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살 먼저 깍는 자세로”
  • 도쿄·채명석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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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슌이치 도쿄都지사

 인구 1천2백만명의 초대형도시 도쿄都는 1년 예산만 해도 자그만치 40조원이나 된다. 이는 캐나다 중국의 1년 예산에 버금가는 규모이며 한국 연간 예산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지난 4월 초에 치러진 도쿄도지사선거에서 현직의 스즈키 슌이치 후보는 ‘고령(80세) 다선(3선) 지지정당의 분열(무소속)’이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총투표자의 반에 가까운 2백30만표를 얻어 압승을 거뒀다. 자민 공명 민사당이 연합공천한 ‘3당 다국적군 후보’ 이소무라 히사노리(전 NHK뉴스 앵커맨) 후보를 80여만표 차로 압도하고 도쿄都 사상 첫 ‘4선 지사’라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스즈키 지사가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선을 달성한 것은 ‘자치박사’ ‘행정의 프로’라는 그의 별칭이 대변해주듯이 탁월한 행정수완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또 나이로 보아 아들뻘밖에 안되는 당시의 오자와 이치로 자민당간사장이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그를 무리하게 자민당 공천후보에서 끌어내린 것이 유권자들에게는 ‘노인학대’로 비쳐져 동정표가 몰리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23년 전, 56살의 나이에 자민당으로부터 첫도지사출마권유를 받았으나 당시의 사토 총리는 “너무 젊다”는 이유로 공천을 거부한 적이 있다.

 내무성 관료로 관계에 첫발을 내디딘 스즈키 지사는 자치성 사무차관까지 지냈고 이때 지방자치제도의 골격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어 8년간 도쿄부지사로 재직하면서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도지사자리를 노렸으나 혁신계 미노베 료기치 지사의 등장으로 12년간이나 ‘재수생’으로 머물러야만 했다.

 그가 도쿄도지사로 처음 당선된 때는 79년. 취임 2년만에 5천억원의 재정적자를 일소함으로써 그의 행정수완은 높게 평가되었다. 4월23일 취임한 스즈키 지사가 《시사저널》과 서면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 지난번 도쿄도지사선거에서는 ‘지방자치의 독립’이 선거쟁점으로 부각되었는데 지사께서는 평소 지방자치제와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지….
 지난번 선거에서는 지방(도쿄도의회)이 결정한 후보를 일방적으로 중앙(자민당 수뇌부)이 뒤집었기 때문에 저는 선거민들에게 “지방자치를 지키자”고 호소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자민당에서는 “일본이 있고 도쿄가 있는 것이지 도쿄가 있고 일본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격을 해왔지만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지방자치라고 하는 것은 계층적이기 때문에 지방자치제 위에 중앙정부가 있는 것입니다. 즉 국민이 있고 정부가 있는 것처럼 자치제가 있고 정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지방자치제와 중앙정부는 어떤 식으로 조화를 이뤄가야 됩니까?
 일본의 자치제도는 원칙적으로 정부의 감독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치제책임하에서 자립적으로 행정을 운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는 현실적으로 국정과 밀접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자치제는 국가통치권의 일부를 행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의 독자성을 발휘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국가 시책과 조화된 정책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일본의 자치제도도 한국의 경우처럼 광역과 기초자치제로 나뉜 ‘2층제’입니다. 최근 광역자치제인 도쿄도와 기초자치제인 특별구의 관계에 관한 개정작업이 진행중이라는데, 그 내용을 소개해 주십시오.
 일본의 경우 都·道·府·縣은 광역, 市·町·村은 기초자치제로 구분됩니다. 양자는 원칙적으로 대등한 관계에 있습니다만 기초자치제는 주민생활과 직접 관련이 많은 행정서비스를, 광역자치제는 통일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도쿄都의 경우, 23개의 특별구가 있습니다. 상하수도 청소소방 등 종합적인 행정서비스는 도쿄도가 통괄하고 있는데 최근 23개 구의 자치권확대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쓰레기수집·운반사무를 특별구에 이미 이전시켰고 현재는 재원배분방법 등을 개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 지난번 선거에서 지사께서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경쟁후보였던 이소무라씨는 ‘행정의 무경험자’라는 이유로 도쿄도지사로서는 부적합하다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12년간의 지사 경험으로 볼 때 수도의 책임자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보십니까?
 중앙정부가 위치하고 있는 도시라는 성격상, 수도의 長은 그만큼 짐이 무겁습니다. 도쿄도의 경우, 인구 1천2백만명에 경찰 소방 교육기관 등의 공무원을 다 합치면 직원수가 21만명이나 됩니다. 1년 예산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등의 전체예산에 필적하고 있고요. 따라서 수도의 장이 갖춰야 할 첫째 요소는 행정력이라고 봅니다. 두번째 요소는 통합력입니다. 복지 교육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지역주민의 요구를 체계적으로 정책화하고 사업화시킬 수 있는 능력, 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통합능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밖에도 격변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을 꿰뚫어볼 수 있는 선견성도 필요할 것입니다. 또 수도의 성격상 국제화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 규모로 사고하면서도 지역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것도 필수조건입니다. 그리고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격무를 감당해낼 수 있는 건강한 심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 지사께서는 이미 팔순이십니다. 도쿄도지사는 자동적으로 백개가 넘는 각종 직함을 겸직한다는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고 계십니까?
 우선 잘 먹고 잘 자는게 기본입니다. 운동으로는 매일 向法(허리를 굽혀 두손을 발끝에 갖다붙이는 동작)체조를 거르지 않고 있습니다. 또 아침마다 실내자전거 타기와 매달리기 등을 30분씩 하고 있습니다. 저보고 고령, 고령하는데 몸은 아직도 장년입니다.

