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資철새’ 떠나는 수출자유지역
  • 김재일 편집위원보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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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절상 · 임금인상 등으로 마산 5개사 폐업 · 철수 … 근로자 7천명 작년 일터 잃어

  마산공단의 아침은 출근하는 여공들의 발걸음소리와 더불어 밝아온다. 경남 마산시 양덕동에 위치한 수출자유지역의 후문.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7시부터 근로자들이 한두명씩 띄엄띄엄 들어오기 시작해 7시40분쯤 되면 상당수로 불어난다. 8시부터 10분간은 피크를 이루어 6등분된 철문을 꽉 채우며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온다. 거의 젊은 여자들이지만 가끔 40대 아주머니들도 눈에 띄며 표정들은 대체로 밝다.

 문앞에서 한 소녀가 국가보안법 철폐와 구속양심수 석방에 관한 文東煥목사의 강연을 알리는 전단을 나누어 주는데, 받자마자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 안받으려고 애써 피해가는 사람에, 받아서 열심히 읽는 사람도 간혹 있다. 시간이 감에 따라 발걸음들이 빨라지고 택시에서 헐레벌떡 내려 숫제 단거리 선수처럼 문을 주파해 뛰어들어가는 여성들도 몇 명 보인다. 8시25분경이면 출근하는 발걸음이 거의 끊긴다. 얼핏보면 마산공단의 아침 출근광경은 여느 공단이나 마찬가지로 활기차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외부인의 피상적인 관찰일 뿐, 마산 수출자유지역은 큰 병을 앓고 있다.

남아 있는 외자업체들도 발 뺄 채비
 이곳에 입주한 70개 업체의 종업원수는 2만6천여명으로 80%정도가 여성근로자인데 1년전에 비해 7천여명이 줄었다. 입주업체의 폐업, 철수 또는 감원으로 종업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70년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 수출진흥과 고용증대 그리고 기술향상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케 한다는 목적에서 설치된 이곳 수출자유지역은 여러 긍정적인 면과 함께 부정적인 요소 또한 애초부터 안은 채 출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가령 78~88년의 10년을 비교해보면 수출은 3.6배, 투자는 1.8배가 늘어나는 등 고도성장을 계속해왔다. 수출액 중 외화가득률이 50%가 넘었고, 특히 1천4백억여원이 임금으로 지불되어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바도 컸다.

 그런데 이곳이 위기에 처해 있다. 89년에 이곳에서 문을 닫거나 철수한 업체는 5개나 된다. 87년에 입주업체 하나가 줄고 88년에는 변함이 없었던 데 비한다면 89년의 이러한 현상은 큰 변화이다. 기계가공업체인 극동화스너와 신발제조업체인 한국판창은 경영부실로 도산했다. 전자회사인 한국TC는 노사분규와 경영난 때문에, 형광표시관 제조업체인 한국이세는 시험가동 중 폐업했다. 스포츠 자전거 제조업체인 코렉스는 창원공단으로 이주했다. 이밖에 지난 10월 폐업통지를 해온 한국수미다전기의 경우도 폐업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 사실상 문을 닫고 있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89년 수출실적은 88년 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17억5천달러정도가 예상된다”고 趙光國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소장은 전망한다.

 몇년전만해도 업체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은 폐업 · 철수한 업체가 잇따르는데도 입주희망업체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단부지 중 5.6%인 1만3천6백평이 빈땅으로 놀고 있다. 더욱이 남아 있는 외국투자업체들도 서서히 발을 뺄 채비를 하고 있다. 왜 그들은 보따리 쌀 준비에 바쁜가? 이제 이곳 수출자유지역은 외국업체들에게 더 이상 투자의 매력을 잃었는가?

