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통치 종지부 찍어야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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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여, 죽어서는 안된다”는 언론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부정비리에 젖어 있고 어른들의 잘못이 꽃다운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참회하는 소리, “죽지 말고 살아서 부정 불의와 싸워야 한다”는 호소도 있다.

 반대로, ‘시위문화’라는 색다른 새 낱말을 들먹이며화염병과 투석으로 얼룩진 시위방법을 규탄하면서 백주에 전투경찰이 젊은학생을 쇠파이프로 때려 죽인 사건의 잔인함을 축소해석하고, 분신자살한 젊은이들의 행동을 은연중 깎아내리려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 생명은 지구 덩어리보다 더 무거운 것, 오죽했으면 제 몸에 불을 지르겠는가 하는 연민의 정 없이 오늘의 위기에 대한 바른 인식은 어렵겠고 따라서 “젊은이여, 죽어서는 안된다”는 감정적 호소만으로, 그리고 ‘시간이 약’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는 사태가 근본적으로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집권세력이 시국의 심각성을 바로 인식하고 있느냐에 있다. 가령 강경대군의 살해 사건이 ㅇㄹ어났을 때 민자당은 ‘지금은 오로지 국민에게 엎드려 사과할 뿐’이라고 발표했으나 거기에걸맞는 어떤 겸손한 조치도 나온 것이 없지 않은가. 노태우 대통령도 사건 발발 엿새만에 ‘이번 일로 국민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다시 한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언론 기고나들은 ‘노대통령 국민에 사과’라고 대서 특필했으나 그것도 김영삼 대표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발언한 것일 뿐, 국민 앞에 직접 발표한 것도 아니었다.

 정부 여당의 시각은 안응모 내무장관 한 사람에 책임을 지우고 불법적으로 시위진압에 동원된 전투경찰을 점차적으로 일반경찰로 교체하고 백골단에 정복을 입히면 된다는 저???도로 보인다.

평화적이건 폭력적이건 시위느 무조건 원천봉쇄되고
 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강군 치사사건은 데모를 막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고 따라서 좀더 현명하게 유연성있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사태가 계속 악화되자 ‘경찰의 학교내 진입 억제’라든가 ‘과거에는 폭력시위든 평화시위든 용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시위가 민주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 평화적 시위는 보장한다’는 것으로 다소 바뀌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강군 치사사건 일주일 후에야 수천 수만명에 달하는 항의시위가 잇따라 일어나가 마지 못해 취하는 유화책에 불과하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정부가 만사를 힘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그리고 그런 사고의 바탕 위에 벌어진 ‘공안통치’를 대담하게 청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공안통치’라는 낱말 그 자체를 부인하고 공권력행사가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정부의 제1차 과제라고 말한다. 공안통치는 정권안보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공권력의 남용을 뜻하는 것이요 법과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실은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반민주적 관행을 말한다.

 89년 봄 이른바 ‘공안정국’을 계기로 정치의 주도권이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으로부터 행정관료의 손에 넘어갔고 3당합당으로 무소불능의 정부가 되었으며 작년 6월 안내무장관은 ‘사회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학원, 노동현장은 물론 언론사에도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권력의 교만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그대로 옮겨졌다. 방송사 대학 공장 교회 성당에까지 무장경찰이 뛰어들어가 ‘불법파업자’ 또는 ‘불법시위자’를 색출하는 등 ‘적의한 법의 절차’는 무시되고 시위는 평화적이건 폭력적이건 무조건 원천봉쇄되었다.

사과에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표시하는 용기를
 단순한 시위제지가 아니라 ‘공격형 진압’이었고 거기서 진일보하여 검거위주의 작전이었다. 시위 주동자를 기필 체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백골단의 강화였고 시위학생 한명을 잡으면 2박3일의 특별휴가가 주어지는 사례가 있다는 보도, 바로 이것이 쇠파이프로 강군을 때려죽이게 몰고간 공안통치였다.

 말로는 민주화시대라고 말하고 ,권위주의 시대에는 ‘학생시위는 곧 민주화운동’이라는 시각이었으나 지금은 정치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평화적 시위집회가 ‘원천봉쇄’되고, 그러므로 해서 화염병과 최루탄이 맞붙어 시가전을 벌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맞고 다치고 끝내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빼앗기는, 그런 민주주의는 없다.

 시국을 이렇듯 악화시킨 데 부도덕한 기성세대가 공동으로 책임질 일이고 모두 자기 입장에서 ‘내탓’이라 크게 반성하고 겸허한 자세로 사회안정을 기하여야겠고, 학생들 역시 아무리 선한 동기에서도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폭력시위는 그만두어야겠다.

 그러나 시국 수습의 실마리는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정부가 독재시대의 잔재인 ‘공안통치’에 종지부를 찍는 데서 풀 수 있다. 또한 나라살림을 이꼴 이 모양으로 만든 데 정치적 도의적 책임이 있는 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은 국민에게 사과하는 데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표시하는 용기를 보여야겠다. 내각의 총사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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