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海元 서울특별시장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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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로 비용은 차세대 몫”

 전 국민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1천만 명이 살고 있는 속칭 ‘서울공화국의 수장’ 李海元 시장. 연간 국가예산의 9.2%인 4조2천2백26억 원을 집행하는 만큼 서울시장직은 곧잘 “대통령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대학교수·국회의원·보사부장관을 역임한 후 서울시장으로 취임, 지난 5월29일로 취임 1백일을 맞이한 이시장을 만나 서울시가 안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지, 또 어떤 해결방안을 세우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구청장 회의와 국장급 간부회의를 언론에 공개하는 등 관료사회의 고질적 관행인 비밀주의를 없애려고 노력한다는 이시장은 자신을 점진적 개량주의자라고 말한다.

●수서 파동 와중에 취임, 1백일 동안 22개 구청을 순시하는 등 시정업무 파악에 바쁘셨을 줄 압니다. 시장으로서 업무처리의 소신이랄까, 철학을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시장실에 앉아 있지만 언제나 시민의 입장과 시장의 입장을 반반 가지고 업무를 처리하고 있어요. 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틀렸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처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5천~6천 달러가 될 때 인간의 욕구가 대단히 높아지기 때문에 이 욕구를 수렴하는 일이 아주 힘듭니다. 서울시에 처음 들어와서 놀랐어요. 국장급이 본청에만 21명, 22개의 구청, 5개의 공사, 4개의 사업소가 있으며 4만5천명이 소속된 방대한 조직을 한 사람이 관리하는 겁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시민들은 시청공무원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시청에 들어와서 많은 일을 열심히 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취임 후 사흘째 되던 날 눈이 많이 왔는데 그 이튿날 아침 출근하다보니 도로가 빙판길이 되어 있었어요. 세금은 꼬박꼬박 받으면서 시는 뭐하고 있느냐고 시민들이 아우성을 쳤지요. 직원들에게 물어보니까 2천명이 밤을 새워 염화칼슘을 뿌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가 되면 염화칼슘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답니다. 그 날은 영하 11도가 넘었기 때문에 염화칼슘을 뿌렸어도 아침에 빙판이 돼 있었던 거지요. 서울시와 시민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지요. 시 공무원이 이렇게 애를 쓰고 있어도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택시기사한테 서울시장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의식적으로 이름을 알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은 일을 하는 것이지 이름을 알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일만 하면 그만입니다.

●강경대군 장례식 하루 전인 5월 17일 시국과 관련하여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담화문을 발표, 시민과 학생에게 자중자애 해 달라고 하신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국담화문이 아닙니다. 시장은 시국에 관한 담화문을 낼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1천만 시민의 평안하고 안온한 생활관리를 하는 입장에서 생활의 불합리와 불편을 제거하고 알려주는 게 나의 책임입니다. 그 안에는 시국·정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시민의 평안한 생활을 염려하고 해결하려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이지,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닙니다. 선비의 갓끈이 끊어졌는데 배나무 밑이라고 안 매고, 짚신이 끊어졌는데 오이밭이라고 안 매겠습니까. 설혹 오해를 받아도 발언해야 할 때는 발언하는 게 책임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상주인구 1천60만 명,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1천4백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서울시가 안고 있는 과제는 어떤 것들입니까?
 주택문제를 우선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교통 물 쓰레기 공기 저소득층생활관리 등 모두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시점에서 종합적 구상·기획을 해서 하나씩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5년 뒤의 서울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서울시 주택보급률은 50%를 간신히 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푸념하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됩니다.
 정부의 2백만 호 건립계획 중 서울시가 40만 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중 80% 이상을 20평 미만의 서민용 주택으로 지으려고 합니다. 큰 주택에 대한 시민의 욕구가 있는 것도 알지만 그보다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건립이 더 시급합니다.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교통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대통령 순시 때 전격적으로 제3기 지하철 건설계획을 발표하셨지요?
 대중교통에서 현재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이 18%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버스 의존도가 높습니다. 제2기 지하철 공사를 계획대로 97년에 끝내면 50%로 올라간다고 하지만 선진 도시에 비해 크게 못 미칩니다. 또 2기 완공 후에 3기 지하철 공사를 시작하면 공사의 단절로 말미암아 낭비가 초래됩니다. 지하철은 3~4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동안 기초시설 자재나 장비가 방치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2기 지하철을 96년까지 앞당겨 완공하고 2기 완공 전에 3기 지하철 건설을 착수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하면 3기가 개통되는 99년에는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이 선진 도시와 같은 75%에 이르게 됩니다.

●총연장 60㎞에 이르는 서울 도심의 지하도로 건설계획이 전격 발표되자 ‘장밋빛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는데요?
 현재 하루 6백대씩 늘어나고 있는 자가용이 2000년에는 2백70만대가 됩니다. 그런 반면 현재 18%의 도로율은 2000년대에 가도 21%에 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현 도로사정은 폭만 넓지 도로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병목현상도 심각합니다. 현재 도로 1평을 건설하는 데 1천~3천만 원이 듭니다. 이 예산을 어떻게 마련합니까. 그래서 연구 조사한 결과, 도시지하도로를 착안한 것입니다. 지하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흔히 남산 1호터널을 생각하고 환기나 사고위험에 대해 우려하지만 그건 기술이 낙후했던 20여 년 전에 만든 것입니다. 이제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 수 있어요. 흔히 고가도로 건설을 생각하지만 일본도 오늘날과 같은 선진공법이 없었던 과거에 60조 엔을 들여 고가도로를 만들고 지금은 도시미관을 해쳤다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또 오사카에서는 2005년까지 폭 80m, 높이 40m, 총연장 1백50㎞의 해저지하도로를 완공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5월에 타당성 조사를 하고 93년 하반기 착공 예정인데 2조4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은 어떻게 확보합니까? 서울시는 이미 2조6천1백억여 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데요.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하철·지하도로는 한 번 만들면 1~2백년 사용하므로 건설비용은 차세대가 부담한다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2조4천억 원의 절반 정도는 시 예산과 국고지원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반은 차관 등 차입금으로 마련, 차세대가 이를 부담하게 됩니다. 지하철·지하도로를 공사하는 데 돈 쌓아놓고 시작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금에 관한 것은 그 나라의 국력과 관리방식에 의해서 해결됩니다. 