 ‘수출자유지역’은 ‘자유’라는 말과는 상관없이 임금인상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 원화절상으로 인한 환차손 부담의 증대 그리고 불안정한 노사관계로 인한 생산성 저하 등의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한 일본투자업체의 닛시 쇼조 사장은 “지금은 무척 어려운 시기”라고 실토한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원화절상과 임금인상이다. 우리 회사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데 중국 근로자의 임금수준과 비교해볼 때 이곳은 6배 정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회사의 종업원수는 88년 6월만해도 2천명이 넘었으나 지금은 1천2백여명. 세 번에 걸쳐 퇴사 희망자를 공고, 8백명을 감원했는데 각자에게 두달치의 봉급을 퇴사위로금으로 지급했다. 앞으로 종업원수를 9백명선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쇼조씨는 말한다.

“원화절상이 직접적인 타격줘”
 공단관리소의 박세진 공보담당관은 이 지역 근로자의 임금이 지난 2년반 동안 평균 1백%올라 서울의 구로공단 등 타지역과 비교해보면 기본급은 20%, 상여금은 30%까지 높다고 말한다. 올해의 경우만 해도 이곳 근로자의 임금상승률은 전국의 평균 임금상승률 17%를 훨씬 능가하는 24%였다. 이로 인해 적자회사가 전체의 60%에 가까운 38개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노동부 마산지방사무소의 통계에 따르면 마산 수출자유지역 근로자의 상여금을 포함한 평균 임금은 월 49만7천원으로 수출지역 밖에 있는 공단근로자의 평균임금 41만3천원보다 높다.
 또한 “85년 이래 30%가 넘는 원화절상이 거의 전적으로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수출자유지역내 입주기업에게는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고 趙관리소장은 설명한다.

 입주기업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 폭발한지 모르는 노사분규이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한국중천(주)에서는 위장취업과 관련, 노조간부 3명을 징계위에 회부한 업주측에 항의하며 조합원 5백여명이 농성 중이었다.

큰 시각차이 보이는 노사
 크리스마스 트리용 장식품 제조업체인 한국남산업의 鄭樞桓관리실장은 노사분규의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생산지수 또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지난 8월의 10여일간의 파업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의 경우 선적기일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국제적인 신용도가 떨어져 회복하기 어렵다. 근로자들의 합리적인 사각을 가지고 이익범위 내에서 요구해야 할 것이다.”

 노동부 마산 지방사무소 李德在근로감독관은 “이곳 자유지역이 마산 · 창원 노동조합연합회(마창노련)의 영향으로 다른 공단에 비해 노사관계가 훨씬 불안정하다”며 “이것이 입주업체가 철수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지적한다. “다국적 기업이란 채산성이 안맞으면 이동하는 것이 철칙이다. 이런 노사관계의 양상이 계속되면 폐업 · 철수하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다.” 그는 새해 임금인상률이 15% 정도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87년 6월항쟁이래 결성되기 시작한 노조는 현재 70개 회사 중 41개 업체에 조직되어 있고 전종업원의 77%가 노조조합원이다. 노동부 지방사무소에 의하면 89년 수출자유지역 내에서 발생한 ‘과격한 노사분규’는 17건인데 ‘마창노련’에 가입한 8개 회사는 연대파업까지 했다고 한다.

