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시나리오 … 정계개편의 3방향
  • 박중환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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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당 合從連衡 · 야권통합 움직임 · 지방자치제 선거가 구도 가름할 핵심 변수

 정치판의 지각(地殼)운동을 예고하는 조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이 한두차례의 진동으로 끝날지, 여소야대 4당구조의 어느 한쪽을 뒤집어 놓을지, 아니면 판을 송두리째 바꿔놓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유리창이 잠시 떨릴 정도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야권의 일부에선 이미 심한 진동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마치 지진이 있기 직전에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내보이는 몸짓 같은 징후들이 요즘 정치판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요. 몇몇 성급한 이들은 다소 날뛰는 듯하고, 신중론자는 사태의 수순을 헤아리며 지켜보고 있지요.” 한 야당 중진의원의 희화적 비유이다.

 지각변동이 과연 얼마만한 위력으로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진원은 어디이며 어디로 번질지, 정치권은 정계개편의 향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계개편 전망과 관련해 李春九 朴熺太 鄭大哲 李相洙 李敎成 金相賢 朴容萬 崔炯佑 金正吉 張石和 盧武鉉 朴燦鍾씨 등 20여명의 여야 원내외 인사와 정치학교수 및 평론가 등의 견해와 예상을 한데 묶어 ‘가상되는 개편구도’를 크게 3개의 모델로 조립해 본다. 우리에게는 보편화되지 않은 접근방법이지만, 歐美 여러나라에선 정치분석을 할 때 자주 쓰이는 ‘시나리오 방식’의 하나이다. 이 방식은 외국의 경우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높여 주면서 예측키 어려운 상황과 위기에 사례별로 대처하는 데 유익하게 쓰이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90년대를 여는 새해와 92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는 시점을 각각 시작과 끝으로 설정, 그동안 예정되어 있거나 예상될 법한 정치일정을 기초로 꾸며진 것이다. 5공청산 가운데 인적 청산문제는 늦어도 90년 1월까지 일단락되는 것을 전제로 했다. 예상할 수 있는 주요 정치일정은 다음과 같다.

● 90년 2월 : 임시국회(지방자치제 관련 법안 처리 및 국가보안법 등 악법개폐), 평민당 전당대회(부총재 경선)
● 90년 5월 : 민주당 전당대회(총재단 경선 등 당 민주화 논란)
● 90년 여름 : 지자제 기초 및 광역의회 선거
● 90년 연말 또는 91년 연초 : 민정당 전당 대회(부총재 경선)
● 91년 봄 또는 가을 : 지방자치제 기초 및 광역단체장 선거
● 92년 봄 : 14대 국회의원 선거

 일정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남북한 정상회담성사 및 내각제로의 개헌 여부는 90년대 정국의 흐름을 틀어놓을 수 있는 중대사안이라는 점에서, 일단 현시화 된다면 그 시기도 정계개편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 작용될 법하다.

5공청산 후 민정이 정국 주도할 때
 첫번째 모델은 5공청산이 12 · 15 청와대 영수회담의 합의 수준에서 정리된 뒤 민정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되는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민정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도 평민당과 밀월관계를 유지한다. 두 당은 지자제 관련입법과 악법개폐 과정에서 정책연합이란 모양새로 협상정치의 한 장면을 연출해 나간다. 두 당의 이런 연출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얼마간 지속되어 영호남 지역편차의 이해 당사자인 두 당이 협조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지자제 중선거구의 전략으로 서로 취약한 상대지역에서의 입지를 확보한다. 또 90년대 벽두에 두 당이 법적 5공청산을 앞장서 완결했다는 이미지를 국민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을 노린다. 평민당은 이 시점에서 전당대회를 연다.

