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단 한목소리 “군복 입고 싶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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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동행취재/밤샘 등 과로… “돌 · 화염병보다 두려운 시민의 손가락질”

   大군 폭행치사를 규탄하는 집회 · 시위가 계속되던 지난 5월1일 밤. 연세대 정문 앞 길 건너편에는 10대의 ‘닭장차’가 진을 치고 있었다. 서울시경 제3기동대 97중대 2소대원 32명은 차안에서 밤을 지샜다. 세계 노동절대회를 마치고 연세대에서 철야농성중인 노동자 · 학생들이 언제 길거리로 뛰쳐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위대느 마침내 거리로 뛰어나왔고 기동대원들은 밤 늦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백골단’으로 불리는 사복전투경찰. 남들과 똑같이 군에 입대했으나 ‘사복조’로 차출된 이들은 매일같이 시위대와 ‘전투’를 벌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지나가는 시민들이 손가락질할 댄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단지 “줄을 잘못 서서” 백골단이 된 군인인데, 동네 불량배쯤으로 취급받는 게 억울하다는 얘기다. 이들은 “소속은 국방부, 근무는 내무부, 제대할 때는 다시 국방부로 돌아가는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이상한 신분”이라고 푸념한다.

 밤을 새고 난 5월2일 아침 9시. 2소대원들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제3기동대 막사로 돌아왔다.

 철야한 탓인지 몸이 무겁다. 이들은 최루 가스에 찌든 몸을 씻지도 못한 채 내무반 침상 위에 그대로 나뒹군다. 전날 진압과정에서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은 대원은 통증으로 몸을 뒤척인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전경이 되어/돌 맞고 화염병 맞아/죽으면 그만이지….” 대원한명이 흥얼거린다. 운동가요 ;늙은 투사의 노래‘를 개사한 노래다.

 한시간쯤 잤을까. 10시55분.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야 했다. ‘고참’의 인솔로 부대 근처 ‘사제’ 목욕탕에서 피로를 씻어낸다. 목욕 후, 내무반에 오자마자 의무실에서 지급한 연고를 목과 머리에 바른다. 최루탄에 묻혀 살다시피하는 처지라 피부가 약한 대원은 ‘가스독’에 시달리기도 한다.

“  大사건에 할 말은 없지만…”
 정오가 되자 구내식당으로 간다. 오른은 특식이 나오는 날이다. 닭고기 닭죽 무채 김치 등 ‘성찬’에 보리가 20% 섞인 밥이 나왔다.

 다시 내무반. 간밤에 못 이룬 잠을 청할 작정인 듯 모두 편한 자세를 취한 채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는다. “이게 제 애인입니다.” 하현기 상경(22)이 불쑥 내민 액자 속에는 영화배우 강수연의 사진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12시 40분에 ‘상황’이 떨어졌다. 학생들이 명지대에서 파고다공원까지 시가행진을 벌일 예정이라는 무전연락이 온 것이다. “에이XX.”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나온다. 익숙한 동작으로 전투복을 입고 닭장차에 오른다. 그 와중에도 꼭 챙기는 게 있다. 빠져서는 안될 장비인 바둑 · 장기 등이다. 시위를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며 대원들은 웃는다.

 이들은 대학의 학기를 프로야구 시즌에 비유한다. 시위진압이 생활화되다 보니 시위디를 ‘이겨야 할 상대팀’으로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1학기는 ‘전기리그’이다.

 12시50분 출동. 9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재철 일경은 버스 속에서 그이 ‘갈등’의 일단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전교조 집회 같은 데 동원되면 눈물이 날 때도 많습니다. 꼭 담임선생님 같은 분들을 상대로 진압을 해야 할 때는 무척 괴롭습니다.”

 ‘상황대기’ 장소는 신촌로터리. 이들을 실은 버스가 서강대 앞을 지날 때 한 대원의 입에서 “학생놈의 XX들” 이라는 말이 튀어난온다. 일단 대학생이면 이들의 휴식을 빼앗은 원망을 들어야 하는 셈이다. 숭실대학 수학과 출신 방종인 수경(23)에게 강경대군의 죽음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화염병에 화상을 입고 돌에 맞아 얼굴이 깨지는 동료를 보면, 젊은 우리가 이성을 잃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대원들의 나이는 대략 20세에서 22세이다. 대학생들과 같은 또래이다. 2소대의 경우 약 30%가 대학에 다니다 군에 입대했다.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시각은 1시20분.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지하도를 중심으로 검문 · 검색조와 경비조가 편성된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나머지 대원은 버스 안에서 책을 뒤적이거나 장기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낸다. 한참을 기다려도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2시50분. 난데없이 “전투경찰복으로 바꿔 입고 다시 출동하라”는 무전이 왔다. ‘사복체포조’가 여론의 지탄을 받자 전경복을 입으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버스는 다시 기동대로 향했다.

 “이게 뭐꼬.” 청바지에 푸른 윗도리만 입어오다 오랜만에 입는 전경복이 어색한지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4시쯤 미리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신촌으로 향했다.

군대 잘못 들어와 이래저래 ‘골병’
 5시27분 신촌 도착. 7시 이전에 ‘상황’이 끝나면 용산경찰서 관내로 가 방범순찰을 해야한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시국치안과 민생치안을 동시에 떠맡고 있다. “군대 잘못 들어와” 이래저래 골병들 처지이다.

 6시30분 상황 끝.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방법순찰”이라는 무전이 왔다. 이태원으로 심야불법영업 단속을 나가라는 것이다. 전날 밤을 꼬박 새웠는데 또 철야근무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여기저기서 불평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개는 7시부터 자정까지 우범지역을 단속해왔다.

 다시 기동대에 도착하자 시게는 7시35분을 가리키고 있다.
 8시55분. 방범순찰 취소와 함께 중대회식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중대장님 따봉”하는 함성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대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중대장이 시경에 전화를 걸어 “연 이틀 밤샘을 할 수 없다”고 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대원들의 사기문제라는 데야 시경에서도 별 수 없는 모양이다. 중대 전체가 활기를 되찾은 듯했다. 회식은 ‘상황’에 출동하면 관할경찰서장이 사례금 명목으로 5~10만원씩 주는 것을 몇 차례 모아 마련된다. 회식에는 소주 · 닭튀김 · 참티캔 · 과자 ·오이가 준비됐다.

 소주가 며 순배 돌자 전 대원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든다. 운동권 문화에 익숙해진 탓인지 중간중간 운동가요도 섞여 나온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며/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산자들아 동지들아/모여서 함께 나가자….”

 11시50분. 회식이 끝나고 점호지시가 내려왔다.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백골단’들. ‘6시에 기상, 8시까지 남대문 출동’이라는 내일의 ‘작전일정’이 벌써 짜여져 있다. 이들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일제히 자리에 누웠다. 내무반 구석에 놓여 있는 ‘백골’(헬멧)을 비추던 막사의 불도 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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