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민중의식’은 내일의 힘
  • 편집국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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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 오탁번 대담/80년대 청년세대 위상과 90년대의 역할

 사회학자 韓相震교수(서울대 · 본지 객원편집위원)와 국문학자 오탁번교수(고려대 · 소설가)가 대담을 통해 80년대 우리 청년세대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이들의 사회변혁적 열망이 90년대 한국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조명해보았다.

 한상진=격동의 80년대를 이끌어온 힘은 다양합니다만 우리사회에서 보면 특히 젊은 세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예컨대 학생운동을 가지고 얘기한다면, 서구나 일본에서는 학생운동이 사이클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았던 데 비해 우리 경우는 멀리 일제시대로부터 60년 4 · 19혁명 이래 오늘날 까지 계속돼옵니다. 그리고 앞으로 90년대에도 청년학생세대의 사회변혁적 열망, 또는 운동이 사회에 주는 전위적 충격은 지속되리라 전망되는데, 이런 의미로 우리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역할은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히 특이한 역사적 전통을 가졌다고 하겠습니다.

 오탁번=역사발전이나 사회변동에 있어 젊은 세대가 담당하는 역할의 중대성이 필연적이고 당위론적이라는 데 동감합니다. 4 · 19당시 “자유당독재 물러가라!”는 구호가 나왔는데 그때부터 젊은 세대들내에 자연발생적 자아각성이나 혁신이 일어나지 않았나 기억됩니다. 가까이는 유신의 기간을 통과하면서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세력이 자연스럽게 학생중심으로 이어져왔습니다. 아무리 요즘 젊은세대를 ‘본적 불명’이요 ‘국적 불명’으로 평가 절하한다 해도 이상을 곧바로 현실화시키려는 젊음의 추진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하지 않았겠나 생각됩니다.

80년대 젊음이 꽃피운 민중문화
 한=우리사회를 보면 오랫동안 위로부터의 일방적 지배하에 ‘民’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가 이어져왔습니다. 이처럼 체질화된 권위주의적 사회구조하에서 소외된 ‘民’을 강력하게 대변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핵심세력으로서 청년학생세력이 부상하게 되는데 그것이 일단은 다음과 같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하나는, 5 · 16 이후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으려는 운동이 끈질기게 전개되어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라 노동자들의 생존권 옹호차원에서 직접적인 현장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확대와 민족적 주체성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민중문화’의 형태로 과감히 나오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80년대에 들어서는 통일에 관한 다양한 토론과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우리사회의 권위주의 체제와 군사독재적 성격,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금기 등을 타파하면서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었고, 80년대 후반기에는 아주 넓은 사회집단들에 의해 호응을 얻으며 역사적 전환점으로 돌입한 것이 아니냐하고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오=그런데 저는 젊은 세대의 개념을 꼭 연령에 의해 구분짓기보다는 한 개인의 사회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으르 어떻게 실현해나가는가 하는 태도와 연관시키고 싶습니다. 조선조 떄 임금이 어떤 부당한 일을 한다 하면 대궐앞에 모여 항의를 하는 것은 성균관유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8살에도 장원급제를 하면 젊은 세대에서 벗어났던 것이지요. 소속이 바뀌고 지위가 보장되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 개인의 생애를 청년 · 장년 · 노년으로 나눠볼 떄 젊은 시절의 가치관을 생애속에서 실현함에 있어 나이와 무관하게, 꺾여서는 안될 기백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청년시절 정치민주화를 주장했던 사람 중의 상당수가 후일 민중탄압의 선봉장으로 변신하는 사례를 볼 때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그간 젊은 세대의 모든 운동이 정치적인 것과 너무 밀착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과 우려에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를 거치면서 학생운동이 농활도 되고, 탈춤이나 연극 또 국어순화운동 등의 민중문화운동으로 다양화된 것은 아주 반가운 현상이라 봅니다.

‘운동의 다양화’ 절실하다
 한=중요한 지적입니다. 그간의 학생운동을 보면 정치적 문제의식은 첨예하게 발전된 반면 기성문화에 포섭당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자적 자율성을 가질수 있는 어떤 ‘대안적’인 문화는 형성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70년대말,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독자적 자기정체성을 갖는 문화가 대학을 시발점으로 상당히 넒은 범위의 젊은 세대들에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지요. 이 문화를 넒은 의미의 ‘민중문화’라고 할 때 여기에는 이제 전통적인 엘리트의식이라든가 입신출세 지향이 현저히 줄어들고 다양한 민중집단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의식이 하나의 가치관을 이루게 됩니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도시 빈민운동, 농민운동, 혹은 화이트칼라운동, 민중문화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운동’을 통해 사회제도의 억압성을 뚫어가는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한편 사회 각 부문에 침투해 제도안에서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측면입니다. 특히 대학 졸업 후 언론이나 기업 등에 파고들어가 조직내에 ‘건강한 민중성’을 수혈함으로써 비합리적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역할을 오늘날 젊은 세대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봅니다.

