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함과 부드러움이 필요”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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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24시간의 뉴스를 어린이 손바닥만한 속에 담아내는 朴在東씨. 그의 시사만평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명물이 됐다. 그러나 이 시대의 상징적인 만평가로 떠오른 박씨에게 투사 같은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만화가 주는 느낌 그대로 대중의 삶을 살아서인가 보다.
 “대중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릴 때 가장 공감합니다. 위정자를 그릴 때에도 염두에 둘 것은 대중성의 확보이지요. 그래야 독자들의 가슴에 와닿게 그릴 수 있읍니다.” 그가 말하는 대중성이란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얻어진다. 세상에는 익살스럽고 엉큼한 사람, 못된 사람이 섞여 있지만 그런 여러 가지 유형의 인물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수록 대중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사회상을 그려내는 날카로운 붓끝에서 소박한 인간애가 우러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드시 전해야 할 이야기는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해야 할 것이나 어느 정도의 부드러움이 필요하다”는 그의 지론은 민주만화의 선봉장이 하는 말 치고는 무척 융통성있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이 점은 바로 80년대 만화운동의 한계였던 투쟁 일변도의 표현을 나름대로 극복하려는 자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박씨는 어린 시절 부산 전포동에서 살았다. 병든 아버지가 만화가게를 하는 탓에 만화방이 가족의 살림집이었고 만화책 속에서는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박재동의 화실에는 50년대 유행한 어린이 만화책이 남아 있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박씨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고 만평가가 되기 이전에는 젊은 미술인 그룹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7회에 걸쳐 단체전에 참가했던 화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만화가 대중의 삶에 바탕을 둔 소재를 취하는 데 적절히 응용된다. 그가 시사만화계에 등단할 당시 시사만화 초년병 치고는 현실을 보는 날카로운 시각과 탄탄한 데생력이 유난히 돋보였던 점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간혹 그의 만화는 기성세대의 세련미에 못미친다는 비난도 받으나 89년2월 출간된 그의 만화집 《환상의 콤비》는 재판에 들어갈 정도로 젊은 독자층에게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그의 만화에서 보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변형, 강조하여 사건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4당 대표도 그런 점에서는 박씨가 관망하는 잠망경에 잡히는 일개 초점일 뿐이다. 특징을 과장해서 여러번 그리다 보면 만평이 갖는 풍자의 공격성과 통쾌감을 성공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그는 “김종필총재를 그리면서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이가 드러나도록 벌어진 입을 그려야 특징이 잘 나타나는 것 같아 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사를 만화적 사고로 보다 보면 심각한 사건을 너무 쉽게 다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박씨. 텔레비전을 보다가 수중발레리나들이 쌍둥이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아름다움보다는 ‘기이함’을 느껴 노조를 탄압하는 경찰과 구사대를 비유하는 ‘환상의 콤비’를 착상해냈다. 또 죽은 올챙이를 품에 안은 개구리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통해 공해의 심각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역사의 방향에서 그리려고 애쓴다”는 박씨는 민중적 감성과 의식이 담긴, 특유의 회화적인 만평을 통해 사회를 재단하면서 문자 그대로 ‘환상의 콤비’인 아내와, 2살과 3살된 남매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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