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산업평화의 길
  • 도천수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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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을 맞이하여 임금인상문제를 둘러싸고 노동자와 정부·사용자간의 대립과 갈등이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노사문제의 안정 없이 결코 산업평화를 이룩할 수 없으며, 산업평화 없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약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산업평화는 정부와 사용자의 일방적인 선언이나 강요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산업평화를 논하기에 앞서 그동안의 노사관계가 상호대등한 관계였는지 아니면 불평등한 예속의 관계였는지 냉철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사회에서 노사간의 갈등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이런 모순구조를 은폐·왜곡시키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문제를 진단·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산업평화는 여전히 구호에 그치고 있으며, 노사간에는 불신의 폭만 깊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산업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민주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경제민주화 조치는 그 물꼬를 우선 정부에서부터 터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정책의 1차적 결정과 수행주체로서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현정부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말해서 일관성과 책임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국민이 믿고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금융실명제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가 하면, 부동산값과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데도 물가정책 통화정책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의 정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 민감하게 변화하고, 또한 재벌을 중심으로 사용자에게만 일방적인 특혜를 베풀어왔기 때문이다.

노동자 경영참가는 산업민주주의 핵심
 경제민주화는 정부의 공정한 법집행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된다. 6공 출범 뒤 3년여 동안 구속된 노동자수는 무려 1천2백11명으로 하루 평균 1.1명꼴이나 된다. 이른바 시국사범으로 분류되는 전체구속자 중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공화국 당시에는 10%를 넘은 적이 없었는데, 6공화국 들어 22%나 되고 있다. 노동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사용자는 손을 꼽을 정도인데, 노동자는 노동관계법도 부족해서 형법 국가보안법까지 동원해서 무더기로 처벌한다면, 정부가 겉으로는 산업평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달성 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제민주화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사용자측의 실천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사용자 즉 기업가들은 경제민주화가 성과의 공정분배·노사공영의 문제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정보를 공개하고 기업경영에 노동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자의 경영참가는 산업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선진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확신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아직도 경영인사권이 절대로 침해받을 수 없는 사용자만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은 노리적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태의연한 발상을 고집하는 배경에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봉건적인 예속관계로 보는 관행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을 통하여 형성된 성과를 공정하게 분배하겠다는 의사가 원초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임금인상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사용자의 임금인상억제 논리
 5월 중순이 되도록 올해의 임금 인상타결률은 극히 저조한 형편이다. 이는 정부의 무리한 한자리수 임금인상방침 때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용자의 입금인상논리의 억지 때문이기도 하다.

 사용자들은 임금인상의 근거로 처음에는 노동생산성증가율을 기준으로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런데 한국생산성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86년에서 90년 상반기까지 실질임금상승이 노동생상성 증가를 앞지른 것은 89년도 한해뿐이었다. 이렇게 되자 올해 들어서 경총은 새로 자본기여도를 고려한 생산성증가분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생산성임금자체가 일정한 이윤확보를 보장하는 것이며 자본투자나 자본축적도 노동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므로 결국 이 주장은 한자리수 임금억제정책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이 다음에 나온 것이 성과배분제도이다. 이는 임금인상시기에 인상률을 적절한 수준에서 타결한 뒤 나중에 기업의 경영성과에 따라 특별상여금 등의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 또한 앞에서 말한 경영의 공개나 노동자의 경영참여 없이는 절대로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따라서 결국 모든 문제는 경제민주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경제민주화의 실현만이 진정한 산업평화의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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