 오=사회 각 분야로 젊은 세대의 활동이 뻗어나가며 그들의 결집력이 조직의 모순을 시정하는 데 무시 못할 힘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문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젊은 세대의 운동방향과 운동공간의 다양화라는 점을 얘기할 때 아직 미흡한 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하는 사람은 연극무대를 통해서, 문학하는 사람은 문학이라는 창작공간을 통해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명실상부한 다양화가 이루어져야 할 겁니다. 여기에는 물론 사회억압적 요소에 묵시적으로 동조, 포기해온 기성세대의 소승적 자세에 일차적 책임이 있겠으나 이런 상황까지도 감안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안목을 갖춤으로써만 학생운동이 행동 위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바로 4 · 19가 있은 지 1년만에 군사쿠데타를 부른 우리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세대간 갈등 발전적 수용을
 한=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80년대를 통해 젊은 세대의 사회변혁운동이 충분히 입체화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권력에 대한 의지를 표출함으로써 미래를 볼 때 좀더 생산적인 운동으로 전개되기에는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하고요. 하지만 80년대를 마감하고 90년대로 진입하는 이 시점에서 제가 느끼는 바로는, 그러한 문제점에 대한 자성의 기류가 젊은 세대들에게 많이 있고, 또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성찰과 노력도 나오고 있다고 일단 여겨져 기대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80년대 청년세대의 특징을 좀더 짚어볼 때 하나의 가치관이랄까 삶의 양식 · 문화라는 면에서 대단히 다른 유형의 인간이 이미 태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커져가리라 보고 싶습니다.

 이들은 첫째, 기성의 귄위주의에 대해 체질적인 저항의식을 가지면서 지적 ·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권위를 절실히 요구합니다. 둘째, 개인 중심의 입신출세주의에서 벗어나 수평적 연대를 존중하고 소외집단과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려는 민중적 의식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셋째, 적당주의와 타협을 대단히 경계하며 원리원칙을 중시합니다. 넷째. 강력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므로 자연 민족통일에 대한 욕구와 감수성이 훨씬 강렬합니다. 때문에 이들의 사고와 감성과 행동은 기성세대의 그것들과 상당한 단절을 나타내지만 역사발전에서 보자면 대단히 도도한 흐름을 새로이 표출시키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그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저는 지금의 40대 · 50대가 지닌 일종의 식민지적 콤플렉스, 또 중국 · 일본 ·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 절대빈곤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강대국 대리전의 소모품 노릇을 한 것을 막연히 깨닫고 있으면서도 절대빈곤에서 탈출하기 바빠 미처 자기각성할 틈이 없었던 거지요. 이에 비하면 요즘 젊은 세대들이 미국 · 일본 · 소련 · 중국 등에 대해서도 그쪽 젊은 세대들과 대등한, 아니 오히려 우월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해 놀랍니다.

 한=세대간의 가치관이나 행동의 차이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구조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저만 해도 학생들과 자주 얘기를 해봅니다만 부모와의 정상적인 대화에 기대를 갖는 사람이 뜻밖에 아주 적어요. 특히 세대간 인식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통일문제’ 같은 것들이지요.

 북한에 대해, 또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원형적 공포를 지닌 것이 반공이데올로기가 체질화된 우리 기성세대의 모습이라면 젊은 세대는 6 · 25의 경험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습니다만 여러 가지 사회적 요소들이 작용을 해 우리사회의 많은 제약들을 거의 전위적으로 타파해가고 있습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급진적 단절의 모델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이처럼 극심한 세대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로부터 취해야 할 발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 행동 · 가치관들을 과감하게 흡수해야만 합니다. 또 갈등을 생산적 방향으로 수용하는 제도적 장치가 많이 개발되어야 하겠지요. 예를들어 생산현장의 민주적 노조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기성’에의 과감한 도전 통해 자신감 축적
 오=저는 최근 체코나 루마니아 등 동구 공산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민중운동의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새삼 굳혔습니다. 북한에서는 워낙 투철한 이념교육을 시키니까 남한의 젊은이 1백명에 북한 젊은이 1명만 풀어놓아도, 다시 말해 100:1이라도 싸움이 안된다 그랬는데 동구의 변화를 접하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박종철 고문치사에 “이것은 ‘짐승의 얼굴을 한 민주주의’가 아닌가” 하고 치를 떨던 기억이나 임수경 방북을 놓고 보더라도 … 제 경우는 심정적 동조를 하는 입장입니다만 … 역시 우리사회처럼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과감히 도전하기도 하는 이런 격변의 와중에서 축적되는 힘이 있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북한 학생 1백명에 우리 학생 1명을 던져도 다 우리 편이 되지 않을까, ‘편가르기’가 아닌 ‘이 학생’의 편이 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착각을 해봅니다.

 한=오늘의 한국사회가 외양상으로는 대단히 혼란스럽지만 민주화를 향한 실험과정에서 참된 힘이랄까, 국력,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시대로 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진단입니다.

 끝으로 90년대를 전망할 때 청년학생세대가 이제는 훨씬 더 개방적이고 신축성있는 사고로 국제적 안목을 넒혀가야 할 시대적 상황이 도래하리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또, 모든 것이 권력으로만 모이기보다는 꾸준한 연대성과 장기적 비전을 지니고 갈 수 있도록 사상 · 이념 · 운동이 다양화되어야 겠다는 것, 기존 관행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문화’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 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회적 염려를 자아냈던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만, 대승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젊은 세대의 싱싱한 이상, 그리고 변혁을 요구하는 잠재력을 기성세대가 보다 적극 평가하고 그 기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가는 것, 이것이 90년대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아니겠느냐 기대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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