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화합 배우자”기업 해외연수 바람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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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간부 등 대상, 동구권 등지서 “현장체험”…“노조무력화 의도”반발도

“자유노조로 유명한 폴란드 그다니스크 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기대와는 달리 근로자들의 모습에서 활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반대급부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인 듯했어요. 같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이면서도 헝가리의 경우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부다페스트 이카로스 자동차회사의 근로자들은 다들 열성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었어요. 폴란드와는 너무 틀려서 이유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헝가리 근로자들은 합법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벌일 수 있는데도 조업중단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원도 투표를 회사임원이 될 수 있었으며 5년 임기의 사장도 투표로 뽑았어요. 이익을 내지 않고는 다시 선임될 수 없다 보니 노사 모두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한 식구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임금인상 투쟁을 벌일 때도 애초부터 노사 양측에서 제시한 안에 별 차이가 없어 협상이 쉽게 타결됐습니다. 임금인상률도 매년 7~8%선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물가상승률 18%에 크게 밑도는 수준이었어요. 개인적으론 불만이 있지만 대국적인 차원에서 자제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당신들이 ‘으싸으싸’ 할 때 우리는 열심히 뛰어 5년안에 따라잡겠다고 기염을 토할 땐 섬뜩할 지경이었어요.” 지난 11월 유럽 4개국 연수 기회를 가졌던 대우조선 노조의 權成泰감사는 건전한 노사관의 확립이 그 어느때보다 시급하다는 위기의식을 안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權씨는 노사 모두가 무리한 주문을 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서독 하다베 조선소에서 느꼈던 ‘나도 노력하면 전문 경영인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부쩍 기업들이 노조간부 중심의 해외연수 기회를 확대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종래 정신교육?자동화교육?품질교육에 주력하던 기업들이 격렬한 노사분규를 미리 막아보자는 의도로 노조간부들을 다투어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물론 각 그룹들이 2천년대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원연수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노조원 위주의 해외연수 기회를 크게 늘리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규피해 컸던 기업들 특히 적극적  
특히 ‘6?29 민주화 선언’을 기점으로 폭발한 노사분규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던 현대?대우그룹 등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현대전자의 경우 상반기에 노조간부 40명과 직?조장급 1백 90명을 일본 동종업체에 연수시켜 노조활동 견학 및 산업시찰을 실시했으며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노사합동 연수와 기술연수로 2백여명을 해외에 내보냈다. 노사분규를 심하게 치른 대우그룹도 패밀리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마련, 노사화합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대우그룹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우조선의 경우 노조 간부 20명이 지난해 11월 폴란드, 헝가리, 서독 등 유럽 4개국의 조선소와 철물공장 등 관련업체를 방문, 그 나라 노조대표들과 폭넓은 의견교환을 가졌다. 선진국의 산업현장을 근로자들이 직접 봄으로써 현황 파악과 함께 근로의욕을 부추기고자 하는 사용자측의 노력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포항제철, 서울도시가스, 대한항공, 금성사 등 웬만한 대기업들은 노조간부들을 중심으로 일본, 대만, 미국, 중국, 동구권 등지의 해외연수 기회를 대폭 확대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역점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도 노동자 해외연수 확대를 통한 산업 평화 정착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노동부가 2억8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0월말부터 12월말까지 총10진(2백31명)의 ‘노조간부 공산권 연수단’을 중국에 보낸 일이 그 한 사례이다. “蘇州의 한 수공예공장에 갔었는데 그들의 양탄자 짜는 솜씨가 얼마나 정교한지 놀랍더군요. 우리 돈으로 1천만원을 홋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회주의 경제체제이다 보니 근로자들이 애써 열심히 일하려 하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북경에 있는 기계공장창에 가보니 놀랍게도 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물론 서구국가의 조합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생산복지부?민주관리부 등이 있어서 주로 공제기능이 발달된 노조였어요.” 제9진의 일원으로 중국을 다녀온 전국자동차노련의 金舜浩 국제부장은 역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사회주의국가의 현실을 우리 노동자들이 직접 눈으로 보게 함으로써 소기의 교육적 효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올해에도 중국 뿐만 아니라 동구권에도 연수단을 보낼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회사 자체 연구프로그램도 시도되고 있지만 한국능률협회, 한국생산성본부 등 기업 연수 전문 교육기관과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등의 행사에 대거 연수단을 파견하는 기업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능률협회가 자주 마련하고 있는 洋上대학?船上대학 등의 행사에 기업들의 참여열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행사는 노사가 한배에서 생활하면서 공동운명체임을 체험해보고 일본 유수 기업들의 노사관계를 살펴보는 자리를 통해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게 돼 합리적인 기업관 정립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사실 기업들로서는 국제화시대에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릇으로 키운다’는 인력관리 목표로 직원연수 기회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연수프로그램도 다양할 뿐더러 이에 대한 투자도 날로 늘고 있는 추세여서 노조간부들의 해외연수 바람이 인다고 해서 그리 놀라운 일은 못된다고 재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그룹들의 연수기회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노조원들이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견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선진권의 노사관계를 보면서 우리의 노동운동 방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주어져 결과적으로 노사안정을 이루고 산업평화를 이룩하게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정부나 각 기업들이 다투어 노조간부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는 ‘저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많다. 노사분규가 빈발한 이후 두드러진 노조간부 해외연수 강화를 全勞協 결성등 노동계의 결집이 가시화되면서 사용자측이 노사분규 재연을 막기 위한 ‘노조간부회유용’내지는 ‘개량화’의도가 충분하다는 노동계 일각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사심없이 보낸다고는 하지만 사용자가 이를 미끼로 노조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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