 반면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원내에서 점차 입지를 잃어가는 데다 새해 들면서 표면화되는 당내 통합 목소리로 갈등을 겪게 된다. 金泳三 민주당총재는 金鍾泌 공화당총재와의 동반관계를 유지한다. 2월 임시국회를 전후해서 민주당내 통합파 의원 등은 사무실을 갖추고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활성화될 경우 3야당과 재야신당 등 4개 정당에 추진 소위를 두고, 1차로 최소한 원내 교섭단체구성 정족수 20명을 확보한다. 목표는 원내에서 평민당 의석(현 71명)보다 많거나 육박하는 수준의 의원을 규합하는 것이다. 야권통합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는 평민당 의원 10명 이상이 참여해야 한다. 최소한 평민당 의원 10명이 빠져나와 참여한다면 민주 · 공화 · 무소속에서 51명의 의원은 모여질 것이라고 낙관하는 데서 나온 계산이다.

 통합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여권은 소외된 공화당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등으로 통합파의 입지를 죈다. 통합파측에선 이런 여권을 공작 정치작태라며 비난한다.

 정기국회 전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민정당은 평민당을 일제히 비난한다. 선거결과, 민정당 후보의 호남지역 당선율에 비해 평민당 후보의 영남지역 당선율은 상당히 저조하다. 민정당은 부산 · 경남에서 평년작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민정당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가운데 4당체제는 유지된다.

 민정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부총재 경선문제로 한차례 진통을 겪게 되나 대외적으로 당민주화라는 측면에서 여론의 호응을 얻는다. 이를 계기로 민정당의 후계자 문제가 정가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되며 이에따라 당내 계보가 구체화된다. 이단계에서 金復東 朴哲彦 琴震鎬씨등 盧泰愚대통령의 친인척 측근들의 향후 위상이 드러났다.

 한편 여야는 91년 지방자치단체의 長 선거를 겨냥, 인물찾기와 빼돌리기 경쟁으로 정가가 부산해진다. 단체장 선거에서 민정당이 예상외로 좋은 결과를 거둔다. 이 와중에서 민정당의 주도하에 정계개편은 가속화된다. 야3당은 당황한다. 통합신당이 출현하면서 범야당 창당 움직임이 표면화되나 한계에 부딪힌다.

 14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원내 의석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고, 야3당과 내각제 개헌을 추진한다. 분열된 야권은 겉으로만 반대를 외치다가 여권이 상정한 개헌안을 놓고 헌법에 규정된대로 국회에서 교차투표 방식으로 표결, 통과시키다. 이 개헌안이 프랑스나 핀란드식의 2원집정부형일 경우, 민정당이 차기 대권구도에 평민당과 정책연합으로 대통령과 수상직의 역할분담을 꾀한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盧대통령의 3 · 20 중간평가 연기조치 이후 나돈 민정 · 평민 사이의 밀약설, 그리고 金大中 金復東 역할분담설과 맞아 떨어지는 가상이기도 하다. 이런 가상의 스토리는 朴哲彦장관이 청와대에 있을 때 구상했던 것
가운데 일부라고 여권 주변에서는 이야기하지만 朴장관은 이에 대해 논평을 않으려 한다.

여권 분열 심화되고 야권통합 원활할 때
 둘째 모델은 여권 5공청산의 후유증으로 당내 갈등이 남아 내분의 조짐을 보이며, 야권에선 통합 움직임이 상당히 호응을 받게 될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지자제 의회선거 전까지는 첫 모델과 비슷한 정국의 흐름을 탄다. 그러나 백담사에서 나온 全斗煥씨를 정점으로 하는 張世東 許文道씨 등 5공 핵심그룹, 공직에서 물러나기는 했으나 TK 주류의 핵심인 鄭鎬溶씨의 지지 그룹, 6공에 소외된 權翊鉉 柳興洙 朴翊柱씨 등의 그룹, 그리고 대권도전을 강하게 시사하는 金復東씨 그룹 등 외곽 세력들의 움직임은 민정당 내의 갈등을 내연시킨다. 특히 鄭鎬浩씨의 재출마와 당선 여부에 따라 예상밖의 사태가 생길 수도 있을 듯하다.

 한편 야권에선 통합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두 金씨 퇴진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동교동 상도동 양 캠프에선 서로 비난한다.

