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통치 청산돼야 위기해소
  • 정리·우정제 기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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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 정상적 방법으론 개혁이 안되므로 강력한 도전이 나오고 있다. 조희연 / 대학이 올바로 기능하기 위해선 현실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한상진: 최근 명지대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새로운 위기상황에서 학생운동의 향배가 대단히 주목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선 80년대 들어 학생운동이 다양한 이념적 성격과 분화를 겪게 되고 또 이전에 비해 현저히 높은 조직화 경향과 투쟁 양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볼 때 이런 큰 변화가 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게 됐는지 진단하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해보기로 하지요.

 조희연: 80년대 학생운동은 이념적·조직적 변화과정에서 매우 괄목할 만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을 할 수 있겠으나 80년 광주항쟁이 우리 사회 정치권력의 본질에 대한 투명한 인식의 계기가 되었고, 이후 우리 사회를 암묵적으로 지배해온 친미적 세계관에 대해 심각한 인식과 한국 자본주의 변화가 가져온 집단간·계급간 대립의 첨예한 현실적 전개를 배경이자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상진: 이념의 사회적 토대와 적실성이 쟁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있어서의 노동자의 양적 성장과 경제·사회적 착취와 압박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고, 농민대중의 생활상의 주변화 문제 등이 구조적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객관적 문제를 이념으로 담아 낼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우리 사회에 대단히 빈약했기 때문에 이념의 우회현상이 80년대를 통해 줄곧 일어난 게 아닌가 진단해볼 수 있습니다.

 조희연: 문제는 현실의 대립관계가 어떤 이념적 대립관계로 표출되느냐 하는 것인데, 주목되는 것은 제한된 현실의 지평을 넘어 급진 변혁적 시각까지를 포괄하는 형태로 현실의 대립을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한상진: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이념의 개방성을 요구한 속도가 평균적인 일반 시민의 감각보다 상당히 앞서감으로써 그에 대한 반발을 야기한 부작용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념문제를 떠나 한국사회의 정치발전 측면에서 본다면 학생운동의 공적은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저항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봉쇄돼 있던 권위주의 시대에 학생운동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민중의 참여를 위해 전위적 실천으로 도전해왔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6월항쟁이 가능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운동은 그동안 단순히 정치적 민주화에만 관심을 갖지 않고 민중의 생존권 문제에 직접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지요. 70년대 중반 이후 이런 현상이 가속화됩니다만 이것이 결국 다양한 부문의 사회운동을 가능케 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하겠습니다.

 조희연: 그러나 문제는 학생운동권이 배출한 이들 세대가 사회 각 영역에서 개혁을 실제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집단적 힘을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아직 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한상진: 그동안 공안정권의 체계화된 통제에 의해 수세에 몰렸던 학생운동의 힘이 빠른 속도로 원상회복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특히 근래 학생·청년 세대가 분신과 같은 방식으로 공안정국에 도전한다는 데서 현국면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분신정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단절과 불신이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조희연: 6공 초기 일정한 정도의 개혁이 불가피했던 여소야대의 구도가 3당합당에 의해 인위적으로 전환된 뒤 6공의 개혁성은 완전히 후퇴했고 그것이 이른바 ‘공안통치’로 표출되고 있는데, 민주화로부터 역진되는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해가는 학생들의 비판적 의식의 괴리가 현재와 같은 죽음의 저항을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한상진: 3당합당으로 인한 거대 여당의 탄생과 공안정국에서 상징되는 통치방식, 또 이념적인 공세 등 이런 것들을 놓고 볼 때 뭔가 대단히 강력한 도전과 위협, 자극을 동원하지 않는 한 개혁이 대단히 난망하다는 느낌을 젊은 세대는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좀더 정상적인 방법으로 모순을 개혁하는 방법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것, 오직 극심한 체제의 위협이 있을 때 비로소 개혁이 일어난다고 하는 대단히 각박한 역사적 체험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강력한 도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을 젊은 세대는 갖고 있는 것입니다.

