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유엔가입 결정은 ‘강요된’ 주변상황 돌파용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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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북한 외교부 성명의 요지는 북한이 유엔가입 결정을 내린 것은 남한만이 유엔에 단독으로 가입해 유엔 무대에서 “전 조선민족과 관련된 정책들이 편견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은 ‘강요된 변화’이고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정부의 의도가 적중한 셈이 된다.

 그러나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은 비록 타율적 형태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아무런 적응과정 없이 갑자기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데에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이와 관련, 서울대의 金寅永 교수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유엔정책 변화는 북한 지도층의 현실감각 및 변화가능성을 과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실 감각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동안 북한 지도층이 국내적으로는 사상교양교육과 통제강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위험부담이 적고 실익을 기대할 만한 대외관계에서는 주목할 적응능력과 신축성을 보여왔던” 변화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변화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현실에 민감하고 합리적인 당·정의 관료층이 존재하고 이들이 대세변화에 힘입어 견해를 표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 것”이고 이는 곧 이들 세력의 중심적 인물인 “김정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외교안보연구원의 柳錫烈 교수부장은 현재 김정일 체제로의 권력 이양기에 있는 북한은 “체제의 와해를 막고 세습체제 구출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동안 기존의 남조선혁명전략을 남북한의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해왔다”고 지적하고 유엔가입결정은 이런 정책 전환의 분기점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정책도 함께 변화
 북한의 유엔가입 배경에 대해 “외교부 성명에 나온 대로 불가피하게 취해진 조처일 뿐 권력구조의 변화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이런 정책 변화가 치밀하게 준비돼온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견해를 같이 한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金南植씨는 한 대담석상에서 “북한은 그동안 연방제통일방안을 거듭 수정해왔는데 이는 곧 유엔가입을 염두에 두고 진행돼온 느낌이 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북한 외교부 성명에서도 지적됐듯이 북한은 그동안 유엔가입문제를 통일문제와 동전의 양면처럼 인식해왔다. 따라서 유엔가입정책의 변화는 통일정책의 변화와 함께 진행돼왔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북한은 지난해 5월24일 金日成 주석의 시정연설에서 유엔정책과 관련, 그동안의 ‘선통일 후가입’ 원칙에서 “통일 전이라도 잠정적으로 유엔에 단일의석으로 가입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또 이 단일의석가입안이 남한측의 동의를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나자 지난해 10월 朴吉淵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안보리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단일의석가입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해 다시 한 발 물러섰다. 최근에는 “유엔가입문제와 관련 남한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유엔정책에서 나타난 신축적인 입장 변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통일방안인 고려연방제안에도 수정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초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에서 “완전한 연방에 이르기까지의 과도적 단계로 지역자치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단계적연방안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4월의 IPU 총회 때 북한측 관계자들은 “자치정부의 권한에는 외교권과 국방권이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해 신년사의 내용을 더욱 구체화했다. 최근 <요미우리신문> 주최로 일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는 북한측 대표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치안 행정 등 각 분야에 걸쳐 수정연방제안의 기본계획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우리측의 한 대표가 “그렇게 될 경우 남한에서 제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거의 같아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매우 반가워했다고 한다. 현재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연방제 수정안은 우리측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통일에 이르는 과도적 단계로 설정된 국가연합 단계와 아주 유사해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 공동의 통일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북한이 최근 제시한 수정연방제안의 내용 속에서 지역정부에 외교권을 인정한 것은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지역정부의 외교권 행사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북한이 어쩔 수 없이 유엔에 가입할 경우 기존의 통일방안과 모순되는 점을 사전에 제거한 인상이 짙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최근 중국과 소련이 더 이상 남한의 유엔가입에 대해 거부권행사를 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지고 북한·일본간 제3차 수교협상 과정에서 유엔가입이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되는 등 주변상황이 어렵게 돌아가자 국면 돌파용으로 유엔가입 카드를 내밀었다는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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