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손질만 남은 ‘統獨’
  • 본 ● 金昊均 통신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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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 경제동맹 협상 시작… ‘통일후의 위상’ 논의도 활발

독일 통일문제는 이제 可否의 차원을 떠나 시기와 절차의 차원으로 옮아갔다. 그리고 그 속도는 몇주전만 해도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제의돼왔던 모든 단계론을 뛰어넘어 서독이 동독을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낳고 있다.

2월13일 서독을 방문한 모드로 동독총리는 “양측이 합의한 즉각적인 조치는 공동위원회가 협상을 시작하는 것” 이라고 말함으로써 협상결과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반해 서독의 콜 총리는 그 자신이 모드로와의 두차례에 걸친 회담에서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동독의 ‘원탁회의’가 촉구하기도 한 1백50억마르크의 ‘무상원조’를 거부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지원은 통화동맹을 신속히 실현하는 것” 이라고 밝혔다. 양측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2월20일부터 통화 및 경제동맹에 관해 협상에 들어갔다.

독일 통일에 관한 논의는 지난 3개월 동안 급속히 진전되었다. 11월17일 취임한 동독의 모드로 총리는 취임연설에서 동 · 서독간의 폭넓은 협력관계 수립을 목표로 하는 ‘조약공동체’案을 제안했고 뒤이어 서독의 콜 총리는 11월28일 10개항에 걸친 3단계 통일안을 제의했다. 이후에 진행된 양측의 협상에서 동독은 동독의 정치 · 경제개혁과 함께 서독의 경제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서독은 동독에서 과거의 체제를 철저히 청산하는 정치 · 경제개혁이 이루어진 후에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며 이 과정에서 동독이 서독의 요구를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동 · 서독의 협상에서 동독의 경제상황을 가까운 시일안에 눈에 띌 만큼 개선시킬 수 있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새해들어 서독으로 이주하는 동독인들의 수는 하루 평균 2천여명으로 더 늘어났다. 2월초에 동독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어떤 경우든 동독에 계속 머무르겠다는 응답자가 62%로 지난해 11월의 84%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통일을 원하는 응답자는 75%로 작년 11월의 48%에 비해 큰폭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여론의 변화를 의식한 모드로 총리는 1월말에 소련을 방문해서 동 · 서독 문제를 중심으로 고르바초프와 회담한 후 귀국해서 2월2일 소위 ‘중립화 통일안’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모드로 총리의 소련 방문을 앞두고 고르바초프는 “동 · 서 독일인뿐만 아니라 4개 연합국 대표들도 독일 통일이 원칙적으로 의문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고 밝힘으로써 이제 독일 통일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출발점은 “두개의 독일국가가 있다는 것, 4강의 의무가 있다는 것, 유럽통합과정이 있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하고 이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통화동맹 부작용 많다” 이견도

