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드는 선거’ 독일식이 좋다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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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의 반만 소선거구에서 뽑고,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결정하면 지역대립을 없애고 돈 쓰는 폐습도 줄일 수 있다.”

선거 비용이 몇 억원 내지 몇 십억원씩 든 선거제도를 고쳐 영국식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발단은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즉 김대통령이 선거비용이 8백만원 정도밖에 안드는 영국식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고 운을 떼자 민자당에서 재빨리 선거법 개정 요강을 만들었다. 민자당 개정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후보 인당 법정 선거비용을 지금의 절반 이내로 줄이고, 이를 위반한 자는 당선 무효는 물론 유죄 판결을 받게 하고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작년 총선거 때 법정 상한선은 선거민 수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1억원을 넘었으므로 개정안대로 한다면 5천만원 정도로 삭감되는 셈이다. 이렇듯 선거 비용 반감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선거운동원에 대한 ‘실비 제공’을 금하는 것이다. 물론 유권자에 대한 향응이나 금전 수수도 엄하게 다스린다. 이밖에 경비절감 조처로 청중 동원에 돈이 많이 드는 합동 유세를 폐지한다든가 현수막을 걸지 않기로 되어 있다.

법 개정보다는 도덕적 동기 중요
 대체로 옳은 방향 설정이다. 다분히 영국식을 본뜬 것이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아마도 가장 비용이 많이 든 것은 ‘유급 선거운동원’ 제도였을 것이다. 가령 1인당 일당을 5만원으로 책정할 때 -막노동하는 사람의 노임 수준- 하루에 5백명을 동원하면 2천5백만원이 든다. 20일만 동원해도 인건비가 5억원을 거뜬히 넘어선다는 통계가 나온다. 물론 선거법과 선거관계 법규에 따르면 1인당 일당은 7천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없는 액수, 아마 어느 한 후보도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2백 37명의 지역구 당선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선거법 제 181조에 규정한 ‘선거비용 초과지출의 죄’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법을 엄하게 집행했다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졌을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려는 점은 그동안 정부가 그러한 선거법 위반 사범을 전혀 다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했는가. 여당 후보자야말로 조직하고 돈 쓰는 데 이른바 여권의 ‘프라미엄’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당 후보의 범법 역시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깨끗한 선거를 치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선거법 개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선거라는 게임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게임의 룰을 엄정하게 지킨다’는 도덕적인 동기를 발휘해아 공명 선거가 가능하고 돈 안드는 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다.

 선거법 개정에서 배려할 것은 1인1구 소선구제가 가져오는 지역 분열 현상이다. 소선거구제에서는 단순 다수를 얻은 사람이 당선되므로 세사람이 나섰을 때 34% 정도의 지지표만 얻어도 당선된다. 그런 결과로 영남은 민자당이 휩쓸고 호남은 민주당이 압승하는 지역 대결을 가져왔다. 이를 극복하려면 ‘다수표는 다수의석을 만들고 소수표는 소수 의석을 만드는’ 비례대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에서 이를 채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독일식’ 도입 준비
 우리도 예컨대 시 · 도 단위로 정당 후보명단을 만들어 제시하고 제시된 명부에 일괄 투표한다면, 국회의원 후보가 돈을 써 조직을 강화하고 관혼상제에 찾아다니면서 득표활동을 할 필요가 원천적으로 없어진다. 사실 돈 안드는 제도를 꼭 채택하려면, 영국식보다는 대륙식을 도입하는 것이 열번 백번 좋다. 소선거구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지구당’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평소에 선거 기반을 다지고 확대하여야 한다. 선거 때만이 아니라 음으로 양으로 평상시에 돈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선거민도 국회의원이나 후보자들한테 금전적으로 신세 지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정치 문화로서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생활 문화에 속한다.

 따라서 후보자와 선거민 간의 모든 금전거래를 차단하려면 소선거구제를 아예 없애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헌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소선거구에서 나오는 의원 정수를 전체의 절반으로하고, 나머지 절반을 시 · 도 단위로 작성한 정당 명부에 투표해 결정한다면, 소선거구제가 가져오는 지역 대립 현상을 없애고 돈쓰는 폐습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이른바 독일식이다. 일본의 연립 정부는 지역구 2백50명과 비례 대표 2백50명으로 중의원 총수를 정하고, 유권자는 누구나 지역구 후보자에 한표를 던지고 정당명부에 다른 한표를 던지는 선거법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금권선거를 종식하기 위해 미야자와 정부에서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같은 정치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정치력이 부족해 국민의 신임을 잃고, 일부 개혁파가 야당 연합과 손을 잡음으로써 40년간 지행해온 자민당 일당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의 경우, 선거제도 개혁에 여야가 뜻을 같이하고 있다. 돈안드는 선거일 뿐 아니라 망국적 지역 분열에 종지부를 찍는 개혁이 단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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