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본 늦은 午後의 세계”
  • 류철균 (문학평론가)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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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박상우 소설집 세계사 펴냄/398면 4천8백원

 박상우의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정치적 폭력과 속물주의, 제도화된 ‘미시권력’의 억압과 타협하지 않는 영혼의 의지와 고통을 그린 진지한 예술가 소설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중 한국 자본주의의 방탕한 자족감이 넘치는 90년대 초의 시대를 진지한 인문주의적 정신을 갖고 살아가려는 어느 소설가의 가난과 절망을 그린 <먹고사는 일에 관한 명상>은 인생과 세계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근본적인 지향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6만원의 셋방에서 아들의 백일상도 차려주지 못하는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면서도 창작에 몰두하는 주인공은 “무반성적인 생활인”의 세계 밖에 존재하는 예술가적 삶의 한 전형이다.

 그러기에 이같은 세계는 이미 그의 장편소설 《지구인의 늦은 하오》에서 나타나듯이 늦은 오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막막하고 괴로운 삶에서 길어 올린 현실 비판의 계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항용 “새벽 네시반 경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후 두 시경에 눈을 뜨는” 일상 속에서 하루해가 기울어질 무렵에 몸을 추스르며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창작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은 남들보다 더 늦게 세상에 알려진 박상우의 작가적 편력으로, 나아가 저마다 한 몫 잡겠다고 분분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고의적으로 지각하며 더 높은 정신의 세계를 꿈꾸는 90년대의 젊은 작가들 일반으로 환치된다.

 이 늦은 오후의 세계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세상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통찰하는 그 괴로운 삶을 스스로 자청한 예술가의 열정을 담고 있다. 10년째 사랑니의 염증을 앓으면서도 끝끝내 이를 뽑지 않고 견디는 주인공의 불가해하리만큼 우직한 태도(<먹고 사는…>)는 이같은 열정의 비유로써 정치과잉의 연대, 某某한 주의와 이데올로기들의 연대를 지나 그 시대가 신뢰했던 ‘우리’가 뿔뿔이 해체돼갈 때 “마지막 기착지”로서 당도하는 예술의 세계(<샤갈의 마을…>)를 설명해준다.

 때문에 <샤갈의 마을…>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구조와 내면풍경을 그대로 반추하면서도 김승옥이 끝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그 마을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정치에의 기대가 한갓 환멸과 자학으로 끝날 때 그 절망과 단절의 마지막 벼랑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을 향한 마지막 통로를 지키며 우리를 위안하는 예술은 현실 속에 샤갈의 환상적인 마을로 존재하는 행복에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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