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소득이 나라경제 망친다
  • 김태동 (성균관대교수 · 경제학)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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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 토지공개념은 성장의 촉매… 적극 실시로 분배정의 세워야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여당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의 기조에 대한 논란이 새삼 일고 있다. 정책당국자들이 그동안 안정에만 치중하고 경제성장에는 등한히 하여 경기부양책의 실시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민자당측, 특히 경제대책 6인특별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금융실명제의 실시가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더 연기했으면 좋겠고, 토지공개념 관련법안도 정기국회에서 통과는 되었지만 시행을 보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다.

성장우선론자들은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도 미국 · 일본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경제규모는 그들의 몇십분의 1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성장해야 나눌 것이 생기지, 지금부터 각 계층의 몫을 너무 따지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따라서 분배정의를 위한 금융실명제나 토지공개념제도는 뒤로 미루어져야 한다.

임자 안밝히는 돈, 생산투입 기대 못해

언뜻 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편적인 논리로서 더 중요한 여러가지 것들을 숨기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선 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거래에 백두산, 한라산 등 가명을 쓰지 말고 본인명의가 아니라도 좋으니 실재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자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최고 50%(방위세 · 주민세를 합치면 63.75%) 인데, 이자나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10% 분리과세(교육세 · 방위세 등 포함 16.75%) 되고 끝나는 조세제도의 불공평도 약간은 해소해보자는 것이다.

82년 이철희 · 장영자의 대형 어음사기 사건 뒤 ‘금융실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가명을 애용하는 일부 가진자들의 압력에 밀려서 10년 가까이 미루어오다가 내년부터는 실시하겠다는 것이 盧대통령의 약속이었다. 불경기라서 늦추어야 한다면 왜 ‘단군 이래의 호경기’라고 어용학자들이 집권자에게 아부하던 86~88년의 기간중에는 실시하지 않았는가?

금융실명제의 실시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 자체도 동의하기 어렵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들이 금융실명제를 채택하고있고 그들이 또 수백년 전부터 관행으로 실시해 오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은 89년에 약 5조원에 달하였다. 여기에서 세금을 덜 징수하는 만큼, 근로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소수를 위한 특혜 때문에 다수가 그만큼 희생을 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규칙을 가지고서는 구성원의 근로의욕, 사업의욕을 유지 · 계발시킬 수 없고, 따라서 경제의 성장도 기대하기 어렵다.

가명제를 찬성하는 이들은 주장할 것이다. 생산성의 발전을 위해서는 결국 소수의 손에 자본이 집중되어야 대규모의 공장도 건설할 수 있고, 첨단산업을 위한 연구개발투자도 가능하다고. 그렇지만 본명을 떳떳이 쓰지 못하고, 가명이나 借名을 하는 사람들이 국세청의 눈을 속여서 덜 낸 세금으로 그런 생산투자를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緣木求魚이다.

금융실명제는 오히려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것이다. 가명통장을 통한 사채거래가 줄어들 것이고, 상장회사의 소유주에 의한 주식의 위장분산이나,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등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의 정상화로 주가의 움직임은 보다 예측가능한 안정성을 보이고, 시장금리는 하향세를 보일 것이 기대되며, 따라서 산업투자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더러운 지하경제가 밖으로 드러나는 만큼, 경제는 깨끗해지고, 성장잠재력은 확충될 것이다.

땅값안정이 일할 의욕 되살린다

토지공개념제도도 그것이 제대로만 실시된다면 분배의 형평뿐만 아니라 성장을 촉진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필자가 토지개발공사, 국토개발연구원 및 건설부의 자료를 종합하여 추산한 바에 의하면 땅값 상승을 통한 자본이득(capital gain)은 88년에 2백12조원, 89년에 3백조원(추정치) 에 달하였다. 그 두 해의 연간 GNP가 각각 1백23조원, 1백37조원(추정치) 이었음에 비추어 볼 때 GNP라는 생산국민소득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불로소득이 발생한 것이다. 이 불로소득의 대부분이 50만명 내외의 땅부자들에게 돌아갔다. 나머지 국민들은 정반대로 불로손실을 당하여 내집마련이 그만큼 힘들어지고 집세폭등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동서고금에 이러한 경제의 失政을 찾아보기 어렵다.

땅값 안정은 불로소득과 불로손실을 동시에 줄여서 분배의 악화를 막고, 근로자들의 주생활을 안정시켜 임금인상 요구도 그만큼 줄일 것이다. 임금인상이 10% 아니라 20%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1천만 근로자들에게 추가로 돌아가는 것은 명목금액으로 6조원 정도이다. 이것이 큰돈이지만 땅값 · 집값이 올라 수백조원씩 앉아서 뺏기는 것에 비하면 그 수십분의 1에 불과하므로 20% 임금이 올라도 근로자들의 생활수준은 높아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인상의 부담을 불로소득계층이 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기업을 열심히 경영하는 산업자본가들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가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산업자본가들도 토지공개념 도입을 전폭 지지했던 것이다. 1억~2억원의 돈으로 아파트 한 채도 못 사는데 그것으로 비싼 땅을 사서 제조업을 시작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비싼 땅값은 이렇게 제조업을 빈껍데기로 만들고 성장을 저해한다. 토지공개념제도가 제대로 확립되면 땅값 안정을 가져와서 생산기업가의 기업의욕과 근로자의 일할 의욕을 부활시키고 경제성장에 강력한 촉매로 작용할 것이다.

일부 부유층 · 재벌 싸고도는 논리는 곤란

최근 성장우선을 내세우면서 토지공개념등 구조개혁을 미루거나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우리 국민경제의 장 · 단기적 발전성장보다는 일부 부유층과 재벌을 비호하는 논리를 펴고 있음에 불과하다. 민자당 경제특위의 구성원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의혹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2월12일 민자당측과 정부관료들 사이의 회합에서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제도를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발표하였지만, 이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경주해왔던 趙淳경제팀이 신당 발족과는 관계없이 계속 경제운용을 맡는다 하더라도 작년 토지공개념 관련법안 추진과정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여러가지 개혁후퇴조치를 취할 것이 예상되는데, 하물며 6인 특위 안에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사 중 한 사람이 부총리가 된다면 復古調의 정책방향으로 1백80도 전환할 가능성이 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입법부를 완전 장악하게 된 현정부가 깨끗한 정치를 하느냐, 5공식으로 재벌들에 의존한 지저분한 정치를 하느냐이지 성장이냐 안정이냐의 정책선택이 아니다. 경제안정 없이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것은 기초공사 없이 63빌딩을 건설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장과 안정은 이와같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안정은 경제의 기초이며 골격이다. 성장은 산업자본가와 근로자와 농민의 땀의 결정체이다. 거짓이름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면서 정치를 더럽히고 생산자들의 일할 의욕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은 우리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나 안정을 위해서나 백해무익한 존재인 것이다. 이 불로소득계층을 위한 견강부회의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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