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 외면한 대입제도
  • 辛慶昱(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
  • 승인 199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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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비율 높아져 실기 우수 학생엔 크게 불리

 발레나 그림 피아노는 3~4세 때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이 때 시작하지 않으면 머리와 몸이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은 5~6세가 되면 벌써 예술성을 나타낸다. 물론 억지로 만들어지는 영재가 아니라 재질을 타고난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어린이들은 특별한 지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어린 천재가 끝까지 그 싹을 키워 나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입학시험이라는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 때마다 1년 이상씩 실기는 뒷전에 미루고 과외다 보충수업이다 해가며 일반 학과에 매달려 온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대입시험 제도는 이 어린 천재들에게 최악의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실기 배점률이 겨우 30~50%밖에 되지 않는 데다, 내신 성적 비율이 30%에서 40%로 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 고등학교 학생들이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과 똑같이 수학능력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각 예고가 엄청난 혼란은 겪고 있다.

 예고는 이제 예술 교육이라는 특수 목적을 포기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와 똑같은 입시체제로 들어가야 할 형평이다. 예고의 교과목 중 40%는 전문 교과이다. 이 과목들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일반 교과만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똑같은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으니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 셈이다.

우리의 영재는 우리가 키우자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실기보다 학과 공부에 치중하므로 실기는 부족하더라도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예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예능계 학교라는 특수성과 분위기, 또 부담감 때문에 실기를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면 실기 배점이 터무니없이 낮은 현행 입시제도 아래서 실기 실력은 떨어지지만 학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예능계 대학에 진학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무용수의 예를 들어 보자. 무용수의 경우 체격 조건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러나 무용수로서 걸맞는 체격을 갖지 못한 학생이 단지 학과 성적이 좋아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 많고, 그런 경우 무용가의 길로 정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년에는 자연계와 인문계를 따로 나누어 시행하는 방침이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럴 경우 예·체능계 역시 별도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번거롭다고 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무시한다면 바람직한 교육 정책이 될 수 없다.

 예능계 대학의 입시가 이같은 방식으로 계속 시행되는 한 훌륭한 예술가를 길러내는 천재 교육은 요원하다. 예술 영재들은 모두 외국으로 나가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 현상들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궁극적으로 예·체능계의 경우는 내신 성적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고와 인문계 고교와는 설립 목적부터가 다르다. 그런데 양자에 똑같은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음악원이 실기 90%, 내신 10%로 실기 우수자를 선발했다. 그러나 그것도 1백33명 정원에서 99명만 선발하는 등 실제로 전국적으로 볼 때 많은 실기 우수 학생들이 갈 곳이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음악대학 학장들은 내신 성적이 필요치 않다고 교육부에 건의한 일 도 있다. 예능계 지망 학생만 따로 볼 수 있는 대학수학능력 고사를 통해서 일반 학과를 평가하고 각 전공별로 실기 배점률을 달리하여 선발할 수 있도록 대학에 자율권은 주어야 한다.

 예고와 똑같이 특수목적 고교인 과학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은 절대평가 제도로 매겨진다. 예술 영재도 이처럼 과학 영재와 똑같은 배려하에 육성되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영재 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훌륭한 교수들이 있다. 그런데 왜 학생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야만 한단 말인가.

 우리는 어려서 일찍 외국에 나가 성공한 예술가에 박수 칠 줄은 알아도,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성장시킬 수 있는 제도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다. 하루 속히 영재교육 제도를 개선하여 우리의 영재들이 우리나라에서 배워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辛慶昱(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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