 마창노련을 오늘의 한국 노동운동의 향방을 가늠하는 추동력이 되고 있고, 여기에는 ‘수출자유지역’이 또한 가늠자 역할을 한다. ‘저임금’이 매력포인트로 되어 인입돼 온 외국(주로 일본)기업들이 이제 임금인상과 노동쟁의가 지나치다는 주장을 펴는 데 대한 근로자측의 반박논리 또한 만만치 않다. 미그네트 와이어 제조업체인 한국일선의 노조위원장 文澤鉉(27)씨는 수출자유지역의 임금수준이 다른 지역보다 높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외국기업이 언제 떠날지 몰라 신분보장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직 이윤을 챙기기 위해 이곳에 온 저들이 처음 이윤보다 떨어진다고 적자타령을 하고 있다. 더욱이 임금인상 때문에 적자를 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국남산업의 노조위원장이며 마창노련의 다국적기업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鄭相哲(26)씨는 “노사분규가 과격하다는 주장은 이곳에서 행해지는 기업주들의 부당노동 행위를 간과한 일방적인 시각”이라고 반박한다. “한국 TC, 한국수미다전기 폐업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근로자들이야 어찌됐든 청산절차를 무시하고 맘내키는 대로 문을 닫고 도망가버릴 때 근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온갖 야비한 수단을 동원해서 근로자들이 일터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시티즌, 동경전자, 텐디모비라 등은 전체 종업원수를 절반이하로 줄였거나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며 실직한 미혼여성들 중 상당수가 유흥업소로 빠진다고 한다. 그는 오늘 봄 임금투쟁이 공무원 임금동결 등 정부의 강경대응, 경단협 구성 등으로 일단은 ‘어려운 투쟁’이 예상되나 89년 임금상승 수준인 24% 이하로 내려갈 순 없다고 끊어서 말한다.

 얼마나 강한 임투의 회오리가 이곳 수출자유지역을 휩쓸 것인가, 그리고 노사양측은 공존의 타협점을 찾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우리들은 일하고 싶다’ ‘정상조업하자는 데 부당휴업 웬말이냐’ ‘뼈빠지게 일했는데 양키가 다 빼가네’ ‘뭉치면 주인되고 흩어지면 노예된다’
 지난 12월20일로 조업중단 2백90일째를 맞고 있는 한국TC전자 건물의 벽과 입구의 시멘트 바닥에는 온통 붉은색과 검은색 페인트로 쓴 이같은 구호로 가득 메워져 있다. 이 회사는 전세계에 40여개 생산공장과 9천여개의 판매소를 가지고 있는 미국 탠디그룹의 계열회사이다.
 金貞任노조위원장(24)과 조합원 30여명은 기계가 멈춘 지 오래된 이 회사에 매일 출근, 공장을 지킨다. 회사측에서는 이들의 행위를 “불법 점거”라고 주장한다.
 이 회사는 지난 3월6일 경영난과 노사분규를 구실로 조업을 중단하고 4월3일 폐업신고를 했다. 종업원 1천4백여명에게 퇴직금, 해고수당 등을 지불했으므로 ‘합법적인 폐업’이라고 마산수출자유지역 관리사무소측은 보고 있다. 그러나 노조측은 생존권이 달린 일터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신문공고 한장으로 폐업 할 수는 없으며 또한 사전에 시청, 노동부, 관리사무소 등에 폐업신고를 하지 않은 점을 들어 “명백한 부당폐업”이라고 주장한다.
 회사측은 우리 정부에 2천만달러에 달하는 기계 · 시설을 처분해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법원은 최근 종업원의 출입금지 등 가처분 집행 결정을 내려 공권력투입이 임박한 상태이다.
 이데 대해 金위원장은 “이 나라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라고 반문하고 위장폐업을 철회하고, 자본을 철수하더라도 적법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전액 일본인 투자기업인 한국수미다전기의 경우 지난 9월 사장으로 새로 부임한 쿠시노 고이찌씨가 노사간의 단체협약 갱신교섭 중 일본으로 ‘도망치듯’ 건너가 버렸다. 한달후인 10월14일 도산통지서와 종업원 4백50명의 집단해고통지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노조측은 아직까지 파업을 유도하는 회사측의 계략에 말리지 않고 합법적으로 활동해왔으며, 이 회사가 중국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면서 노조활동을 핑계삼아 한국을 뜰 채비를 벌써부터 해왔다고 주장한다.
 이 회사의 경우, “파렴치한 불법행위”라는 것이 이곳 업체와 노동부 지방사무소의 견해이다. 요즈음도 60여명의 노조원들은 회사에 모여 부당해고철회와 정식교섭을 주장하며 농성하고 있고 鄭賢叔노조위원장(22) 등 4명의 종업원은 일본에 건너가 회사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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