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볼모, 한반도 핵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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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장 가능성 의심받아 … 주한미군 핵무기는 “확인도 부인도 않는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것은 질서재편기의 국제적 권력투쟁이다.” 고려대학교의 李昊宰 교수(국제정치학)는 최근의 동북아 정세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유럽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이미 냉전의 종식에 합의했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국가간의 경쟁(권력투쟁)이 아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 한·소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그는 넓은 의미에서 이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주도권 다툼이 배경에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동북아시아의 ‘권력투쟁’ 속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북한의 핵문제이다. 북한에 압력을 가해 국제원자력위원회(IAEA)의 핵안전협정 가입을 유도하려는 미국 및 한국 정부(최근에는 소련측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의 의지와 이 문제를 주한미군 핵문제와 연계하고자 하는 북한의 주장이 정면으로 맞서 있는 것이다.

 여태까지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장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북한의 핵무장화 가능성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상당히 과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즉 현재까지 제시된 증거만 가지고는 북한이 핵무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기술 수준이나 경제력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초부터이다. 이때부터 서방언론들은 대체로 미국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보다 신빙성 있는 근거가 제시된 것은 89년 6월 일단의 미국 고위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정부 실무자들에게 미국의 첩보위성이 촬영한 북한의 핵관련 시설에 대해 브리핑하면서부터다. 89년 3월 미국첩보위성 KH-11은 북한의 영변 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새로운 건물이 신축중이고 그 주변의 강변에서 폭발물 실험을 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이 위성사진 결과에 대해 미국 정보당국은 새로운 신축중인 건물이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일 가능성이 높고 폭발실험 현장은 핵뇌관 실험 흔적일 것이라는 의심을 품게 됐다고 한다.

 한국정부에 대한 브리핑 이후 미국의 전문가들은 90년 9월 일본을 방문하여 그 이후의 진척사항까지 포함된 더욱 상세한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정부가 일본쪽에 북한 핵시설에 대한 브리핑을 한 것은 북한과 일본의 수교교섭이 급진전되는 것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였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정찰위성의 위성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적은 없다. 다만 90년 2월 일본의 도카이대(東海大) 기술정보센터팀이 프랑스 스포트위성이 쵤영한 사진(43쪽 참조)을 공개하면서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분석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8백32㎞ 상공에서 지상 10m 건물을 점 하나로 잡아낼 수밖에 없는 스포트위성의 해상능력 때문에 이러한 분석결과의 신빙성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미국 정찰위성 KH-11이 지상의 수십㎝ 정도의 물체까지 포착하는 고도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건물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기 때문에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이 플루토늄 재처리 공장인지 아닌지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위성사진’만으론 섣불리 단정 못해
 북한의 핵무장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것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정찰위성이 영변의 핵시설물들에서 수상한 낌새를 채고 있을 비슷한 시점에 북한이 국제 원자력위원회의 핵안전협정을 계속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85년 12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했는데 규정에 따라 18~24개월 이내에 하도록 돼있는 국제원자력위원회의 안정협정 가입을 주한미국핵과의 동시사찰을 주장하며 미뤄온 것이다.

