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서예교류 ‘첫 획’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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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두 차례 전시 … 북한작품 “창의력 부족”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서예의 만남이 중국 북경에서 잇따라 열려 지난 40여년간 장막에 가려졌던 북한 서예의 모습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달 중국서법가협회 및 북경대학내 고려학회(회장 최응구)에 의해 각기 성사된 이번 만남은 전시기간 중 학술강연을 통해 분단 후 남북 서화계의 발달 과정을 살펴본 뜻깊은 자리였다.

 첫 만남이 이루어진 ‘북경국제서예초대전’(5월9일~15일)은 중국서법가협회의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인 중국서법예술박람회의 개막행사였다. 천안문 옆 노동인민문화궁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남북한을 비롯한 10개국의 작가들이 출품해 성황을 이루었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현지에 참가했던 최광열씨(《월간서예》발행인)에 의해 북한 작품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북한측에서 출품한 최원삼 김기범 등 4명은 주중국 북한대사관에 의해 선발된 북한 서예계의 대표급 작가로 알려졌으나 이들의 작품성은 남한 작가들에 비해 크게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서예의 전반적 수준에 대해서는 북한 작가들이 다수(29명) 참여한 ‘남북한서화전’(5월27일~29일 북경 아시아올림픽문화센터)의 참석자들이 귀국하는 대로 밝혀지겠으나 이미 소개된 한문 서예 4 점을 놓고 볼 때 “예술적 창의력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서예협회 이사장 심우식씨는 “서법의 원리 중 특히 章法(구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이는 북한 작가들이 다양한 서법을 공부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고, 서예가 황석봉씨는 “격조가 떨어짐은 물론 기본 운필에도 상당히 무리가 있는 취미 서예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우리의 경우 年記를 ‘幸未’ 등 전통적으로 육십갑자를 쓰고 있으나 북한에선 ‘1991’ 등 서기 연기를 쓰고 있는 것도 확인되었다.

북한의 한글 붓글씨 ‘천편일률’
 북한의 서예는 그간 국내 서단에 소개된 바가 없었다. 획일적 사회주의 체제의 그늘 아래서 작가 개인의 창의성이 크게 억눌린 가운데 한문 서예는 퇴조하고 한글 서예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왔다. 이번 전시에 참가했던 최광열 씨에 따르면, 북경에서 만난 중국·일본의 대가들조차도 “북한의 미술인 초청으로 평양을 몇 차례 다녀왔으나 북한의 서예작품을 보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한다.

 북한 예술활동의 총괄 기구인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조직표를 보아도 조선미술가동맹 산하에는 회화 동양화 무대미술 조각 공예 평론의 6개 분과가 있을 뿐 서예를 별개의 분과로 두고 있지 않다(우리의 경우는 서예가 미협과 서협의 2개 단체로 양분된 가운데 2천여 명의 작가가 활동을 펴고 있다).

 북경전에 출품했던 세종대 서희환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작품들에 대해 “노련하나 진부한 느낌”이라면서 ‘판문각’의 현판이나 <통일전망대> 등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간혹 비쳐지는 북한 플래카드의 선전문구를 주의해 본 결과 한자를 쓴 것은 거의 없었으며 한글의 붓글씨 양식은 천편일률적이었다고 전한다. 우리의 경우 한자 서체를 한글에 접목시켜 전예(篆隸) 양식이나 한글 초서 등으로 다양한 양식적 변용을 꾀한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의 경우 해방 전에 이미 궁체 등 정통 한글서체로 활동한 작가들이 있었음에도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부분 평가 유보를 전제한 서예가들의 이같은 견해에 대해 미술평론가 최병식 씨는 단순한 수직적 평가가 앞으로 북한과의 교류를 긍정적으로 이끄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수직적 평가 이전에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사회적·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더 급하다”라고 강조한다. 남북한의 문화예술 연구를 전담하는 기관의 설립 등 제도적 뒷받침과 접근 자세의 획기적 변화를 통해서만 실질적 교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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