●대중교통수단 우선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지하철 건설과 맞먹는 비용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지하철 공사가 시급한 것 아닙니까?
 지하철 3기를 빨리 끝내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 건설회사의 자체 시공능력으로는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서울시내의 교통체증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시간을 앞당기는 게 중요합니다. 따라서 3기 건설에 병행해서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자동차 대수에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동차에 대한 애착이 대단합니다. 한 마디로 길은 없는데 자동차는 타고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하에 길을 뚫는 방법밖에 없어요. 지하 40m 이하로 내려가면 보상금이 안 들어요. 보상금이 없는 공사로 차가 다닐 수 있는 지하도시가 형성되는 겁니다. 다만 지하고속도로 건설도 시민에게 미리 알리고서 계획을 입안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하도로 계획 입안과정에서 홍보가 미흡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서울시민의 식수는 과연 안전합니까?
 수돗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단계 계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첫째 상수원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한강유역관리를 종합 관리할 수 있는 ‘한강관리청 시설을 건의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천적인 수계관리를 해야 합니다. 둘째 취수 및 정수대책으로 취수장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영등포·노량지·선유 등 3개 취수장을 잠실 수중보 상류로 이전하는 공사를 연말까지 마칠 예정이고 정수처리 과정도 과학화할 예정입니다. 셋째 송수관 배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총 1만8천4백㎞의 수도관 중 교체대상이 4천2백㎞인데 올해 잘 침식되지 않는 스테인리스 동관으로 1천2백㎞를 바꾸고, 93년까지는 모두 교체할 예정입니다. 이러면 녹물이 안 나옵니다. 이 3단계 계획에도 1조원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그렇다고 방치해둘 수는 없으니 이것 또한 차세대가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독과정에서 중금속 오염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 때문에 물을 배달해 먹거나 약수를 떠다 먹는 가구가 많습니다.
 연간 수천억 원 쓰면서 어떻게 중금속을 나오게 합니까. 중금속은 없습니다. 아파트 단지, 개인주택의 물통이 더 문제입니다. 물통 청소를 안 하기 때문에 오염되는 일이 많습니다. 수돗물 자체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동안 대형사고 때문에 퇴임하거나 구속된 시장이 염보현 시장을 위시해 총 5명입니다. 또 서울시 고위관리들이 수뢰사건으로 구속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청은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옷깃의 배지를 가리키며) 이게 서울시 배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장 배지가 아니냐고 하지만 시청공무원은 누구나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시민 중 이 배지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서울시가 그동안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원인은 약속을 안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문제를 제쳐놓고 신뢰회복에 전념할 것입니다.

●한옥 보존지역으로 묶여 있던 가회동 주민의 서울시에 대한 원망이 대단합니다. 이것은 민원입니까, 아닙니까?
 원래 민원은 아니나 민원화됐다고 봅니다. 전통보존도 좋지만 개인의 재산권을 속박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완전한 해제는 아니더라도 현실적인 차원에서 자율에 맡기려고 합니다.

●통치권자의 임명에 따른 자리이기 때문에 시민의 소리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느끼거나 곤혹스러운 적은 없었습니까?
 시정운영에 정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곤혹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작년에 《시사저널》이 잠롱 방콕시장을 초청했을 때 국민의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서울시장도 그같은 청백리가 선출돼야 한다는 의견이 쇄도했습니다.
 옛날에는 비단옷 고기반찬을 미워해야 좋은 선비라고 백성이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 감각에 맞는다고 볼 수 없지만 정신적으로 비단옷을 안 입는 자세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사람의 정신 밑바닥에는 공무원에게 ‘선비정신’을 요구하는 게 있다는 걸 알지만 방콕시장이 바로 한국이 요구하는 공무원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자제 시행 후 바람직한 민간시장상을 말씀해주십시오.
 현직 시장인 내가 그것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유분방한 민선시장의 등장에 저해 요인이 됩니다.

●6월20일에 실시될 예정인 광역의회 선거에서 서울시가 담당해야 할 역할도 클 텐데요?
 서울시는 선거 그 자체를 관리하는 기관은 아니고 다만 선관위를 도와서 지원업무를 하게 돼 있습니다. 완벽한 지원업무를 수행해서 조용한 분위기 속에 공명선거가 이루어지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간부회의에서나 구청장회의·구청회의에서 내가 강조하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자치시대의 공무원, 자치시대의 행정수요에 대비해서 적응능력을 가지라는 것이고, 둘째는 광역선거에 대비해서 완벽하고 공정한 선거지원 업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서울시민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쓰레기 문제를 볼 때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 시 전체를 위해 시민이 협조를 잘 해 줍니다. 집에서 의당 분리수거를 합니다. 우리 시민이 이런 협조를 안 하겠다면 세금을 더 걷는 수밖에 없어요. 이건 협조사항이 아니라 같이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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