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따뜻한 물'의 나라
  • 모스크바.김종일 통신원 ()
  • 승인 199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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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야, 내전 갈수록 심화…소수 민족들 "독립" 들썩, 사분오열 위기



 '따뜻한 물'이라는 뜻을 가진 나라 그루지야가 전쟁의 포화로 인해 따뜻하다 못해 더욱 뜨거워질 전만이다. 험준한 카프카스(코카서스) 산맥을 헤매던 한 방랑객이 온천수를 만나 생명을 얻었다 해서 생명수의 나라라고도 일컬어지는 그루지야는, 1천5백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산악지대인 관계로 국민성이 옹골차다고 옛 소련 종합백과사전은 기술하고 있다. 남쪽의 평원지대를 제외하고는 농사짓기에 쓸 만한 땅이라고는없는 나라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스탈린 같은 사람이 배출됐다고 얘기한다.

 옛 소련이 무너진 후 독립한 그루지야 공화국이 수년째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압하스 민족의 반란으로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다. 특히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러시아는 당사자 간의 해결 원칙을 강조하며 개입을 피하고 있어 내전 사태가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되기는 힘들다. 압하스 자치공화국의 본격적인 독립 운동은 80년대말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개방 정책과 함께 시작됐다.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틈타 압하스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 연방에 가입해 그루지야의 지배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그러다 지난 91년 옛 소련이 해체되자 압하스 자치공화국 의회는 92년 7월27일 압하스의 독립을 규정한 25년 당시의 헌법을 부활시키는 한편 전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맞서 그루지야 정부가압하스의 독립을 무력으로 저지하자 양 세력의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압하스 민족은 그루지야 인구 구성비로 볼때 2%밖에 안되는 소수 민족이다. 압하스 민족은 러시아로편입되기 이전까지 독립국으로 고유 언어를 가졌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해양 진출을 노리던 그루지야의 강압 정책에 못이겨 굴복하고 말았다(아래 지도 참조). 그 때문에 압하스 민족은 그루지야 민족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고 끊임없이 독립 운동을 전개했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입지 갈수록 위축
 지금의 내전은 재집권을 노리는감사 후르디야 전 대통령이 압하스 분리주의자들과 연계했기 때문에 확산돼 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이번 내전중에도 인근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압하스 민족을 규합하기 위해 북오세티야?체첸?다게스탄 공화국을 돌며 "압하스여 영원하라!"를 외쳐댔다고 한다. 특히 체첸 공화국에 머무는 동안 체첸 공화국과 다게스탄 공화국으로부터 전쟁 무기를 받아 압하스족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셰바르드나제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번 내전 사태로 입지가 더욱 곤란하게 됐다. 그는 압하스 반군들이 전략 요충인 수후미를 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로 밀려들자 급히 모스크바로 달려가 옐친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옐친으로부터 내전 당사자 간의 해결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할 경우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는 답변만을 들었다. 그가 기대한 무력 지원은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최근 내전 사태를 취재한 <투르드>의 사회부장 바짐 에르네스토비치씨는 "이번 압하스 민족의 독립 쟁취는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 셰바르드나제를 더욱 옴쭉달싹 못하게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그루지야 내에서 제2의 민족 분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할치크족?간진족?오세트족 등이 독립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꾸준히 독립 움직임을 보였던 민족으로는 그루지야 내의 남오세트족이 있다. 이 민족은 러시아 영토 내에 거주하고 있는 북오세트족과의 통일 독립국가를 창설할 것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감사 후르디야 전 대통령과 셰바르드나제 간의 권력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 뻔하다.

18세기 이전상태로 분열될 수도
 어찌 보면 그루지야는 18세기 중엽의 모습으로 갈기갈기 찢어질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게다가 그루지야가 기독교 국가인 관계로 주변 회교 국가들의 원리주의와 충돌해 이도저도못하는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카프카스 출신의 한 외교관은, 현 그루지야 집권층이 그루지야 내에서활동하고 있는 외국 선교사들의 입지는 강화해주는 반면, 이제까지 활동해오던 회교도들의 활동을 제어함으로써 종교 싸움을 조장하고있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셰바르드나제가 초강대국임을 자처하는 서방의한 나라로부터, 현 사태와 관련한 정보를 매일 받아보고 있다. 이런 사실을 그루지야 민족이 알면 셰바르드나제에게도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압하스 내전에 참가했다는 한 사람에 따르면, 자기는 하루 일당으로 50달러씩 받았으며, 그루지야 본토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면서 탱크 조종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일당 3백달러씩에 모집하는 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말했다.

 현재 그루지야 내에는 소수 민족이 10개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러시아 사태로 모스크바지역에서만 카프카스 출신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사람의 숫자가 공식적으로 3천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그루지야로 귀국하면 압하스의 민족감정을 이용해 또 다른 불안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국내 정치 일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보리스 옐친이 어떤 카드를 쓰느냐에 따라 사태는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으나, 그루지야에 덮인 전쟁의 구름은 두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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