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못받는 검찰 부검 제도마저 절름발이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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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 일본식, 의대 교육과정 미국식 … 전문인 양성 소홀

 시위 도중 사망한 성균관대생 金貴井양의 부검 여부를 놓고 검찰과 유족 및 재야와 학생들이 강경 대치를 하고 있다. 검찰은 사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물리력을 써서라도 부검을 해야겠다는 입장이고 대책위 측은 검찰 주도로 진행되는 부검은 결과가 뻔하므로 절대로 시신을 내줄 수 없다는 자세이다. 유족은 유족대로 억울하게 죽은 김양의 시신에 칼을 대 두 번 죽일 수 없다며 강경하게 버티고 있다.

 이는 비단 김양 사건 때만이 아니라 시국관련 희생자가 나올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되풀이되곤 했던 일이다. 강경대군 치사사건 때도 유족과 대책위가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검찰은 부검을 하지 못하고 검안만 해야 했다. 한진중 공업 노조위원장 朴昌洙씨 의문사 때는 백골단을 동원해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가 시신을 ‘탈취’해야 했다.

 법적으로는 변사체의 처리는 어디까지나 검찰의 고유권한이다. 변사체가 발견되면 검찰은 부검 여부를 판정해 판사의 결정에 따라 부검을 실시, 적절한 법 적용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시국사건 때마다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못하고 곤욕을 치르는 것은 우선 1차 적으로 검찰에 책임이 있다. 그동안 검찰이 의심받을 만한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7명이 1년에 1천2백~1천5백 건 처리
 이승만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몰락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김주열 군과 박종철 군 사건 때 검찰이 진실을 은폐하는 데 앞장섰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얘기이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현행 검시제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의학에서는 사망의 종류를 크게 병사(자연사)와 의인사(변사)로 분류한다. 의인사의 경우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이 필요한데 부검에는 행정부검과 법의부검이 있다. 행정부검은 행려병자 자살자 사고사망자에 대해 실시하는 부검을 말하며 법의부검은 범죄의 혐의가 있는 사망자에 대해 실시하는 부검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행정부검이건 법의부검이건 검찰의 의뢰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거의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그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진 7명은 1년에 무려 1천2백~1천5백 건의 사건을 처리하느라 홍역을 치르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부검의 지휘책임은 우리나라처럼 검찰에 있지만 검찰은 행정부검만 담당하고 법의부검은 대학 법의학교실에 일임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부검과정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일본에서는 국공립이건 사립이건 법의학교실이 없으면 의과대학 설립인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법의전문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정기간 병리학과 법의학을 공부한 전문의로 하여금 검시를 전담케 하고 독자적으로 현장조사에서부터 검안과 부검은 물론 필요한 경우 증인 신문까지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법의전문의는 유능한 법의학자 중 주평의회의 추천에 따라 주지사가 임명하거나 공개시험을 통해 선출하며, 어떤 기구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는다.

제대로 공부한 사람 5명 정도
 법의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법의부검은 일본처럼 대학에서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법제는 일본식을 따르고 있으면서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미국식을 그대로 본땄기 때문에 완전히 절름발이 형국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전에는 오히려 대부분의 의과대학에 법의학교실이 마련돼 있어 법의학에 대한 강의가 활발했었다. 그러던 것이 해방 이후 미국식 교육이 도입되면서 법의학교실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시찰단이, 법의전문의 제도가 정착돼 있는 미국에는 대학에 법의학교실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법의학교실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 뒤 4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는 법의학의 불모지대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대학 중 현재 법의학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학 고려대학 경북대학 등 3곳뿐이며 법의학자도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나마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5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황적준 교수는 “권력이나 운동권의 편견 때문에 죽음의 진실이 은폐돼서는 안된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많은 현장경험을 쌓은 전문인뿐이다. 전문인을 양성할 수 있고 전문인의 의견이 존중되는 풍토가 조성되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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