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연구' 새 시대 열린다
  • 김해.이문재 기자 ()
  • 승인 1993.10.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제대서 국내 첫 지역과학 학술대회…공동연구 위한 '컨소시엄' 만들기로



 "사회학자는 이제 '하방'해야 한다." 지역사회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지방 대학 사회학 전공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회학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다. 인제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소장 강신표 교수)가 주최하고 경남대 경남사회연구소, 부산대 사회조사연구소, 한림대 사회조사연구소 및 김해시, KBS 창원총국이 후원한 '제1회 지역과학 국제학술대회'가 김해 인제대학교에서 열린 것이다.

지방대 사회학자들 앞장
 '지방화와 국제화 시대의 지역과학(Regional Science)의 연구방향 : 김해(금관가야) 지역에 대한 한?일 공동연구 협력'을 주제로 지난 10월10일~12일 사흘간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무엇보다 '지방 대학 사회학이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공헌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모색했다.

 10월10일 저녁, 김해 신어산 동림사(주지 한산당 화엄 스님) 선방에서 있었던 학술대회 참석자들의 '심야 토론'은 학술대회의 주제 토론 못지 않게 진지한 자리였다. '중앙'(서울)의 2차적인 존재인 지방대 교수로서겪어야 했던, 또 겪고 있는 어려움, 거의 외지인인 사회학자에 대한 지역사회의 배타적인 분위기, 그리고 지역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공유하면서 사회학자들은, 그렇다면 바람직한 지역학을 위하여 어떠한 방법론을 동원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서울도 하나의 지방이지만, 서울의 사회학자들에 의한 서울 연구는 없었다. 외국 이론 수용이나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만 있었을 뿐이다"라고 이은진 교수(경남대?사회학)은 지적하면서 "지방의 사회학자는 지역사회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부산대 사회조사연구소장 김성국 교수(사회학)는 지방에 대한 지역학적 접근의 필요성 혹은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국가에 의한 획일화?몰개성화를 지양하고 △지방자치제에 지역과학이 '개입'해야 하며 △명실상부한 지방화와 더불어 국제화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열린 학술대회에는 일본 교토 대학에서 온 두 학자가 참석했다. 교토 대학은 일본 지역과학의 선두로 알려져 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요네야마도시나오 교수는 "지역 연구와 지역 과학은 서로 상충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인 야마다 히로유기씨는 "지역 과학이 보편성과 과학성을 견지하면서 지리학?경제학?사회공학(계획과학)?정치학과 연관을 가지는 데 견주어 지역 연구는 지역 특유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고 문화인류학?사회학?인문지리학?언어학?역사학과 인접한다"라고 말했다.

 고대 동아시아 문화에서 김해를 중심으로 한 가야문화를 문헌학적으로 조명하고(이영식 인제대 교수?사학) 일제 강점기 김해의 농업과 농촌사회를 탐구하면서(박 섭 인제대 교수?경제학) 김해지역의 역사를 돌아본 학술대회는 인접한 대도시 부산지역의 주택가격 결정 요인(장영재 인제대 교수?경제학)과 김해지역의 사회문화적 변동(강신표 인제대 교수) 등 과도기를 겪고 있는 김해 지역의 오늘을 진단한 뒤 지역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종합 토론을 가졌다.

지역 자율성?주체성 부각에 초점
 '탈중심화 지역발전 모델'을 탐색한 성경륭 교수(한림대?사회학)는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위로부터, 중앙으로부터의 개혁'이라고 규정하고 '아래로부터, 지방으로부터의 개혁, 즉 연방주의적 개혁'을 강조했다. 이는 지방을 살리고, 한국 경제를 살리며, 통일을 앞당기는 개혁이라는 것이다.

 종합토론은 특히'지방화와 지방자치제'의 상관성을 중심 논제로 부각했는데, 일부에서는 지자체가 지방화의 관건이라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지자제가 갖는 이데올로기의 규정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은진 교수는 "지자제를 하고 있다는 (허위) 담론이 지자제의 실질 내용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지자제 성패는 그 지역 주민이 참여한 법률인가 아닌가에 의해 판가름 나는데, 현재 지자제 법은 지역 주민이 만든 법이 아니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것이다.

 "사회 발전은 궁극적으로 문화 발전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 김성국 교수(부산대?사회학)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고착되기 시작한 민족(국민)국가 중심의 정치 행태는 점차 약화될 것이며, 이에 따라 지역주의적 자율성과 주체성이 두각을 보이면서 지역연합 혹은 도시연합의 협력체제가 조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지방화?지방시대가 국제화시대의 가장 적합한 구성 단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역 문화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바탕을 둔 시민문화가 성숙하는 것이 지방 시대의 선결 과제라고 김교수는 강조했다.

 지방대 사회학자들이 무릎을 맞댄 이번 학술대회는 인제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를 간사연구소로 하고, 경남대 경남사회연구소를 부간사 연구소로 삼느 s등 '지역 과학 연구 컨소시엄'의 주춧돌을 놓았다. 한편 인제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는 교토 대학 교수팀과 함께 김해시를 지역과학의 구체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아 '처방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토론자로 이번 학술대회에 참여했던 이광희씨(김해환경보존회 회장)는 "인제대가 김해시에 들어온 지 9년째 되지만 그동안 지역사회에 대한역할은 기대에 못미쳤다. 이번 학술대회가 지역사회에 대학이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반갑다"라고 말했다.

 지방 대학 사회학자들이 '김해선언'으로 평가될 만한 이번 학술대회는 사회학계 전반은 물론 인접하고 있는 관련 학계에도 질 좋은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