 이러는 동안 북한의 원자력 수준은 계속 발전해왔다. 북한에는 원래 60년대에 소련의 원조에 의해 지어진 2MW급 실험용 원자로가 1대 있었는데 70년대에 이를 8MW급으로 개량했다. 그리고 80년대부터 짓기 시작해 87년부터 가동되고 있는 30MW급 원자로가 1대 있다. 또한 84년부터 90년대 중반을 목표로 50~2백MW급 원자로를 짓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또한 함흥·웅기 등에 매장량이 풍부한 우라늄 광산을 가지고 있고 영변에서 가까운 평산에는 우라늄 정련공장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우라늄 농축방법이다. 이 방법은 고도의 기술 수준과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몇몇 선진국들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다른 또하나의 방법이 플루토늄 재처리 방법인데 이는 원자로에서 타고 나온 핵폐기물질에서 핵분열성이 있는 풀루토늄 239를 분리해내 이를 일정량 모아서 핵무기를 만드는 기술로, 이론적으로는 화학공업 수준만 갖춰져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의 화학공업은 이 정도를 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풀루토늄 재처리 과정은 이론적으로는 화학공업 기술만 있으면 되지만 실제로는 방사능의 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차폐시설이나 원격조종장치 등 아주 고도의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 북한에 비해 몇배의 원자력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는 남한에서도 이 부분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원폭 제조능력과 실용화는 차원 달라
 북한의 핵무장화 가능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 북한은 남한과 달리 엄격한 통제사회이기 때문에 방사능 누출로 인한 물의를 쉽게 통제할 수 있다, 또는 북한이 이러한 첨단기술을 조총련이나 해외의 무기시장을 통해 이미 입수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설사 북한이 우여곡절 끝에 이런 문제들을 해결했다 해도 그 다음의 문제는 또 남는다. 즉 제조해낸 핵무기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실용화하는 문제이다. 실전에 사용할 수 없는 핵무기는 가지고 있으나 마나한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원자폭탄1~2개를 제조할 수 있는 것과 이를 실용화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별개의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반적인 산업 수준이 총체적으로 골고루 발전해야 하는데 북한은 현재로서는 그런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호재 교수는 “한 나라의 핵무기 산업은 그 나라의 공업기술 수준 전반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북한의 공업 수준은 당분간 핵무기의 실용화가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李銀哲 교수도 “북한의 공업 수준이 전반적으로 발달한 상태에서 핵문제가 제기됐다면 우려해야 하나 현재는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한다. 일본의 군사전문가 쓰가모도 가쓰이치(塚本勝一)도 《월간 아사히》91년 2월호에 기고한 한 논문에서 대체로 이와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핵무기의 실용화에 필요한 공업기술로 이들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대개 원하는 시간 및 장소에서 정확하게 핵무기를 터지게 하는 정교한 기폭장치, 핵무기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인 핵폭발실험 장소, 핵무기를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보관하는 문제, 상대방의 방공시스템을 뚫고 핵무기를 피폭지점까지 운반하는 운반수단, 핵폭발의 피해가 상대방 지역에만 미치도록 하기 위한 기술력 고려 등이다. 이러한 기술조건을 완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첨단기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초설비, 그리고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조건들을 갖추었다 해도 국토면적이 좁고 남·북한의 경계선이 맞닿아 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수성은 실전무기로서 핵무기의 효용성을 무력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북한이나 남한이 상대방에 대해 핵공격을 가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우선적인 고려사항은 핵폭피해가 상대지역에 국한될 뿐 자기쪽에는 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반도의 어느 곳에서든 핵무기가 터지기만 하면 한반도 전체가 핵폭의 피해를 받을 뿐 아니라 중국이나 소련 일본까지 피해권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 수준이나 경제여건상 핵무기를 실용화하기도 어렵고 만들어놓았자 무기로서의 실용가치도 별로 없는 핵무기를 북한이 만들려고 할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현재 영변에 짓고 있는 건물은 무엇이고 또 안전협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은 영변의 핵시설들에 대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용”또는 “전력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국제원자력위원회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에 대해서는 “남한에 1천여기의 주한미군핵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서만 사찰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며 남북한 핵의 동시사찰 또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주장해왔다.

주한미군 핵무기에 대한 ‘거래조건’
 따라서 북한이 한편으로는 영변의 원자력 발전소 주변의 수상쩍은 건물을 지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국제원자력위원회의 핵안전협정 가입을 계속 거부하는 것은 핵개발의 가능성을 계속 암시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몸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같다.
 이와 관련, 이은철 교수는“북한은 현재 영변에 짓고 있는 건물을 외관은 완공시키되 가동은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또 이호재 교수는 “북한이 현재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영변의 원자력 시설들은 북한측의 주장대로 발전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반도의 핵문제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호주의 피터 헤이즈 교수도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 (47쪽참고)에서 “북한이 핵안전협정 가입을 거부하면서 추구하고 있는 것은 군사적 전략이 아닌 정치적 전략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즉 미국이 핵무기의 존재를 “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정책으로 핵무기에 대한 ‘불투명성’을 높여 전쟁 억지력을 유지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핵무장 가능성을 은근히 내비침으로써 이를 주한미군핵에 대한 ‘거래조건’으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불사용 보장요구에 대해 미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나 미국 자신의 대해 핵공격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이 먼저 핵공격을 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임을 들어 북한의요구조건은 이미 충족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개별협상에는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한 국가가 18개월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협정에 가입하는 것은 국제법적 준수사항이지 협상이 필요한 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핵공격 안하겠다고 약속하라”
 두번째는 국제원자력기구내의 핵보유국가와 비핵보유국가간의 오랜 논쟁과도 관련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56년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만든 기구이다. 비핵보유국가는 일단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하고 핵에너지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증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의 정기적인 핵사찰을 받으면 핵관련 기술을 제공받게 된다.

 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이 이 기구의 창설 이전에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기득권을 인정함으로써 이들 국가들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핵무기의 수평확산(비핵국가의 핵무장)은 막으면서 수직확산(핵보유국가가 핵무기의 질적 수준을 높여나가는 것)은 허용하고 있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성에 대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하라고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 소련 등 핵무기 보유 국가들은 그렇게 될 경우 자위의 수단으로서의 핵무기 사용까지 금지하게 됨으로써 핵무기의 효용성이 상실될 것을 우려해 반대해왔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핵 불사용 선언은 국제원자력기구내의 핵국가와 비핵국가간의 오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이 이에 대해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북한에 대해 예외를 허용했을 경우 자칫 이문제가 비핵국가들 모두에게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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