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밝히는 불꽃인가…일시적 충동인가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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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에 의한 명지대생 강경태군의 폭행치사에 항의해 지난달 29일부터 4일간 3명의 대학생이 잇따라 분신했다 맨 처음 분신한 전남대 박승희(20 · 식품영양2)양은 6일 현재 8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5월1일과 3일 각각 분신한 안동대 김영균(20 · 민속학2)군과 경원대 천세용(20 · 전산과 야간2)군은 이미 숨을 거두었다.

 대학생의 분신이 계속되자 각계에서는 앞다투어 자제를 호소하고 있으나 그 호소 중 일부는 오히려 학생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모 조간신문은 학생들의 분신이 “6공 들어 침체와 하강곡선을 긋고 있는 학생운동의 현 위상 내지 실정과 적지 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 신문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열정적인 분위기에 휩싸이기 쉬운 이들이 ‘분신의 투쟁성’에 매료돼 있다가 강군 사건이 터지자 반사적으로 행동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같은 분석은 정당한 것일까. 적어도 이번 사태의 본질을 짚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학생 운동권의 활동이 과연하향곡선을 긋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논란의 여지가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분신 학생들이 순간의 열정에 휩싸여 일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박승희양과 김영균 · 천세용군은 모두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색형’으로 적어도 강경대군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같은 또래에 비해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번째 분신자인 천세용군의 선배 ㄱ씨는 “보통 언론이나 기성세대가 얘기하는 것처럼 이들의 분신이 일시적 충동에 의한 것이라며 좋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도 5공 말기에 미주인사에 대한 폭거가 자행되고, 그것에 대해 사회가 무감각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충동을 느꼈었다. 아마 그들도 똑같은 심정에서 분신했을 것이다. 그들의 분신을 운동권의 안간힘 정도로 보도하는 언론 자체가 그들을 분신하게한 큰 요인이다. 그같은 보도는 학생들을 자극하면 자극했지 자제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전교조사태 후 변하기 시작한 분신 학생들
 전남대 박승희양의 경우를 보자. 박양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교조 관련 교사 8명이 해임되자 교내시위를 주도하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항의’를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과대표를 맡으면서 전남대 교지인 《용봉》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는 등 적극적인 학생활동을 해왔다. 평소 성격이 활달해 주위에서는 누구도 박양이  분신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안동대 김영균군은 교지《솔뫼》편집위원, 민속학과 부학회장으로 우리 것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군은 자취방 벽에 △미국말 · 미국 물건을 쓰지 말자 △모든 사람을 사랑하자 △하루에 책 20쪽 이상 반드시 읽자 △항상 자신에 대해 반성하자 등 6개 생활수칙을 적어놓고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경우너대 천세용군 역시 고3 때 가장 존경하던 선생님이 해직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봐야 했다. 천군은 입학 직후 민족사 연구 써클인 ‘한얼’에서 활동했으며 이번 학기부터 교내 주간 신문인 〈경원대신문〉에 만평과 4단 만화를 연재해왔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즐겨 경원대내에는 그의 자취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새벽 5시면 세차장으로 달려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학비를 조달할 수 있을 정도로 쫓기는 생활을 해왔으나 책을 항상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죽음의 의미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정파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모순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고3 때 가장 신뢰하는 선생님들이 전교조와 관련해 해직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박승희양이나 천세용군의 주변에서는 전교조사태 이후 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또 대학에 들어와 써클활등을 하면서 사회과학 서적을 접하고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천세용군의 한 써클 친구는 “이승만과 박정희가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 우리의 지적 탐구는 시작되었다. 사회과학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그동안 우리에게 거짓을 가르쳐온 사회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이같은 지적 충격은 기성세대들에겐 작게 보일 수 있으나 3공 때나 5공 때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에게는 큰 상처로 남아 있는 듯하다. 지난 3월5일 ‘수서비리 규명 ·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안 잔디밭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한 이준상(25 · 한국전력 직원)씨는 성명서에서 “어려서는 박정희가, 광주사태 때는 전두환이 구국의 영웅인줄 알았다. 이제까지 불의에 박수치고 정의에 돌 던졌다는 얘기인데, 이게 내 개인의 비극인가”라고 외친 바 있다.

 재야에서는 80년대 들어 분신한 대학생수는 25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대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살라 걷어내려는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시대는 그들에 대한 평가를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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