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비평의 ‘사각지대’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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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단체의 활동영역 일부로 편입돼야 활성화 가능

 텔레비전 광고는 대중의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구조를 재편성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모든 영상매체의 제작양식이 텔레비전 광고를 닮아 가는 것이나 광고모델 출신의 스타급 연예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텔레비전 광고의 영향력 증대는 그에 상응하는 강도 높은 비판을 불러일으켜 왔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전제로 하여 광고를 ‘필요악’으로 인정하는 차원에서도 광고에 대한 비판은 물질만능주의의 확산,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끼치는 악영향, 여성의 상품화 등을 중심으로 하여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광고에 대한 비판은 일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개선을 위한 실천방안이 결여된 채 일과성의 산발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청자운동의 활성화와 함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비평·감시하는 개인 및 단체가 늘고 있지만 광고에 대한 비평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소비자단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광고비평은 광고심의위원회의 전유물일 뿐 사회운동 차원에서는 미숙한 단계에 있다고 판단된다.

 광고비평이 외면되고 있는 이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비평행위 자체의 만족감이나 ‘보도효과’에 있어서 광고는 일반 프로그램에 미치지 못한다. 둘째 비평행위의 구체적 실천에 있어서도 광고는 일반 프로그램에 비해 까다롭고 지루하다. 셋째 ‘광고는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어 비평행위에 따른 개선효과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러나 텔레비전 광고가 사회에 끼치는 가공할 영향력을 감안할 때 광고를 비평행위의 사각지대로 남겨놓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렇다며 어떻게 해야 광고비평을 활성화할 수 있으며, 바람직한 광고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광고비평운동은 시청자운동과는 달리 ‘이해집단별 비평세분화 전략’에 근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막연한 정의감이나 추상적 도덕성과 같은 동기부여로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광고비평운동은 광고비평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새롭게 조직되기보다는 기존의 각 사회운동단체들의 활동영역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다.

 예컨대 여권운동단체들은 광고의 ‘여성 상품화’를, 어린이·청소년보호단체에서는 광고가 청소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문제삼아 비평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활동은 기존의 시청자·소비자단체들과의 긴밀한 유대 속에 이뤄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광고의 개선을 비관적으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 광고는 만들기에 따라 시청자에게 경쾌한 쾌락과 더불어 유익한 생활정보를 얼마든지 제공해 줄 수 있다. 광고비평운동은 처음부터 광고에 대한 적대적인 선입관을 갖고 시작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개선 가능성을 믿는 기반 위에서 현실적이되 적극적인 사고로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 시청자들의 ‘능동적인 시청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광고의 문제를 시청자의 판단과 책임으로 전가하는 함정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광고비평의 활성화를 전제로 할 때 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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