2월4일 세계경제협의회가 열린 스위스 다보스에서 모드로 총리로부터 동독의 심각한 경제난에 관한 설명을 들은 콜 총리는 “대규모의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귀국후 콜 총리는 고르바초프와의 긴급회담에 합의하는 한편 재무장관, 경제장관, 노동장관, 법무장관, 내무장관 등으로 구성된 ‘독일통일’ 각료위원회를 설치했다. 2월10일 소련을 방문한 콜 총리는 방문결과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소련이 마침내 독일 통일을 허락했으며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에 대해 소련외무성 게라시모프 대변인은 콜 총리의 기자회견이 “상당히 일방적”이라고 평가했고 서독 제1텔레비전의 모스크바 특파원도 고르바초프가 콜에게 밝힌 소련의 입장은 이미 지난 1월말에 모드로 총리와 협의한 내용과 같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 총리가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원칙적 동의를 개인적인 성공으로 돌리려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월의 자를란트 주선거에서 기민당은 사민당에게 20%의 표차로 참패했고 이에 따라 콜 총리의 ‘두려운 상대’로 알려지고 있는 라폰테인이 사민당 총리후보로 거의 확정된 데다가 최근 사민당의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월초에 실시한 동독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 사민당의 지지율이 54%로 압도적이다. 따라서 콜 총리로서는 동독기민당에 대한 선거지원은 물론 12월2일로 예정된 서독연방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통일열기’라는 민족주의적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콜 총리가 동독에 통화동맹을 제시한 것도 이러한 정치적 배려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서독정부의 통화동맹 제안에 대해 사민당은 찬성하면서도 즉각적인 경제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독정부는 물론 ‘원탁회의’도 통화동맹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이에 앞서 동독경제가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동독통화가 태환성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제안에 대한 서독내에서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서독 연방은행의 한 당국자는 지금 단계에서 통화동맹이란 “나무다리에 반창고”를 붙이는 격이라고 지적했고 서독정부의 경제평가교수단인 ‘5현자들’은 “잘못된 수단”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들이 통화동맹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 통화가 폐지되고 서독 마르크가 동독에서도 유통될 경우 서독기업과 경쟁할 수 없게 된 동독기업의 도산이 줄을 잇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동독에서 15~20%의 실업률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貨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자칫 극심한 인풀레이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독일 통일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장차 통일된 독일이 동 · 서관계에서 차지할 위치와 독일이 통일된 후의 동 · 서관계에 관해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통일된 독일의 나토에서의 지위와 여타 국경, 특히 폴란드와의 국경을 보장하는 문제가 핵심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서독측의 입장은 대체로 세가지로 나눠진다.

첫번째 입장은 통일된 독일은 당연히 나토가맹국이며 지금의 동독영토에까지 나토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입장으로서 기민당 원내총무 드레거로 대표되는 서독내 초보수파의 입장이다. 이들은 폴란드와의 국경문제를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협상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국경문제에 관한 한 “그것은 통일된 독일의 정부와 의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 라고 주장하는 콜 총리도 이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일의 통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폴란드이다. 두번째 입장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가맹국으로 남되 지금의 동독영토에는 나토군을 주둔시키지 않는다는 겐셔 외무장관의 공식적 입장이다. 이들은 폴란드 국경문제는 더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세번째 입장은 통일된 독일은 나토에 남되 군사적 명령계통에는 들어가지 않고 정치적 협력관계만을 갖는 프랑스와 같은 지위, 즉 ‘제휴관계’만을 갖는다는 사민당의 입장이다.

눈길 끈 ‘협력적 안보체제’ 구상

독일 통일문제에 관한 한 이웃나라들의 이해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끊임없이 표명해온 소련에게는 고르바초프의 독일담당보좌관인 팔린이 말한 바와 같이 세력균형이 “독일문제의 핵심” 이다. 독일 통일이 가속화되는 것을 보고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이탈리아의 안드레오티 외무장관은 유럽통합과정에 박차를 가할 것을 공동제의했다. 독일 통일문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영국도 겐셔 외무장관의 방문을 받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그것은 “정돈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최근에는 겐셔 외무장관이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 ‘협력적 안보체제’의 내용이 보도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원래 소련에 의해 제안되었던 이 안보체제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하나의 공동안보기구로 전환시킨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에서의 독일문제를 보자면 통일된 독일은 일단 나토에 남되 ‘협력적 안보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소련군은 계속 지금의 동독영토에 주둔한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군에 머무는 한 소련군도 철수하지 않겠다”는 소련 외교담당 정치국원 야코블레프의 선언과 거의 일치하므로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평가되고 있다.

또한 독일 통일과정을 동 · 서 긴장완화 및 유럽통합과정을 촉진하기 위한 ‘엔진’으로 사용한다는 이 구상의 기본의도는 ‘유럽공동의 집’에 관한 다쉬체프 건의서(p34~35참조)의 기본입장과 거의 같다. 동독에서 3월18일의 선거가 끝난 직후에 갖기로 합의된 동 · 서독과 4개연합국의 회담과 올 가을로 예정된 ‘유럽안보협력회의’를 거치면서 독일 통일의 절차와 동 · 서관계의 변화는 구체적인 모습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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