민법에서는 재산을 부부 공동소유로 간주하면서도 세법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일관성을 잃고 있다. 세법에서도 여성의 동등한 권리가 인정돼야한다.

배우자 상속세만 면제하면 민사법체계에 혼란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현행 세법은 상속세에 대해 유산과세제를 채택하고 있다. 상속분에서 공제액을 뺀 전체에 대해 세율을 적용하여 배우자와 자녀가 분배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미국 영국 등에서 이와 유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 입장은 유산과세 방식에서 유산취득과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속분을 상속인 수만큼 분할하여 작자에 대해 세율을 적영하는 것이다. 일본과 서독에서 이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유산취득과세제로 바꾸면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 남녀평등을 구현하겠다고 주장하는 국회가 오히려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상식적으로 하나의 법 안에 두 가지 상이한 체계를 섞어놓을 수 있는가. 국회의원들의 양식에 호소하고 싶다.

극소수 부유층만을 수혜대상으로 한다는데….
 법이 정해질 때 현상적으로 일부 중·상류 계층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법의 큰 방향이 옳은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분배구조가 시정되어 새로이 얻어지는 사회적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면 상속세 면제에 따른 수해자도 많아 질 것이다.

재무부나 국세청에는 세수 감소와 탈세 우려 때문에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상속은 세대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배우자간에는 상속을 따질 수 없다. 또 현행법에 따르면, 재산을 상속한 배우자가 사망하여 자녀에게 다시 그 재산을 상속하면 또 상속세를 물기 때문에 오히려 이중과세가 된다. 한편 배우자 상속세 면제 제도가 탈세의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탈세를 막기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인 조처, 특히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탈세 가능성’을 내세우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명분으로 들린다.

부부재산을 공유로 본다면 어느 일방의 채무로부터 가족의 재산을 보호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채무 때문에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런 특수한 경우 때문에 더 큰 문제의 해결을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다른 법적 장치를 통해서 보완해야 한다. 이번에 민자당이 내놓은 개정안은 결혼 후 20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 증여세 면제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 사실 광역의회를 앞두고 선심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냐 하는 느낌도 크다. 하지만 비록 정략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대정방향이 옳으면 상관없다.

어떤 조처가 보완되어야 하는가.
 가족법 체계가 재작년의 개정을 통해 부분적으로 좋아졌다. 그런데 세법에서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실속이 없다. 줬다가 뺏는 꼴이다. 실질적 권익의 보장이 필요하다. 이직 동성동본 혼인금지와 호주제도의 개정의 남아 있다. 이는 남아선호와 가부장적 체계의 상징적인 두 기둥으로서 가족법의 봉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족의 민주화는 부부간 자녀간 동등한 권리보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가로막는 것은 남아의 가계계승, 즉 남자의 성을 따르는 제도이다, 남자의 성을 중심으로 혼인을 통제하는 것은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근친혼과 동성동본 혼인을 혼동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8촌 이상인 배우자까리의 결혼은 문제삼지 않고 있다.

한명숙 “배우자간에는 상속을 따질 수 없다”

반.  강신호 세무사. 강신호세무사사무소장.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배우자 상속세 면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현행 상속세 체계상 기대만큼의 실익을 제대로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유산과세제 아래서는 누가 상속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상속세가 부과된다. 배우자가 전혀 상속받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배우자 상속세가 면제되면 재산이 자식들에게 가는데도 세금만 안내는 꼴이 되어 상속세 회피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부의 편재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현행 법에 따르면, 집 한 채를 갖고 2명의 자녀를 두고 30년을 같이 산 부부의 경우 4억8천만원 정도의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다. 10억원을 상속한다고 해도 1억2천만원쯤을 세금으로 낸다. 이는 그다지 높은 세율이 아니다.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극소수의 부유층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 계층간 위화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는 조세형평 원칙에 어긋난다. 비과세·면세의 확대로 또하나의 조세회피수단을 보탤 뿐이다. 또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과의 형평에도 어긋난다.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부과는 이중과세라는 주장이 있다.
 현행 법에서는 ‘단기상속공제제도’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상속받은 배우자가 7년 이내에 다시 상속을 할 경우 과세를 면제함으로써 이중과세를 방지하고 있다.

여성의 가사노동이 부부의 재산형성에 기여하는 부분을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부정할 이유가 없다. 또 부부는 단일생활공동체인 만큼 생존한 배우자의 생활보장이라는 복지적 측면에서도 인정할 만하다.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재산형성에 관한 배우자의 기여정도를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우자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결혼 당시의 재산을 등록하고 상속할 때까지 재산변동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과세기술상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고 우리 풍토에는 맞지 않는다. 아무리 이론이 정당해도 과세기술상 어려우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문제만 생긴다. 비과세나 감면이 확대되면 왜곡현상이 커진다.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또 다른 형평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배우자의 생존년수에 따른 차이도 생기고 다른 근로소득자와의 형평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후처가 들어오면 무임승차하는 것 아닌가. 또 자녀가 재산형성에 기여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미망인의 유무에 따른 형평의 문제도 있다. 미망인이 없을 경우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물어야 한다. 또 부부가 동시에 사망할 경우 상당한 혜택을 받게 된다.

여성취업률이 40%에 달하는데, 아내의 몫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지 않는가.
 취업여성이 돈을 벌어 재산을 모으면 이를 자신의 명의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서서히 이런 추세로 나가고 있다. 다만 국세청의 자금출처조사 면제기준이 부녀자의 경우 훨씬 엄격하게 돼 있어 문제이다. 30세 이상 세대주 남자의 경우 1억원까지는 자금출처조사를 받지 않는다. 여자의 경우 이런 면제가 아예 없다. 세무행정상 불공평한 부분이 있다.

외국에서는 상속세를 면제하는 사례가 많지 않은가.
 영미법에서는 재산을 부부공동의 것으로 간주하여 배우자 상속세를 전액면제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 등 대륙법체제하에 있는 나라에서는 배우자공제 등 일부공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상속세를 전액면제하는 것은 이론상 생존한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상속세 부과를 연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처럼 자금추적이 어렵고 납세풍토가 불건전한 사회에서는 변칙상속이나 재산은닉의 통로가 되고만다. 오히려 빠져나갈 기회만 많아진다. 90년도 세수실적을 보면 상속세와 증여세를 합쳐봐야 전체 세수의 1.2%정도이고 상속세를 낸 사람은 1천7백여명에 불과하다.

어떤 보완조처가 필요한가.
 상속가능재산의 전산화 등 세무행정 과학화가 돼 있지 않고 금융실명제 도입도 안된 상황이다. 전제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상속세 면제는 시기상조이며 역기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유산취득세제는 상속가액을 분할하여 세율이 적용되므로 세금이 낮다. 그래서 부의 분할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이쪽으로 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공제액수를 늘리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와 같은 유산세제 아래에서는 효과가 없다. 세금만 적어질 뿐 그 재산이 배우자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추적을 피해 부의 이전을 용이하게 해줄 뿐이다.

강신호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시기상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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