 지자제 의회선거에서 민정당은 평민당과, 민주당은 공화당과 각각 취약지역에 연합공천한다. 투표결과는 지역편중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 야당의 열세로 끝난다. 야권통합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된다. 통합파측은 신당 결성의 앞 단계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후보를 연합공천 한다. 이 덕택으로 야권의 연합공천 후보가 많이 당선된다.

 민정당은 이즈음 TK의 신 · 구 세력간의 알력과 후계자 결정 문제로 심각한 내분을 겪는다. 끝내 盧대통령은 14대 공천권 행사 등 비상한 경고로 진정시킨다.

 14대 총선에서 연합공천한 통합시낭이 과반수 안팎의 의석을 차지했으나 사실상 13대 여소야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범야신당은 3金씨를 원로로 예우하고 집단지도체제로 출범한다. 그러나 정국운용에 한계를 절감한 여야 각 정파 지도부는 내각제 개헌을 시도한다. 14대 국회에서 표결로 개헌안이 통과된다. 이 모델은 민주, 평민 양당의 통합파 가운데 신중론을 펴는 인사들이 그린 스토리이다.

경제불안 · 시위로 정치권이 체제위기 느낄 때
 마지막 모델은 경제가 계속 어려워지는 가운데 노사분규와 운동권의 시위가 과격해져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때의 가상이다.

 여야 4당은 90년 가을 지자제 의회구성 선거를 치르면서 빚어진 과열된 정쟁의 후유증으로 정치권의 한계를 절감한다. 민정당은 야3당에게 정쟁의 일단 유보와 거국체제 구성을 제의한다. 평민당과 공화당은 조건에 따라 민정당의 제의에 응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盧정권 퇴진을 주장한다. 거국체제에 불만을 가진 평민 · 공화 양당소속 일부 의원들이 통합쪽에 가세, 재야신당과 함께 범야 신당 창당을 구체화한다. 92년 총선을 앞두고 거국체제는 붕괴된다. 개표 결과, 신당, 민정, 평민순으로 의석을 확보한다. 민정당은 평민당과 연합해 내각제 개헌을 시도하지만 원내1당인 신당이 대통령중심제 유지를 주장, 개헌 추진은 무산된다.
 이 경우는 최근 나돌고 있는 ‘90년 위기설’과 “야권통합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다소 성급한 일부 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다.

 이밖에 일본의 자민당식 보수대연합 구도가 있으나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인사들이 많다. 이 구도는 민정-민주-공화 3당이 정책연합 또는 합당 등을 통해 혁신적인 성격이 강한 평민당을 고립시킨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통합 또는 연합형태로 뭉쳐진 보수정당이 자민당식으로 당내 연정을 통해 정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6공 초기 민정당내 핵심에서 거론됐을 법한 구도의 한가닥이다.

 이들 가상 모델의 적중여부는 두고 봐야겠지만 새해는 정계개편 때문에 정국이 뜨거워질 것은 틀림없다.

 3金총재가 최근 KBS텔레비전과의 연쇄 인터뷰에서 정계개편과 관련해 밝힌 각당의 입장을 보면 충분히 예견되는 것이다. 개편의 필요성을 비교적 많이 느끼는 듯하는 金泳三 민주당총재는 “신년에 복안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金鍾泌 공화당총재는 “보수와 혁신의 색깔끼리 모여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金大中 평민당총재는 “내각제 개헌에 대해 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생각해 볼 수 있다”며 개헌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면서도 4당체제를 변화시키는 정계개편은 거부했다. 3金씨의 이런 언급은 3당의 상반된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이들의 입장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金大中총재는 그대로 있고 싶고, 金泳三 · 金鍾泌 두 총재는 구상은 다르지만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盧대통령과 그의 브레인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개편정국의 향방은 4당의 이같은 미묘한 관계위에서 지자제 선거 결과와 4당 중 정국 주도권을 누가 잡고 집권 레이스를 전개하느냐에 따라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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