 조희연: 최근 학생들의 분신을 비정상적 심성, 비정상적 이념에서 유래하는 것처럼 파악하는 일부 시각은 전적으로 옳지 않다고 봅니다. 죽음의 저항을 죽음의 통치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단 규정한 다음, 기성세대가 학생들의 자제 호소와 6공의 후진적 통치형태에 대한 개혁 요구를 병행해야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상진: 대학 내부를 들여다보더라도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올들어 대학민주화·학내민주화·교과과정의 자주화 문제가 쟁점화하고 있습니다.

 조희연: 대학이 창조적 지식과 기술의 생산처로 올바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현실구조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의식 수준에 걸맞는 정치질서가 형성되지 못한 데서 소모적 투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한상진: 현실개혁과 변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학생들의 경향을 단순히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충고로 달랠 수 없는 현실이고 보면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발전에 보다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조희연: 최근 ‘새로운 시위문화의 창출’이라는 국적불명의 말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학생들에게 권력이 요구하는 제도화된 형태로만 의사표현을 해주기 바라는, 권력에 위협적이지 않은 수준에서만 의사표현을 해주기 바라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실제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이런 문제는 대학을 대학답게 하고 대학생이 대학생다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지 조건을 방치한 채 대학생들의 행동양식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일 수 없습니다.

 한상진: 저는 대학이 현재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려면 사회참여 문제에 대해 훨씬 입체적이고 탄력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첫째 대학이 시국문제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갖가지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대학인의 견해를 사회에 투입시키고 여론을 조성하는 적극적 계몽활동을 할 필요가 큽니다. 둘째 대학과 시민사회를 연결시키는 다양한 고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수 각자가 전문지식을 충분히 발전시켜가면서 문제 개선을 위해 현실에 참여하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합니다. 셋째 대학이 특히 학생들에 대한 권력의 인권침해를 결연히 막고 그것을 청취·감시·고발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학생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나 학생들은 이를 상의하고 호소할 데가 없습니다.

 조희연: 제 견해는 좀 다릅니다. 저는 학생들의 요구가 대학 안으로 수렴되어 대학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만 상정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내의 문제가 대학 외부에 의해 규정된다는 전제하에서 기존의 소극적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대학 밖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싶군요.

 한상진: 개중에는 학생운동이 이만하면 됐지 더 필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히 21세기를 앞두고 민족문제·통일문제에 접근해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다른 어느 집단보다 청년·학생 세대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서 변화를 요구하는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학생운동 편으로 끌어들어야 합니다. 이에 실패하면 학생운동은 자칫 고립될 위험도 있습니다. 요컨대 시민의 공감과 지지를 획득하는, 대중성과 도덕성의 문제가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학생운동이 의존했던 것처럼 힘과 힘의 대결, 즉 폭력과 폭력의 대결이라는 구두로부터 빠져 나와 보다 높은 윤리적 수준에서 비폭력투쟁을 전개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조희연: 저는 오히려 기성세대가 좀더 근본적인 방식을 통해 민주화를 달성하려는 입장을 가져야만이 분신정국으로 초래된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수습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공감이란 것이 비폭력적 방식, 즉 투쟁형태의 온건화를 통해서만 이룩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는 투쟁형태의 폭력적 외양에 대한 비판도 실은 개혁을 저지하는 사람의 입에서 상당부분 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학생운동의 투쟁형태에 대한 비판보다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정으로 어떤 방식을 통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우선되어야 하며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 대학이 안고 있는 위기의 해결은 폭력적인 공안통치의 극복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상진: 사회변화를 성취하는 데 있어서 그간 학생운동이 거둔 성과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또 근래에 와서 많은 사회집단들이 공권력의 폭력을 규탄하면서도 학생운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운동의 대중성 확보 문제가 쟁점으로 남습니다. 아울러 오늘날 대학은 교육내용, 학내 운영방식, 재정 등의 면에서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부딪혀 있는데 대학이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교수·학생간의 공감대를 복원하며 미래를 향해 훌륭한 인재를 기르는 데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 광범위한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학생운동의 발전적 에너지를 흡수하고 대학의 자율적 발전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공안정국의 기본구도가 과감히 청산되는 것이 불가피한 조건이라고 결론을 모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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