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전시주류국협정에 깊은 골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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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군 자동개입·비용분담 등 협상 난항…미국 ‘한국 거여국회'때 처리 -희망

 “미국은 일부 한국인들이 생각하듯 이번 駐留國 지원협상과 관련, 어떤 숨겨진 의제나 계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같은 시각에 난감할 따름이다."(서울의 미국측 실무담당자) ??이번 회담(5월15~16일 워싱턴에서의 한?미 주류국 협상)은 양측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개진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부분은 이견을 좁혔으나 핵심부분에 가서는 입장차가 현격하다."(우리측 실무관계자)

  유사시 한반도에 증파되는 미군에게 우리측이 해야 할 각종 군수지원을 법적으로 규정하게 될 한·미간의 전시주류국지원협정(WHNS·Wartime Host Nation's Support·이하 주류국협정)을 위한 협상이 비용분담원칙 등 일부 핵심부분을 두고 난항을 겪고 있다. 더욱이 지난 6년여간의 협상을 끝으로 조기 타결을 기대했던 미국측이 적잖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외교마찰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간단히 말해 주류국협정은 유사시 미 증원군의 신속하고도 원활한 작전 전개를 위해 접수국이 유류·탄약 등 군수지원은 물론, 항만·도로·노무지원 등 민간자원에 대한 지원내용과 규모, 비용분담원칙, 평상시의 점검 등을 규정하는 포괄협정(umbrella agreement)이다. 주류국협정은 지난 85년 제 1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측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당시의 취지는“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 미국은 유사시 전쟁초기 전투부대 위주로 배치하고 이에 대해 한국은 가용범위 내에서 민간자원을 포함한 전투근무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후 20차례 이상의 회담 끝에 작년 9월 양측 국방실무자들이 협정초안에 합의했었다. 이어 작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22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빠른 기일 내에 협정을 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협정초안의 일부 조항들이 우리측에 다소 불리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난 3월 외무?국방?재무부 등 관련부처의 실무진들이 당초 협정안을 대폭 수정하게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주류국협정 초안은 전문, ‘일반의무'적성격의 9개조항, 지원세칙을 담은 2개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부록 I'에는 기존의 각종 이해각서 및 협정을 11개 목록으로 만들어 수록하게 된다. 특히 '부록 II'에는 통신 공병 보급 수송 노무지원등을 포함해 12개 지원분야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전문의 경우 그 대강은 "유사시 한반도에서의 신속하고 원할한 작전전개를 위해 한국측은 지원협정, 협약 및 계획에 따라 미 증원군에 대한 군수 및 민간자원을 제공한다'로 알려져 있다.

비용부담이 가장 큰 골칫거리
  문제는 ‘일반의무'적 성격이 짙은 9개 조항에서 나타난다.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조항은 △유사시 미 증권군의 자동개입 여부 △증원군 규모 및 시기 △예기치 못한 전시주류국지원 부분이다. 이와 함께 향후 부록에 추가할 지원사항들을 검토하기 위한 양측 운영위위원회 구성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미 증원군의 ‘자동개입 여부'에 대해 우리측은 그간 이를 협정 속에 명시해주기를 원해왔다. 그러나 미국측은 해외에 병력을 파견하기 위해서는 미 대통령이 헌법과 전시동원령에 따른 의회와의 협조 등 관련 국내법 절차를 따라야 하므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증원군의 규모 및 파견기간을 협정안에 명시하자는 우리측 주장에 대해 미국측은 "국내법 절차상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부분은 증원군의 부대전개목록(TPFDL)을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에 명시하는 쪽으로 의견 접근을 보고 있다.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미국이 서독과 맺은 주류국협정은 증원군의 규모와 파견기간 등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단 유사시 미 증원군은 열흘이내에 서독내에 집결하게 된다. 특히 서둑의 경우 전시물자비축개념(POMCUS)에 따라 3개 사단분의 전쟁물자와 장비를 서독내에 비축해놓고 있다. 이에 대해 8군측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서독과는 지원방법과 과정이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비교 자체가 무리??라며 ??예를 들어 유사시 서독군 10만명이 즉각 미 사령관의 통제하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예기치 못한 전시주류국지원??조항도 큰 논란거리이다. 우리측은 ??문구 자체가 너무 모호해 미국측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무한정한 비용부담을 떠맡을 우려가 있다??는 시각이다. 이를 테면 미 본토에서 작전에 필요한 트럭을 한국으로 운송하다가 재해 또는 불의의 공격으로 유실될 경우 바로 그같은 예가 된다는 게 미국측의 설명이다.

