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팔뜨기’미술행정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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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파행 운영이〈반인종차별전〉파문 불러

 4월28일 국회 문공위에서는 지난 3월21일~4월21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반인종차별전〉의 전시 축소 책임을 묻는 대정부 질의가 있었다. 흑백분리통치에 짓밟힌 남아프리카공화국흑인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이 전시는83년 이래 계속돼온 대규모 국제 순회전으로 국내전에서 “이념성 등의 이유로” 주요작 5점 등 총 35점이 누락됨으로써 물의를 빚은 바 있다(《시사저널》77호 70쪽 참조). 문화예술홀동 전반의 경색 국면 속에서 미술계의 강력한 항의를 촉발했던 이 전시 파문은 최근 국내의 인권상황과 관련, 정부 당군의 고의적 개입 여부를 규명하는 데 의원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어령 장관의 국회 답변 ‘진실성’ 의문
 이날 질의에 나선 손주항 의원(신민0은 예술의 전당(이하 전당) 이사장인 조경희씨 대신 이어령 문화부장관에게로 모든 질문의 화살을 돌렸고 조홍규 의원(신민0은 “전시 축소를 지시한 ‘모기관’의 실체”를 추궁했다. 이에 대해 이장관은 “전시회의 계약 및 개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항의가 일어난 다음에야 알았다. 현재 예술의 전당에 대해 자체감사를 실시중이므로 이달만 감사가 끝나는 데로 책임 소재를 규명해 확실한 답을 하겠다”고 답변했다.

 전적으로 저당측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이장관의 발언은 “전시 전 주위에서 일부 꺼리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를 보고받은 장관 자신이 개최를 지시했다”는 전당측 한 관계자의 말과 크게 엇갈린다. 사태의 진정을 바라는 전당측의 함구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으나 이 관계자는 조 이사장을 통해 그같은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고 전했다.

 한편 전당 감사건에 대해 문화부 감사실은 “이번 감사가 통상 2년마다 실시되는 정례감사로서 축제극장의 신축 등 공익자금으로 집행되는 전당의 업무 전반을 다루는 것이며〈반인종차별전〉의 진상규명과는 무관하다”고 답했다. 예술국 역식 “전당 미술관의 기획전 관계는 그쪽의 ‘자율 업무’이지 문화부가 관여할 분야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결국 이장관의 “감사도중”이란 답변은 ‘위기모면용’으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진상 밝히고책임 가려 재발 막아야
 사태 발발후 4월18일 한국을 방문한 주최측(반아파르트헤이트 세계미술가협회)실무자는 ‘전시 취지가 변조된’ 도록을 재발간한다는 선에서 전당측과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국내 일부 미술인들은 공동대책위를결성, 전시왜곡에 항의하는 규탄대회를 열었으며 미국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예술가단체인 AAA는 조이사장에게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어 참여작가 마크브뤼스는 항의문을 발표했고 그 결과〈반인종차별전〉파문은 이번 임시국회로 이어지는 등 큰 물의를 빚은 것이다. 그러나 전당측과 노조, 미술계와 문화부 등이 팽팽한 대립을 지속했을 뿐 사태의 해결을 위한 진전을 별달리 이루어진 게 없는 듯하다.

 공동대책위(공동위원장·윤범모 시학철 임옥상 심정수)는 사태 직후 반아파르트헤이트 세계미술가협회 파리본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그러나 본부에서 파견된 협회 사무장 샹탈 보네는 한국의 국내 문제에 말려들기 싫다는 듯 전시작품을 꾸려 황급히 돌아가버렸다. 협회 측 공식 입장이 아직 없다며 일체의 기자회는 “관객의 전시회 수용 문제는 나는 모른다. 우리로선 흔적으로 남는 도록의 재발간이 더 중요하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남겼다.

 이같은 파리 본부측의 미온적 대응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고속전철 수주를 탐내는 프랑스 총리의 방한 시점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으나 방한중 보네의 업무를 도운 프랑스 대사관 피에르 캉봉 문전관은 이에 관한 일체의 답변을 거부했다.

 공동대책위원회측은 현재 이번 사태와 관련한 백서의 발간 및 설문 조사와 함께 ‘반아파르트헤이트 및 제3세계 문화예술’에 관한 홍보전, 세계 지식인·예술가들과 연대한 서명작업 등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미술인들은 이번 사건을 전당운영의 비전문성과 파행성, 그리고 왜곡된 예술관을 가진 문화관료들과 미술계 원로중진인 전당의 일부 운영자문위원들의 경직된 시각에서 빚어진  결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기회에 명확한 진상규명으로 책임소재를 가려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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