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 안 보이는 ‘전교조 방정식’
  • 허광준 기자 ()
  • 승인 199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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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탈퇴해야 교사 복직” 전교조 “정부가 양보해야” 24일 교사대회 ‘최대 고비’
지난 9월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서울시교육청 민원실 주변에 젊은 교사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민원실 한쪽에 마련된 ‘해직교사 채용신청 접수처’에 신청서를 내러 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시지부 소속 해직교사들이었다. 스스로 신청서를 내러 찾아온 그들이었으나 자기의 사진이 붙은 신청서가 접수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신청서에는 채용을 심사하는 사람의 눈길이 가장 먼저 갈 ‘본인은 ○월 ○일자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탈퇴하였습니다’란에 아무런 표시가 없기 때문이었다. 조회주 서울시지부장을 비롯해 전교조 각 지회장이 모아서 갖고 있던 신청서 4백60여장은 결국 접수 창구에서 “서류작성이 불완전하다”라는 말과 함께 반려되었다.

지난 4월8일 교육부장관과 전교조위원장이 직접 만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처럼 보였던 전교조 문제는 6월29일까지 다섯차례 회동에서도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했다. 사태는 오병문 교육부장관이 7월24일 특별담화문을 통해, 먼저 전교조를 탈퇴하는 경우에 한해 심사를 거쳐 신규임용 형식으로 복직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갔다. 오장관은 담화에서 교사의 노조활동은 허용할 수 없다고 못박고 ‘항복 문서’ 접수도 8월20일부터 9월말까지로 한정했다.

전교조는 이같은 복직을 전면 거부하고, 각 지부 총회를 거쳐 복직 문제를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편 ‘학교 현장에서 교육 개혁 활동에 주력하는 것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전교조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절한 조처와 방침’을 제시한다면 당국과 협의하여 일괄 타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9월말까지 개별적 복직 신청을 접수한 결과 교육부가 추산하는 복직 대상자 1천4백83명 중 신청서를 낸 교사는 88명밖에 안되었다. 교육부는 10월7일 채용신청 접수 기간을 18일부터 28일가지 열흘간 연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전교조를 탈퇴한 후 교단에 다시 서기를 바라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고 보고, 사정에 의하여 채용 신청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전교조측은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전교조와 어떠한 대화도 없이 시혜를 베푸는 척하면서 추가 신청 기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교조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교육부 최이식 교직국장은 “전교조를 탈퇴해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정부 방침은 흔들릴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근본적으로 교육부가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고 파악한다. 전교조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는 결국 전교조 교사가 학교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건전한 비판에도 노출되어 본 적이 없는 소수 기득권 세력에 휘둘린 결과이다”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정진화 부대변인은 “우리는 명분에 사로잡히지 않고 복직을 간절히 원한다. 전교조를 탈퇴하라는 것은 지금까지 4년 넘게 교육 개혁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교단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치욕적으로 갈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할 만큼 했으므로 이제 선택은 정부가 할 차례라고 본다.

복직 신청 기간인 24일 전 ·현직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전국 교사대회가 열린다. 전교조 해직교사 복직 문제는 국회 회기와 복직 신청, 전교조의 교사대회 등이 맞물린 이 기간이 커다란 고비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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