● 전임자였던 미노베 시절에 생긴 재정적자를 단기간에 재건시킨 것이 지사의 최대 공적으로 꼽히고 있는데 취임 후 어떤 시책을 폈습니까?
 79년 제가 취임해보니까 재정적자가 무려 1천11억엔이나 쌓여 있더군요. 그밖에 여러가지를 다 합쳐 실질적자는 2천억엔이나 됐습니다. 사회당과 공산당을 지지기반으로 하던 미노베 지사가 복지우선이다 환경우선이다 하면서 선심행정을 12년간이나 계속하다보니 재정이 파탄에 이른 거죠. 저는 재정재건을 최우선과제로 내걸고 직원정수, 퇴직금 등을 대폭 삭감하는 행정개혁에 착수했습니다. 3년동안 직원정수를 1만명 정도 삭감했고 관리직자리도 2백개나 없앴습니다. 그밖에 방만했던 복지 행정도 개선했습니다. 예를 들면 전임 미노베 지사가 노인들의 교통·의료기관 이용을 무료화했는데, 이를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고쳤지요. 공공요금도 적정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래서 2년만에 재정적자를 말끔히 없애고 이후 연속 9년째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인원삭감이나 퇴직금삭감 때는 당연히 직원노조의 반발이 있었을텐데요.
 그렇죠. 어려울 때일수록 제살부터 먼저 깎고 남의 살을 깎아야죠. 저는 취임 후 제 봉급을 우선 절반으로 깎았습니다. 그리고 재정재건위원회라는 심의기관을 설치해 거기서 내린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결론에 입각, 모든 일을 추진했기 때문에 노조에서도 큰 반발은 없었습니다.

● 일부에서는 도쿄도의 재정이 재건된 것은 지사의 행정수완때문이 아니고 고도성장에 따른 세수의 자연증가 덕택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난 80년대에 호경기가 지속되어 세수의 주종인 법인2세(법인사업세, 도민세)가 대폭 늘어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전임자와 같이 인기 위주로 선심행정을 계속 폈다면 적자는 결국 해소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의 정책목표는 어디까지나 건전하고 효율적인 행정·재정운영에 있습니다.

