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전사’들 러시아 굴복시켰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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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동해 ‘핵폐기’ 온몸으로 막아

지난 2주 동안 국민의 관심은 온통 바다에 쏠렸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서해에 가라앉은 ‘거대한 관’ 서해훼리호를 웅장한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모습이나, 동해에서 그린피스 행동대원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러시아 핵쓰레기 전용선을 ‘밀착마크’하는 장면, 또 동해의 핵쓰레기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온누리호의 출항은 국민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탄식과 찬사를 교차하게 했다. 3천t까지 끌어올리도록 설계된 기중기를 갖춘 거대한 공룡 설악호는 1백10t급 배 한척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다시 바다 속으로 빠뜨렸다. 반면에 물대포를 쏘는 러시아 핵쓰레기 운반 전용선 ‘TNT 27호’에 맞서 위험을 무릅쓰고 해상 시위를 벌인 그린피스는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번에도 목숨을 걸고 달려든 새우가 고래를 물리친 셈이다.

 맨손으로 골리앗과 다윗의 모습은 오랫동안 그린피스의 전매특허였다. 지금은 세계 30개국에 지부를 두고 회원 5백만 명을 거느린 세계 최강의 환경 단체로 성장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공장 굴뚝을 기어올라가거나 고래잡이 배에 돌진하는 모험적 ‘행위 예술’을 감행하고 있다. 이 녹색 전사들의 적은 늘 그들보다 힘이 더 센 다국적 기업이거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이번에도 모험적인 행동과, 그것을 적극 홍보해 세계의 주목 끌기, 그리고 세계 여론에 의한 압력 행사라는 전형적 방법으로 핵쓰레기 투기 저지투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같은 성공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른 국제 환경운동 단체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린피스의 뛰어난 장비와 정보수집 능력이다. 이번에도 그린피스는 ‘10월 중순에 TNT 27호가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출항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현장 해역에서 ‘잠복근무’한 끝에 덜미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피스는 또한 지난 4월 러시아 정부 핵쓰레기 해양투기문제위원회(위원장 야블로코프 대통령 고문)가 작성한 보고서(‘러시아 연방 주변해역의 핵쓰레기 실상과 문제점’)를 폭로한 바 있다.

 그린피스는 새로 구입한 레인보 워리어호(기존의 레인보 워리어호는 85년 프랑스 정부의 핵실험 감시를 위해 뉴질랜드에 정박중 프랑스 대외안보총국 요원에게 격침됨)말고도 모비딕호·솔로호·벨루가호 등 배 7척과 인공위성을 이용한 첨단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힘은 이같은 첨단장비를 활용한 정보 수집·분석과 재빠른 전파 및 즉각적인 행동에서도 나온다. 그린피스의 한 홍보책자는 그린피스 운동의 모토인 ‘직접적 행동’이 회원들의 용기와 신념 그리고 거듭된 훈련에서 비롯된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환경 보호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행동과 실천에 달려 있다. 지구 규모로 확대된 환경 보호와 개발 문제는 이미 국가와 정부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더구나 우리 모두는 ‘바쁜 사람들’이다. 우리 대다수는 고래잡이 배와 대결하거나 공장 굴뚝을 기어올라갈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이다. 다소 요란스럽기는 하지만 이들의 목숨을 건 행위 예술을 보려고 개인과 기업이 막대한 기부금(지난해 1억5천만달러)을 낸 것도, 결국 이들이 자기네가 하고 싶은 행동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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