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3년'은 좌절의 역사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6.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펴낸 서중석 교수

  지금 여기가 '탁류'라면, 그 흙탕물의 발원지는 저 해방공간이다. 최근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해방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과 통일전선》(역사비평사)를 펴낸 서중석 교수(성균관대·역사학)는 "해방은 근대사 모순들의 총체적 집중임과 동시에 현대사 모순들의 출발점"이라고 규정한다.

  서교수가 이번에 내놓은 연구서는 한국현대사 분야의 첫 박사학위 논문(90년 8월)이며, 처음으로 국내자료에 바탕한 현대사 연구라는 점에서, 또한 그간 좌·우익의 편향된 시각에 의해 이루어진 부분적 연구를 비판, 극복한 종합적 연구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저자의 70, 80년대 체험도 눈길을 끈다. 67년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한 이래 삼선개헌 반대, 유신철폐, 민청학력 사건에 관련돼 제적과 복학, 투옥과 재입학 등을 거치면서 한국 현대사와 온몸으로 부딪쳐온 것이다. 그리고 월간 《신동아》기자로 활동하면서 줄곧 80년대의 현장을 목격했다. '늦깎이 학자'의 현대사 탐구는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한반도 분단문제를 다른 그간의 저서들이 분단의 원인을 미소의 세계정책 중심으로 조명한데 비해 서교수는 "민족국가건설운동의 주체인 우리 민족이 분단체제로 나아가는 데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한반도의 분단은 미소의 세계정책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제 식민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과 구심점을 세우지 못한 국내의 정치세력들, 그리고 곧바로 외세와 결탁한 친일세력 등이 민족국가 건설의 방해요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외세보다는 국내에 문제가 있었음을 새롭게 구명해낸 것이다.

  "민족통일전선운동과 좌우대립이란 상호모순을 기본축"으로 하는 이 연구는 △민족통일전선 운동, 중경임시정부 추대운동,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노선이 일제시기에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탐구하고 △해방 후 미소 점령 아래서 연합정부론, 중경임정추대론,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론등의 세 방안이 민족국가 건설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또한 △이 세 정부수립 방안의 상호 유기적 대응·대립 양상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서교수는 특히 45년 8·15부터 46년까지의 좌우합작에 의한 민족국가 건설운동을 중시한다. 그는 "미소에 자주적, 우호적 관계를 견지하고 진보적 변혁의 프로그램 아래 좌우대립을 최소화, 민족대단결을 이룩함으로써 모스크바3상회의 결의에 주체적으로 대응했다면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며, 설령 분단을 막지 못했다 하더라도 민족의 자주성이 세워지고 극심한 좌우대립은 완화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느 국가나 근현대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서교수는 이제야 현대사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을 안타까와 한다. 이같은 때늦음은 한국사학분야에만 역기능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현대사 연구는 다른 학문과 연결되면서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서교수는 이 저서가 "한국현대사를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연구하는 한계기기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해방3년사는 실패와 좌절의 역사였고 6·25는 민족통일전선, 민족주의 세력을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나 "해방3년사 연구는 민족통일국가를 민족적 과제로 안고 있는 남북한에게 그 실현을 위한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서교수는 말했다. 여운형과 백남운의 역사관에 동의하는 그는 앞으로도 1920년대, 4·19와 5·16을 연구할 계획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