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김정범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1.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늘진 곳에 仁術의 빛 밝혀

“무의촌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의료시설의 편중이야말로 분배 불평등이죠.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온전히 해결될 수 없지만 일단 몇몇 사람들만이라도 먼저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인천시 부평동 부평시장 로터리, 병원이 들어서기엔 어울리지 않는 시장 뒷골목에 자리 잡은 ‘평화의원’의 원장 金正凡씨의 말이다. 이곳에 병원을 낸 동기가 ‘소외계층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소외계층이란 가까운 부평공단의 근로자들과 시장주변의 도시빈민을 가리킨다.

 ‘좋은 의사, 인술을 실천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의대에 진학한 그가 소외계층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대학 서클활동의 일환으로 서울 사당동, 하월곡동 등 빈민촌으로 주말진료를 다니면서 그들의 의료실태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지역을 4년이나 다녔는데도 원천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수준은 크게 향상된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봉사활동이란 게 빈민촌의 의료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대생들에게 한국의 의료현실을 알리는 실험장이 되고 만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더군요.” 결국 그는 그 지역에 뿌리박지 않는 한 어떤 의료활동도 순간적이고 시혜적인것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지역사회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지역주민을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진료하기 위해서는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분야의 기초진료를 할 수 있는 가정의가 좋을 것 같아 아예 가정의 인턴 ·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가정의학 전문의 자격을 딴 지난해 4월 심사숙고 끝에 공단이 가장 밀집한 부평 근처에 병원을 내기로 하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사실 이 병원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빈민지역 활동을 같이 했던 기독청년의료인회가 4천만원을 모금해주고 제 뜻에 공감하는 선배들이 1천만원을 보태줘 겨우 마련했어요.”

 그가 관심을 갖는 의료대상은 여느 의사들처럼 당장 몸이 아파서 찾아오는 환자들만은 아니다. 기본체력도 못갖춘 채 열악한 작업환경속에서 직업병과 산업재해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근로자들에게 그는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죽을 병이 아니면’ 병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작업환경이 나쁘기 떄문인지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진폐환자들입니다. 가래가 많이 나오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근로자들을 진찰해 보면 영락없이 진폐증이에요. 틀림없는 직업병인데도 탄광근로자에게만 이 병을 인정해주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의 병원에서는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진단이나 치료가 필요한 근로자들에게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의료전달체계를 이용해 마땅한 다른 병원을 소개하는 것도 그의 할 일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9시(퇴근후의 근로자들 때문에 진료마감시간이 늦다)까지 일하면서도 한달 수입은 그 나이 또래의 일반 직장인과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의사가 특권층인 시대는 가고 있습니다.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소외계층의 의료문제에 눈을 돌리는 건강한 생각들이 나날이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인 의료제도의 개혁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인술이 그 공익성을 되찾게 될 겁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