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천면 덕신리 최고령자 金尙鐵할아버지
  • 김명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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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많이 묵고 편해서 오래 사는 기라”

 “테레비 보니께 늙은 사람이 한심해. 쪼금만 늦게 태어났으면 이 좋은 세상 더 볼낀데…. 요즘은 쌀밥 아니면 개도 안 묵는 세상이제.”

 올해 1백세, 2천년대를 앞두고 인생사 1세기를 꽉 채운 金尙鐵할아버지의 푸념이다. 나이 먹은 게 슬프다는 듯한 표현을 썼지만 표정에서는 전혀 그늘을 찾을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낙인 듯, 불기 하나 없이 썰렁한 마을회관 노인회 방에 나와앉아서도 金할아버지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맴이 편해야 오래 살 수 있는 기라. 내는 밥을 많이 묵고 아들내외랑 손자, 손녀들이 잘해주니께 이리 사는 기라. 술은 안 묵지만 심심초(심심할 때마다 꺼내 피운다는 뜻에서 담배를 이렇게 불렀다)는 하루 한봉 피우제. 젊을 때 워낙 많이 피워서 인이 백힌 기라. 그카이 오라고 할 데서 잊어버린기제….” 1남4녀 모두를 잘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지금은 아내, 외아들 부부와 살고 있는 金할아버지가 밝히는 장수 비결이다. 이가 몇 개 빠진 걸 제외하고는 걷고 움직이는 데 거의 불편이 없고, 앉았다가도 다른 사람 도움없이 일어설 정도니까. 식구들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 장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마흔이 넘어서 맞은 할머니도 지금 발에 걸린 동상 때문에 누워 있기는 하지만 93세 나이치고는 건강한 편이라고 할아버지는 전한다. 늙으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게 화장실 오가는 것이라 불편이 없으시냐고 물으니 뜻을 알아챈 듯 “아 화장실은 왜 자꾸 물어? 하나도 안 복잡해”라고 껄껄 웃는다.

 현재 덕신마을 노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 金할아버지의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묵고 심심초 한대 피우고 소가 있응께 소도 한번 들여다 보고 마을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하루 해가 지제. 그냥 앉았으면 몸이 쑤셔 운동삼아 하는 기라.” 이처럼 평범한 나날을 보내다가도 마을에서 행사가 있을 땐 젊은 사람들의 스승 노릇을 톡톡히 한다. 한창시절 농악놀이를 이끄는 상쇠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힘은 좋아도 방법을 모릉께 내가 선생이제” 하며 할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하지만 아직 건강을 잃지 않고 마을에서도 깎듯이 어른 대접을 받고 있지만,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고 말벗이 없는 데서 오는 고독감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귀도 멍멍하고 눈도 컴컴하고 정신도 없고… 늙은 사람은 늙은 사람이 좋은디… 동무가 없어 외로와. 다 죽어버링께.” 할머니가 계시지 않냐는 반문에 “할멈도 젊어서나 할멈이제”라며 눈을 찡긋 하더니 “할멈이 먼저 갈지 내가 먼저 갈지… 다 팔자지. 뭐. 그거 알면 내가 박사게?”라며 다시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이 나이에 특별히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있겠냐” 던 할아버지는 그러나 마지막에 혼잣말처럼 이렇게 얘기를 마쳤다. “몇백살 되도록 더 살고 싶은 마음밖에 없는 기라….”


성인병 조기치료 해야 ‘건강장수’
小食 · 짜지 않은 음식섭취 · 낙천적 생활태도 등이 비결

 노인들의 건강문제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있다면 첫째 희망이 없다는 것이요, 다음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플 때는 황급히 병 · 의원에 달려가지만 노인들에게 어떤 질병이나 증세가 나타나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인일수록 기력이 약하고 정신적으로 위축되거나 침체되어 병이 나기 쉽지만 발병하더라도 경제적 기반이 없거나 무관심 탓으로 병 · 의원에는 못가게 된다.

 건강은 마음에 있다. 마치 우리의 생명이 마음에 있는 것과 같다. 모든 노인은 생명에 대해 애착심이 있다. 어떤 점에서는 젊은이보다 애착이 더 강하다. 그리고 장수를 원한다. 더욱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신세지지 않는 ‘건강한 장수’를 원한다. 이러한 심리적 조건은 건강유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는 사회에 대한 적응, 양노원과 같은 시설에 있든지 또 가정에서 살든지 주변 환경에 대한 적응여부는 건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인간은 수태의 순간, 그리고 해산된 직후부터 노화현상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발육이 완전히 끝나는 20~25세 이후 즉 성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시되는 질환은 신생물질(암),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등 이른바 성인병이다. 이런 병은 손쉽게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치유를 요하고, 그것이 낫기도 전에 또 다른 성인병을 가져온다. 즉 합병증을 가지고 오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부터 착하고 남을 위한 선한 사람은 노인이 되어도 남을 위한 봉사를 하며 건강하게 살지만, 그와 반대로 어렸을 때부터 못된 사람, 이기적인 사람은 평생 그렇게 살다가 노인이 되어도 자기보호에 끙끙 앓고 피해망상증으로 평생 평안한 생활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인격수양 생활을 강조한 일면도 있는 말이지만, 정신보건상 타당한 이야기다.

 성인병은 무섭지만 예방은 쉽고 또 정기적으로 몸을 살펴 건강진단을 받는 습관을 가지면 조기에 발견해서 쉽게 고칠 수 있다. 뒤늦게 발견되어 치유의 길을 잃었을 때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소극적인 건강관리는 정기검진후 의사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적극적인 건강관리 즉 건강장수를 위한 제안을 다음과 같이 하고 싶다.

 첫째, 육체적 운동뿐 아니라 정신운동도 규칙적으로 한다. 정신운동이란 항상 “나는 젊다”라는 철학으로 살며 생각이나 행동, 더 나아가서 생활 자체를 젊게 하는 것이다. 둘째. 눈의 보호에 힘쓴다. 실명한 사람의 고통을 생각해볼 때 우리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눈에 대한 정말검사를 1년에 꼭 1~2회 한다. 셋째, 식사는 규칙적으로 알맞게 하고 될 수 있으면 小食으로 하되 짜게 먹지 않도록 한다. 넷째, 금연을 철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낙관적 생활태도, 분수를 알고 기뻐하며 살도록 한다. 여섯째, 몸을 항상 움직이는데 노력한다. 일곱째, 선한 일 즉 가정 · 직장 · 사회에서 크고 작은 선행을 많이 하도록 한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대로 산다. 여덟째, 생활수준을 건강을 중심으로 높인다. 깨끗한 식수, 위생적인 오물처리, 즉 청결한 주방과 화장실을 갖춘다. 호화스럽기보다는 검소하지만 건실한 생활환경을 형성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개발도상국가들은 물론 구미선진국도 평균수명이 40~50세에 불과했으나 오늘날은 70~80세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 88년도에 남자는 66.2세, 여자는 72.7세로 조사되었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드디어 2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노인의 복지정책을 세워 구미사회처럼 노인의 소득보장, 의료보호 그리고 평생교육 기회의 확대라는 복지서비스 분야에 중점을 두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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