  한편 우리측의 지원태세 점검을 2년에 한번씩 실시한다는 부분에 대해 미국측은 “특정 기한을 못박은 바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밖에 비용조항에 대해서도 우리측이 원칙적으로 상호분담을 주장하는 데 반해 미국측은 사안별로 비용부담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입장이 향후 주한미군의 주둔비 역시 많은 부분을 한국측이 떠맡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주류국협정에 다른 비용분담이 우리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로 대두될 전망이다.

  이같은 쟁점조항들에 대해 국방연구원의 朴宣燮 연구원은 구체적인 해결방안으로 △‘예기치 못한'부분을 '미 증원군의 이동간 발생한 우발적 사고'로 △'증원군 제공을 계획한다'를 '국내법 절차에 따라 증원군을 제공한다'로 △일반적인 비용조항은 ??상호분담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조항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비용부분에 대해 박연구원은 "우리의 부담능력, 주한미군의 위상변화 및 기여도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우리측의 이같은 비판적 견해에 대해 미국측 실무담당자들의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측의 한 고위실무자는 “협정 자체가 결코 의무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미국측의 지원요구사항에 대해 설령 한국측이 거절해도 우리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면서 "미국측 입장에서는 이 협정을 빨리 매듭짓고 싶어 한는 게 사실이나 그렇다고 한국측에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미 8군측의 또다른 고위 실무자는 ??주류국협정은 본질적으로 전시협정이다. 따라서 평화시의 부담은 극히 미미하며 이 경우에도 부담은 양측이 합의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측은 이 협정의 시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조속 타결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폴 월포위츠 미 국방차관이 5월11일 이상옥 외무장관과 이종구 국방장관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주류국협정의 조속 타결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서방외교관은 최근 “언제라고 단정은 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미국정부가 이 협정의 타결에 대한 나름대로의 '마감시간'을 정해놓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한국정부에 달려 있다"면서 "미국측이 더 이상 진전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협상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언제든 미군이 들어올 수 있는 법적 근거"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미국측이 한국과 주류국협정의 체결을 서두르는 이유로 △주한미군의 철수 본격화에 대비한 재진입 장치 확보 △한국내의 정치상황을 꼽고 있다. 세종연구소의 李正民 박사는 “유사시라는 개념이 반드시 한반도에서의 전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고 "이를테면 북한내에 정변 또는 중?소분쟁이 터져 동북아 정세에 급격한 변호가 생겼을 때 한.미간의 주류국협정은 언제든 미군이 들어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이박사는 3단계 주한미군 철수계획이 ??현재 미국내의 재정적자와 세계질서 재편에 따른 전략상의 이유로 계획보다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고 "그런 맥락에서도 미국측은 주류국협정의 체결이 시급한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측이 서두르는 또 다른 이유로는 현정권이 원내 안정석을 확보하고 있는 동안 국회의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주류국협정 문제는 향후 상당한 난관에 봉착하리라는 우려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미국측에 늦어도 금년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이전에 주류국협정을 타결 짓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 한·미간에 이 협정이 체결되면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회의 비준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불평등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주류국협정은 국회에서 통과는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야당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미 양국이 과거처럼 종속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로 관계모색을 추구하는 시점에서 이번 전시주류국지원협정은 양국관계의 성숙도는 물론 동반자 관계의 현주소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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