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개혁 물살 ‘한국식당’도 문열어
  • 배양수 (미원통상 사업개발부)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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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시장’ 생겨나고 거리는 활기… 관광객 유치 분주

베트남이 경제개혁 정책인 ‘도이모이’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 나라에 대한 한국상사들의 관심도 점차 고조되어가고 있다. 작년 8월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정부관계자와 민간업체 대표 등 19명의 비공식 민관합동통상사절단이 베트남을 방문한 이후 이 나라는 특히 한국기업들에게 유망한 해외투자 대상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속에 최근 호치민시(구 사이공)에는 최초로 한국식당이 문을 열기도 했다. 한국의 한 상사원이 현지에서 보낸 최근의 호치민시 풍경을 소개한다.

베트남이 그들의 내부문제 해결과 외부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채택한 것이 ‘도이 모이’(개혁)이다. 어쨌든 그 ’도이 모이‘ 덕택에 우리 한국인들이 다시 베트남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작은 규모지만 한국의 상품을 베트남에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저런 연유로 해서 필자도 여러차례 베트남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9월말에 이어 4개월여만에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마침 설날이 가까워온지라 방콕에서 호치민시로 들어가는 비행기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웃돈을 주고 표를 구해 1월17일 10시 ‘에어 베트남’ 특별기를 탔다. 도이 모이란 ‘새롭게 바꾼다’는 뜻의 베트남어이다. 최근에 베트남을 몇차례 방문한 사람이라면 ‘에어 베트남’ 기내에서부터 ‘도이 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번 방문길에서 경험한바 기내식 상자가 종이에서 깨끗한 플래스틱으로 바뀌었고, 전에 없던 콜라 빨대를 준다. 남들은 무심히 지나칠지 모르지만 베트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조그마한 변화도 놓칠 수 없게 된다. 공항에서의 세관신고 절차도 매우 간편하게 바뀌었다. 외화와 귀중품만 신고하면 된다. 디지틀 광고판에는 <사이공 해방> (사이공 지아이퐁) 지에서 발표하는 그날의 환율이 표시된다. 1월17일은 미화 1달러에 4천1백50동임을 나타냈다.

놀라운 사실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호치민시 한복판에 한국식당이 개업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李英華(22) 양이 개업한 이 식당엔 ‘한국음식점’이라는 한글간판이 붙어 있다. 동코이 거리의 콘티넨탈호텔에서 독립궁쪽으로 약 50미터쯤 가다가 좌측편에 있다. 음식은 李양이 손수 만들기도 하고 베트남인에게 조리법을 가르쳐서 만들기도 하는데, 된장과 고추장은 한국에서 가져다 쓰고 나머지는 모두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것을 가지고 만든다고 한다. 맛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한국과 비교해 낯선 이 베트남 땅에서 ‘수출입국’의 최선봉인 상사직원들의 피로를 덜어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불고기, 김치찌개, 된장찌개, 참치찌개, 조기구이 등이 주 메뉴인데 가격은 대략 2달러 정도이며, 15평 정도의 내부는 비교적 깨끗하여 주인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식사시간에 각 회사에서 온 상사직원들이 인사하고 서로 정담을 나누는 만남의 장소도 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읽을 거리도 준비하고 있다. 가끔은 베트남인들도 들러 식사를 하기도 한다. 머지않아 더 많은 한국식당이 생기고 붐비기를 기대해본다.

베트남 정부는 금년을 ‘관광의 해’로 정하고 30만명 정도의 외국인을 유치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에 따라 낡은 건물의 도색과 도로 재포장 사업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호텔 부족난을 덜기 위해 사이공 강가에 선상호텔이 이미 개업을 했고, 시내에 빌라를 개조하여 만든 미니호텔이 많이 생겨났다. 기존의 호텔도 내부도색을 다시 하고 커튼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명절을 음력설이다. 마침 설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때인지라 베트남인들이 성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치민시 근교의 ‘투득’에 있는 공동묘지로 가는 길은 성묘인파로 무척 붐볐다. 묘지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서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향을 피우고 음식과 꽃을 제단에 놓고 묵념을 한 후에 폭죽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묘지 부근은 수없이 터지는 폭죽소리와 연기로 어수선하기까지 했다. 같이 동행한 ‘닥’이라는 친구는 설 전날 성묘를 하는 것은 설날 아침에 망자가 집에 찾아오도록 초청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준다.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건기이면서 설날을 앞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4개월여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은 확실히 더 활기차 보였다. 거리에는 임시 설시장이 서고, ‘웬 후에’ 거리에는 꽃시장이 생기고, 가게엔 밀수품을 포함하여 많은 상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 새해’라는 뜻의 ‘쭉 믕남모이’를 외친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록 가난하지만 설을 축하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는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늦은 밤 거리를 다녀보면, 집이 없어 노숙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이것은 이 나라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잘 알려주는 베트남의 단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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