● 지사께서는 도쿄만을 메워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는 이른바 ‘임해부도심계획’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약 8조엔을 들여 도쿄만의 매립지에 취업인구 11만명, 거주인구 6만명 규모의 새로운 도심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정보가 자유롭게 드나들며 직장과 주거가 근접해 있고 주민들간의 따뜻한 교류를 부활시킬 수 있는 쾌적한 시가지를 새로 건설중입니다. 완성까지는 20년이 소요되는데 94년 4월에 그곳에서 세계 도시박람회 ‘도쿄 프론티어’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 도쿄를 21세기의 세계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해 주십시오.
 도쿄는 도시로서 네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1천2백만명의 생활터전, 둘째는 수도권지방의 중핵도시, 셋째는 수도, 넷째는 세계도시로서의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도쿄는 런던이나 뉴욕에 필적할 만한 세계도시로 성장했고 생활수준도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본의 수도로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금융·정보기지로 도쿄를 발전시켜 국제경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역할에 걸맞는 도시기반이나 시설을 정비하고 외국인에게도 거주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21세기의 세계도시’라는 슬로건에 걸맞지 않게 지금 도쿄는, 심각한 주택 교통 환경 등 개발도상국의 수도가 안고 있는 것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먼저 도청직원의 4할 이상이 도쿄 외곽에서 출퇴근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심각한 주택문제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지금 도쿄의 주택값은 평균적 세대가 1년간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의 14배 정도로 폭등했습니다. 그 원인은 금융완화정책과 사무실에 대한 초과수요가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도쿄는 이러한 주택난을 극복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35만호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그중 도쿄都 등이 직접 건설하는 공공주택이 11만호이고 임대주택 14만호는 관민공동으로 지을 예정입니다.

● 도쿄의 자동차보유대수가 작년 4백30만대로 6년 전에 비해 80만대가 늘어났고 체증시간도 40%증가 했습니다.
 도로망정비책의 일환으로 우선 도심고속도로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하철도 새로 건설하고 모노레일 등 새로운 교통시스템도 적극 도입할 것입니다. 특히 도심부의 주차장문제가 심각한데 지상에는 여분의 땅이 없으므로 지하에 대규모주차장을 건설토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 도쿄의 쓰레기량은 사무자동화 등의 영향으로 5년간 30%나 증가해, 연간 처리량이 5백만톤으로 늘어났습니다. 또 과거 3백년 동안 도쿄도는 바다에 쓰레기를 매립해왔는데 현재 도쿄만의 매립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도쿄만에 있는 쓰레기매립처분장은 곧 한계에 달하게 돼 90년부터 새로운 처분장을 이용할 계획이나 이것도 수명은 1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쓰레기의 절대량을 줄여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도쿄는 생산에서 소비단계에 이르는 전과정에서 쓰레기량을 줄여가는 폐품활용형 도시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협조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즘은 기업들도 이 폐품활용운동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 도쿄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도쿄一極’집중현상이 그러한 대도시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봅니다. 분산대책이 시급하지 않습니까?
 일극집중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수도권이나 도쿄로의 일극집중인데 이것은 전국차원의 문제입니다. 둘째는 도심부로의 일점집중인데 이는 도쿄의 지역적 문제입니다. 이 일점집중에 대한 도쿄도의 대책이 바로 ‘多心型도시건설계획’입니다. 이 계획은 23개 특별구 내에 7개의 ‘부도심’을 건설하고, 교외인 多摩지구에 5개의 ‘心’을 정비해 도심부 집중경향이 있는 업무기능을 분산시킨다는 것입니다. 도쿄도 전체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이 계획은 적극 추진될 것입니다.

● 작년 가을, 일본 국회에서는 ‘국회이전 결의’가 채택된 바 있습니다. 그 결의 이후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천도론’ 논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데….
 도쿄는 메이지시대 이래 수도로서, 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일본의 발전에 크게 공헌해왔습니다. 따라서 천도론에는 절대반대입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미 기본적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첫째 도쿄는 수도로서의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고 둘째 만약 이전한다면 막대한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어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셋째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한 채 수도를 이전한다면 또다른 형태의 집중만 초래할 뿐입니다. 넷째 땅값 폭등은 도쿄가 수도라는 이유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수도권기능 이전문제는 외국의 예를 참고로 그 목적, 효과 등을 과학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또한 행정 및 재정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시키는 지방분권화가 선행되어야 수도권기능이 효과적으로 분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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