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한국인’의 생활문화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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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선정 白鍾華씨, 바둑?테니스 등으로 여가활용

 한국인의 생활문화는 어느 수준까지 와 있을까? 문화부 신설에 따라 삶의 질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때보다 활발한 지금 본지가 뽑은 ‘평균한국인’ 白鍾華씨(시사저널 제3호, 89.11.12)를 통해 한국의 평균문화생활을 알아보았다.

올해 39살이며 국민은행 종암동 지점 대리로 근무하고 한달에 74만1천원을 벌어들이는 ‘평균인’답게 삶의 문화도 꼭 평균점을 가리키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물론 없을 터이다.

그의 취미는 테니스와 바둑으로 둘다 프로의 경지이다. 테니스는 10년전 화양동 지점에서 근무할 때 ‘테니스 동우회’에서 동료직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배웠는데 실력이 꾸준히 늘어 85년부터 국민은행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요즈음에도 여름에는 새벽 5시30분에, 겨울에는 7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테니스를 한다. 군대에서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 하는 바둑은 현재 1급 수준이다. “차분하게 수를 읽는 가운데 인내심도 키우고 정신적인 안정감도 얻는다”고 바둑예찬론을 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조치훈과 이창호이다.

여기서 잠깐 한국인들의 문화생활을 살펴보자. 한양대학교부설 언론문화연구소에서 지난88년 2월에 전국의 성인 5천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화예술 수용및 향수능력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은 텔레비전시청(22.2%), 독서(15.9%), 음악감상(14.4%), 수면(9.9%)의 순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다. 이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 등산, 낚시 등은 낮은 비율을 보인다. 또한 여가를 이용해 운동을 하는 사람은 5.9%이고 바둑 또는 장기를 두는 사람은 3.9%로 나타났으니 이 ‘평균한국인’은 이런 희소치에 드는 셈이다.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로 그곳에서 국민학교까지 다녔다. 진도개?강강술래의 고장 진도는 소치, 미산, 남농의 3대로 이어지는 동양화의 산실이자 한국 서예의 대가 소전 손재형을 낳은 ‘예술의 땅’이다. 이런 진도 땅에서 유년을 보낸 사람답게 백종화씨의 생활 곳곳에서 ‘평균인’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높은 문화적 체취가 묻어난다. 그러한 보기로 그의 집에는 동양화 8점 있다. 그 가운데에 85년에 30만원을 주고 산 남농의 산수화도 있으며, 다른 그림들은 은행지점에서 열리는 도자기 및 동양화 전시회에서 구입했다.

그는 글씨를 썩 잘 쓴다. 정식으로 화선지에 붓들고 서예를 배운 적은 없지만 어렸을 적부터 글씨쓰기를 좋아하여 군대에서도 차트를 도맡아 썼고 지금도 직장에서의 크고 작은 경조사 때마다 글씨쓰는 일은 그의 몫이다.

퇴근후 집에 와서는 텔레비전도 즐겨본다. 뉴스, 드라마, 스포츠중계, 바둑 프로그램을 주로 보고 텔레비전 영화는 “실감이 안나서” 잘 안 본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조사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시청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뉴스(62.3%), 연속극(58.2%)이고 이어 영화, 코미디, 쇼, 교양, 스포츠의 순으로 나타난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좋아하는 남자탤런트는 이덕화이고 여자 탤런트는 김미숙이다. 이덕화는 쇼 프로그램의 사회자로서나 드라마 연기자로서, 또는 연예인 2세로 독특한 개성을 가진 남성다운 면이 좋고 김미숙은 “화려하지 않은 얼굴이 착해보이고 순수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 집에 있으면 그녀가 나오는 텔레비전 드라마 <울밑에 선 봉숭아>는 꼭 본다.

집에 ‘인켈 오디오’가 있지만 시간이 없어 음악을 별로 듣지 못한다. 대신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데 특히 배호의 ‘안녕’과 ‘마지막 잎새’를 잘 부르고 패티김 노래를 좋아해서 집에 패티김의 판이 석장 있다. 요즈음 가요는 “어쩐지 잘 안 맞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태진아의 ‘옥경이’는 좋아한다.

3년전에 비디오를 들여놓았다. 주로 아이들이 텔레비전 만화를 녹화하거나 만화비디오를 보는 데 이용할 뿐 어른들이 비디오 영화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일반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비디오 프로그램 중에 가장 많은 51.6%가 영화 프로그램이고 10.4%가 만화인 것으로 나타난 사실과는 다르다. 컴퓨터는 아직 없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사줄 생각이다.

극장은 한달에 한번 갈까말까 하는데 “토요일 밤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부인과 함께 심야극장에 간다. 어떤 영화를 정해놓고 집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종로3가에 가서 극장들을 둘러본 뒤 골라서 찾는다. 한국영화로는 <고래사냥> <어우동>이, 외국영화로는 <미션> <람보> <인디아나 존스> 등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최근에는 강남 브로드웨이 극장의 <로메로>를 인상깊게 보았으며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아이들과 함께 대학로에 있는 동숭아트센터에 가서 <공룡시대>를 보았다.

데이트할 때는 강태기가 출연한 <에쿠우스>를 위시해서 연극을 몇편 관람했으나 결혼 후에는 잘 보지 않았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장, 호암아트홀 같은 클래식 연주회장은 아직 한번도 안 가봤다.

책은 금융계통이나 경제관계 책을 주로 읽는다. 얼마전에는 김우중씨의 자전 에세이집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감명깊게 읽었다. 그 책에 대해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씨가 반론을 제기했다는 말은 들었으나 글은 안 읽었다.

일요일 오전에는 대개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오후에는 한 3시간 정도 테니스를 한다. 한달에 두번 정도는 테니스를 못하는 부인 崔貴子씨의 불만을 누그러뜨려주기 위해 운동을 하는 대신 가족나들이를 한다. 차가 아직 없으므로 서울을 멀리 벗어나지는 못하고 남산식물원이나 드림랜드, 서울랜드 등지에 간다. 운전면허시험에 두번 떨어지고나서 응시를 하지 않았는데 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차가 있으면 “집사람이 자꾸 나가자고 졸라댈 것 같아서” 천천히 사겠단다.

신용카드로는 국민마스터, B?C, 위너스, 롯데카드를 갖고 있으나 될 수 있으면 카드 사용은 안 한다.

90년도를 맞은 지금의 꿈은 빨리 차장으로 승진됐으면 하는 것이고 기회가 닿으면 부부 동반으로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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