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전쟁구름 사라지려나
  • 워싱턴.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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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蘇 군축회담…재래식무기 협상 곧 타결될 듯, 전략무기 협상에선 원칙만 합의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핵전쟁의 위험이 감소된 요즘의 추세에 비춰서 전략공군사령부의 폭격기를 24시간 공중에 띄워두는 현재의 경계태세를 조만간에 철폐하도록 한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의 건의를 단호히 거부했다. 체니 장관은 적자투성이의 예산형편을 감안, 국방비를 다소나마 줄여보자는 뜻에서 지난 28년 동안 실시해오고 있는 전략공군사령부의 24시간 공중대기 비행을 중지하는 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결재를 올렸던 것이다.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시에 본부들 두고 있는 전략공군사령부는 보잉707 기종의 폭격기에 핵폭탄과 미사일을 장착한 채 쉴새없이 공중에 띄워놓아 임전태세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는 만약 대통령 이하 지도자들이 소련의 핵공격으로 사망했을 때 이 폭격기가 보복공격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폭격기에는 항상 공군장성 1명이 탑승 지휘를 하도록 되어 있다.

“소련과의 대립의 시대가 지나고 새 협력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 부시 대통령이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대폭 줄어든 마당에 체니 장관의 건의를 묵살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체니 장관의 건의가 묵살된 데 대해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대통령 안보담당보좌관은 별다른 뜻은 없고 다만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 상징적인 뜻이란 다름아닌 보수주의 세력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의 실세인 보수주의자들은 부시 대통령이 너무 성급하게 군축협상에 뛰어들어 고르바초프가 부는 피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한동안 소심하다는 비난을 들어온 부시 대통령이 몰타회담 이후 갑자기 관료들의 ‘궁둥이를 발로 차면서’ 군축문제에 박차를 가해 90년 안에 모두 매듭을 짓도록 독려를 하고 있는 것 만은 틀림없다.

지금 미?소 두나라 사이에 추진되고 있는 군축회담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유럽주둔 재래식병력감축 협상(CFE)과 전략무기감축 협상, 이 두가지를 놓고 양측이 빈과 제네바에서 각각 합의점을 찾고 있다.

빈에서 15년 동안 열리고 있는 유럽주둔 재래식병력감축 협상은 소련측의 신축성 있는 태도로 타결될 전망이 매우 짙어 보인다. 이미 소련은 미국이 제의한 유럽주둔 미?소 두나라 병력을 각각 27만5천명선으로 줄이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현 병력에서 3만명만 줄이면 되지만 소련은 무려 32만5천명을 깎아야 한다. 이밖에 탱크, 장갑차, 대포, 항공기와 헬리콥터 등을 현재의 수준에서 평균 15%씩 각각 줄이는 문제도 검토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은 협상이 현 추세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수년내에 유럽주둔 미?소 두나라 병력은 각각 10만명선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한편 단기적으로 부시 행정부는 소련군의 동독 주둔을 양해하는 선에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현상유지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극소수의 소련군이나마 폴란드에 주둔, 모스크바-동독 통로를 소련이 계속 갖도록 동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전략무기감축 협상에서 양측은 이미 핵미사일이나 중폭격기의 수를 1천6백기로 줄이고 핵탄두도 현재의 절반인 6천개로 깎자는데 원칙적으로 합의를 했지만 해군함정에서 발사하는 유도탄 등 해군무기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몰타회담에서 해군함정이 보유한 유도탄이나 잠수함에 적재된 단거리유도탄들도 협상테두리 안에 넣도록 하자는 고르바초프의 제의를 부시가 한마디로 거절했다는 사실로 미뤄 해군무기 문제는 양측 군축협상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무튼 전략무기 감축협상은 오는 6월 워싱턴에서 있을 제2차 미?소정상회담 때 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일단 마무리되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극적인 상황이 없는 한 비관적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다만 몰타회담에서 보았듯이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 두사람 다 어깨를 짓눌리우고 있는 무거운 군사비를 줄이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있고 두 나라 국민도 다같이 “대포를 만드는 것 보다는 버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용단을 내리게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보다 소련쪽에서 더 국민으로부터의 압력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GNP의 17%를 군사비로 써온 소련경제의 적자폭이 미국의 3배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도 해마다 늘어나는 무역적자를 비롯, 재정적자 또한 빚을 내어 이자를 갚아야 하는 궁색한 형편이고 보면 사정이 급하기는 매한가지다.

오죽하면 체니국방장관이 자진하여 1995년까지 국방예산에서 1천8백억달러를 깎겠다고 나왔겠는가. 하지만 체니 장관의 예산자진 삭감에 대해 의회쪽에서는 별로 호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회지도자들은 레이건 행정부가 80년대초부터 8년 동안 무모하게 국방비를 해마다 10% 이상씩 늘려온 사실을 감안하여 더 깎아야 한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의회에서는 벌써부터 국방비를 줄여서 생기는 몫을 ‘평화배당금’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새로운 용도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방비삭감으로 절약되는 돈이 평화배당금으로까지 전용될 만한 것은 아니고 연방예산적자를 줄이는 선에서 쓰일 정도라고 분석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랜드 연구소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핵무기감축에서는 실제로 절약되는 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생산해놓은 제품을 없애는 데 비용이 따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재래식병력감축에서 유럽에서 전투병력을 15만명쯤 줄일 때 연간 고작 70억달러 정도가 절감되는 데 정말로 돈을 절약하려면 미국내 병력과 시설을 대폭 축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내 병력축소는 지역별 이익이 엉켜 있어 의회에서 오히려 반발하는 경향이고 보면 이 문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것인듯하다.

지금으로서는 소련과 나토동맹국들이 지역안정을 위해 미군의 유럽주둔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고, 또 부시 행정부는 소련의 위협이 점차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사정을 보아가며 연방정부의 적자예산을 다소 줄이는 선에서 군사비를 약간씩 깎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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