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담은 ‘재래종 벼’ 7대째 재배
  • 편집국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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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이 다른 벼의 절반도 안되고, 병충해에 약하고 키가 커서 잘 쓰러지고 그렇다고 거름을 많이 줘도 문제가 되는 벼를 굳이 심고 거두는 농부가 있다. ‘밀다리쌀’ 혹은 ‘自光米’라 불리는 이 쌀은 잘고 갸름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방아를 찧어도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석탄2리에서 權承顔(45) 씨가 7대째 이 벼를 계속 재배해온 것은 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때문이다. 지금은 농삿일에서 손을 뗀 그의 아버지 權舜澤 씨가 이 쌀의 전래 경로를 찾고 있지만 아직 문헌상의 근거는 찾지 못했다. 그 전설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약 2백50여 년 전 조선시대 인조 임금 시절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이가 길림성 남방에서 ‘밭에 심는 벼’의 종자를 가져왔다. 당시 한강 하류 통진현(지금의 통진면) 조광리에는 물이 불어나면 그 위에 뜨는 ‘밀다리’라는 다리가 있었는데, 중국에서 가져온 벼를 이 밀다리 근처에 심어 수확을 했다. 밥맛이 괜찮아 임금에게 진상을 하자 밥맛에 반한 임금이 붉은 광채가 나는 것은 紅자광미로, 흰 것은 白자광미로 이름을 붙여주었다. 두 자광미는 서로 10리의 거리를 두고 심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지금은 자줏빛을 띤 교배종만 전해지고 있다.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까지 진상이 계속됐다.

 보통 쌀이 80㎏을 한 가마니로 치는 것과는 달리 ‘밀다리쌀’은 16㎏이 한 가마니이며 가격은 8만원 정도이다. “이 대통령에게 이 쌀을 올리면 쌀값 외에 새로 지은 한복을 몇 벌씩 얻어 입곤 했었다”고 밝히는 권씨는 매해 2백평 정도를 경작해 7~8 가마니를 수확해왔다. 방아를 찧고 난 볏짚은 키가 크고 윤이 나 고급 돗자리를 엮는 데 쓰인다고 한다.
지금은 인근 강화지역 군부대 장성들 사이에 은밀히 소문이 나 인사청탁 등과 관련하여 구입해 가는 경우도 많다는데 “쌀 선물하는 것이 뇌물로 보이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권씨는 말한다. 특히 농약을 쳐도 투자한 만큼 소출이 늘지않아 아예 무농약 재배를 해온 것이 ‘자랑 아닌 자랑’이라고 한다.

 “모판 만들기부터 수확까지 그렇게 손이 많이 갈 수가 없어요. 그래도 재래종 볍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해서 종자를 살려 두느라 해마다 수확을 해왔습니다. 이제 이 쌀이 널리 알려져서 귀한 대로 사람들에게 요긴한 음식이 됐으면 합니다”라고 그간의 어려움을 밝힌 권씨는 이 쌀과 관련된 자료와 정보가 모아져 후대에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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