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영향력 1위 김덕룡 ‘미래 유망주’
  • 김재일 차장 (sisa@sisapress.com)
  • 승인 199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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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시사저널》은 창간 4주년에도 ‘코리아 리서치’와 공동여론조사를 통해 지금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특정인의 영향력에 대한 인지도는 호의적 판단과 평가, 선호 감정을 내포한다. 현역 정치인에게는 그것 자체가 힘의 좌표이며, 정치권 밖 인사의 경우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할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정치인에게 영향력 인지도는 객관적 실체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창간 이래 해마다 이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이유는, 실제적 혹은 잠재적 힘이 누구에게 쏠리는지를 알아보고 그 이동 추이를 살피자는 데 있다. 종전(전문가 6백명, 일반 국민 1천명 대상)과 달리 이번에는 전문가만 1천명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표본 집단의 30%는 힘의 실체와 권력 변동 추이에 민감한 행정관료로 잡았다. 또 이번 조사에서는 각 분야별로 세분화해 영향력을 평가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은 단연 김영삼 대통령이었고, 차세대 유망주로는 김덕룡 정무제1장관이 첫 순위에 꼽혔다. 최형우 의원은 가장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으로,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인정받았다.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은 행정부내 실무 국·실장 중 가장 막강한 자리로 꼽혔고, 경제정의실천연합은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로 떠올랐다. 그밖에 김수환 추기경은 민간부문 전체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문화·예술계에서,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은 언론계에서 각각 1위에 올랐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권력의 단극화 현상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영향력에 대한 인지도(96.2%)는 통상 수준을 넘어선다(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지목 빈도는 89년 89.9%, 90년 76.9%, 91년 78.1%, 92년 52.1%였다). 전문가들은 김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정을 확고하게 장악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문민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권력의 다원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김대통령 외에 다른 사람의 경우도 대부분 김대통령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력이 규정됐다고 볼 수 있다.

2~10위 순위는 차례로 김대중 전 민주당 대통령후보(27.4%), 김수환 추기경(14.4%),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9.2%), 이회창 감사원장(9.1%), 이기택 민주당 대표(8.5%), 김종필 민자당 대표(5.1%),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4%), 이만섭 국회의장(3.7%), 이경식 부총리(3%)였다. 이중 영향력 인지도에서 2위를 차지한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가 눈길을 끈다.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계속 뉴스 메이커로 남아 있는 그는 여전히 영향력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그가 현실정치에 관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김대통령과 필적할 만한 카리스마와 추종 세력, 그리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 5위에서 3위로 떠올랐다. 이는 그의 도덕적 권위와 함께 김대통령의 개혁을 강력하게 후원하는 정신적 지주로 인식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공과 5공 등 권위주의 통치 아래서 곧은 목소리를 냈고, 민주화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던 6공 정권 아래서는 정치적 견해 표명을 삼갔던 그는 지금 국민들에게 개혁 대열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7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특히 20대(22.5%)와 언론계(21%)에서 높은 지목 빈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그가 재계에서 제일 먼저 개혁 정국의  흐름을 타고 삼성그룹의 변화를 주도한 점을 인정한 듯하다. 감사원장이 5위에 든 것도 전례 없던 일이다. 소신이 강한 이회창 감사원장이 독자적인 사정 활동의 사령탑으로서 인정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6위를 차지한 것은 개혁 정국에서 왜소해진 야당의 위상을 드러낸다. 황인성 국무총리는 11위에 머물렀다.

가장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은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최형우 의원을 꼽았다. 표본 집단 중 특히 정계인물들이 그를 압도적으로(41%) 지목했다. 현재 아무런 직책을 맡고 있지 않은 그가 가장 힘있는 의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자녀 대학 부정입학 사건과 관련해 민자당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겉보기에 후퇴한 것처럼 보이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이는 개혁 주체 세력인 민주계 내에서의 확고한 위상을 반증할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장래를 시사한다.

감사원장 부상·안기부장 하락‘눈길’
이기택 민주당 대표는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으로는 황명수 민자당 사무총장, 김종필 민자당 대표, 김덕룡 의원, 김윤환 의원, 박찬종 신정당 대표, 김영구 민자당 원내총무, 이만섭 국회의장, 이부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꼽혔다. 10위권에 들어간 야당 의원은 이기택 대표, 박찬종 대표, 이부영 최고위원 3명뿐. 그것도 이대표를 빼고 아래 순위를 차지한 것은 야당의 약세와 함께 방황하는 정당 정치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 김덕룡 정무장관, 최형우 의원, 김종필 대표, 이경식 부총리, 황인성 국무총리,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 황명수 사무총장, 김 덕 안기부장, 이기택 대표 순으로 꼽았다. 박실장이 높은 지목 빈도(54%)를 보인 것은 그가 김대통령과 가장 근접 거리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2위와 3위인 김덕룡 장관과 최형우 의원 역시 김대통령에게 ‘좌덕룡, 우형우’측근임을 입증한 것이다. 언론계에서는 김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를 4위로 꼽아 눈길을 끈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를 제외한 민간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는 단연 김수환 추기경이 첫번째(44.9%)로 꼽혔다. 2위에서 5위까지는 이건희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차례로 올랐다. 이는 정치권에 대한 경제계의 입김이 아직도 상당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은 9위에 올랐다. 서경석 경실련 사무총장의 6위 진출 또한 눈여겨 볼 만한 것으로, 이는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졌음을 입증한다. 특히 그에 대한 지목 빈도는 언론계(3위, 12%)와 정계(4위, 9%)에서 높았다.

이밖에 장관급 이상 관계 인사 중 영향력 순위는 1위 이경식 경제 부총리(30.6%), 2위 김덕룡 정무장관(18.4%), 3위 홍재형 재무부장관(12.2%), 4위 한완상 통일 부총리(9.9%), 5위 한승주 외무부장관(9.3%), 6위 이회창 감사원장(7.7%), 7위 박관용 비서실장(7.6%), 공동 8위 황인성 국무총리와 이해구 내무부장관(5.9%), 10위 권영해 국방부장관(4.4%)이었다. 최고위직에 있는 황인성 총리가 공동 8위에 오른 것은 그의 실제 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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