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가 던진 파문
  • 김당 기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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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입경쟁 부활’지시 이후 찬방 양론 들끓어… 교사들은 “본말전도된 논쟁” 비판

요즈음 입 가진 사람이라면 저마다 한마디씩 들먹이고 찬방양론이 분분한 ‘고등학교 경쟁입시 도입’ 문제는 잘 알다시피 대통령의 지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2월9일 盧泰愚대통령은 문교부의 올해 업무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고등학교 평준화제도는 입시과열을 완화시키는 성과는 있었으나 학생들의 학력을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시키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며 평준화제도는 “서울의 8학군지역 등 특정학군의 부동산가를 자극하는 등 역작용이 있으니 상반기중에 개선방향을 마련해 내년부터 실시할 수 있도록 하라”고 鄭元植 문교부장관에게 ‘지시’했다. 그 자리에서 盧대통령은 특히 현행 평준화제도와 관련, “서울의 8학군은 이상과열로 아파트 가격을 자극하고 사회적 위화감마저 초래하는가 하면 자기 분수와는 맞지 않게 무조건 평등해야 한다는 그릇된 평등의식을 낳고 있다”며 “과학교고 · 어학고교 등 영재교육을 위한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육여건이 좋은 사립학교 등은 입학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모집토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사항은 반드시 시행되고야 만다’는 국민의 통념까지 가세하여 이 문제는 단숨에 충격과 혼란, 그리고 성급한 찬반논쟁을 몰고왔다.

일찍이 교육개혁심의회(85년부터 87년까지 시한부로 설치 · 운영된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 이하 ‘교개심’)에서는 지난 87년말 해체에 앞서 종합건의서를 통해 “희망하는 인문계 고교는 학군내에서 학교별 전형을 실시토록 허용하되 시 · 도교육위원회에 시행에 관한 사항을 위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평준화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교개심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평준화 판을 깨기로 작정한 것은 현행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하향 평준화’를 개선, 21세기의 국제경쟁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秀越性교육을 추구하자는 명분에서였다. 그러나 88년 8월에 문교부에서 이 건의를 토대로 시 · 도 교육감이 지정하는 고교는 학군내에서 학교별 전형을 실시하도록 허용하는 교육법시행령 개정안을 마련, 국무회의에 올렸으나 부결되고 말았다. 한편 중앙교육심의회(88년에 설치된 문교부장관 자문기구. 이하 ‘중교심’)에서도 89년 4월에 교개심의 건의를 발전시킨 ‘고교 평준화제도 개선안’을 문교부에 건의한 바 있다. 그 개선안은 시 · 도 교육감에게 소도시의 평준화지역 조정권을 위임한다는 내용 말고도 고입 연합고사 실시지역 학생들에게 희망하는 학교를 복수로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른바 ‘학군내 선복수지망 후배정’ 방식을 골자로 담고 있었다. 문교부는 그해 7월 중교심의 건의를 받아들여 안동, 목포, 군산 지역의 경우, 해당 도교육감에게 평준화 해제여부를 결정하도록 위임함으로써 사실상 경쟁입시 부활을 허용했다.

또 89년 7월20일에 대통령 직속기구인 지역균형발전기획단(단장 文熹甲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서도 지방의 기업활동 여건이나 교육 · 생활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지역간 기회의 격차를 해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기본전략’을 노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그 기본전략에는 “지방의 고교 평준화지역 사립고에 경쟁입시를 부활, 납입금 징수를 자율화할 것” 등이 포함되었다. 그뒤 9월4일 노대통령은 주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에 가야 명문대학에 갈 수 있고 서울의 명문대학을 나와야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오늘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는 지방시대를 결코 열 수 없다” 고 밝히고 “현재의 고교 평준화제도는 그대로 시행하되 원하는 사람은 경쟁입시를 치러 들어갈 수 있는 명문고교를 각지방에 육성하겠다” 고 말했었다.


‘폭탄선언’이란 반응까지

따라서 이번에 나온 대통령의 ‘지시’는 위와 같은 일련의 ‘진언’이나 본인의 ‘소신’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지시는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대통령의 한마디로 갑자기 바뀔 수는 없다”는 원론적인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또 충분히 예견되는 시행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내년부터라고 시행시점까지 못박아 지시했다는 점에서 시행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시큰둥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그 다음날인 2월10일 문교부에서는 ‘폭탄선언’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는 대통령의 지시를 ‘뒷받침’하는 문교부의 평준화제도 개선방향에 대한 ‘안’을 3가지로 요약 발표했다. 그 안의 골자는 ①과학고, 외국어고, 예 · 체능고 등 특수목적고를 확충해 나가고 ②여건이 성숙한 사립학교에 대해 경쟁입시를 허용하여 사학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특성화를 유도하며 ③고교의 수용능력이 늘어나 경쟁성이 약한 중소도시에 대해서는 평준화제 적용을 해제해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의 골자 중 ‘경쟁입시 허용’ 부분말고는 이미 문교부에서 시행해온 것으로 새롭다 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대통령의 지시내용보다 덜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교육전문가들은 “파급효과를 우려하는 집행부처에서 오히려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이라는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지 열흘이 지나도록 지금껏 문교부의 경쟁입시 부활에 대한 대원칙은 “고교 평준화 지역내 사립학교 경쟁입시 부활방안을 검토중” 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대상이 서울을 포함한 전국인지, 국 · 공 · 사립고를 다 포함하는지, 그리고 ‘여건이 성숙한’이라는 말은 일종의 허가제를 뜻하는건지 아직 모호한 상태다. 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모두 ‘검토’가 끝나는 올해 상반기중에 확정한다는 것이다. 한 실무자의 말마따나 문교부의 고민은 경쟁입시 대상학교를 적게 지정하면 반대를 무릅쓰고 시행해 얻는 효과가 미미하고, 많으면 평준화의 골격이 흔들릴 위험이 크다는 데 있다.

따라서 경쟁입시 도입에 대해 들끓고 있는 현재의 찬반양론은 ‘신중한’ 문교부의 방침에서보다는 ‘성급한’ 언론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달리 말해 대통령의 한마디로 술렁거리는 중3들과 학부모들에 대해 문교부는 ‘모든 것을 검토중이니 6월까지는 굿이나 보면서 기다리라’ 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반면 ‘기다릴 수 없는’ 언론에서는 문교부의 뼈대에 살을 붙여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경쟁입시 도입 또는 평준화 해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통령의 지시에서 나타나듯 현행 평준화제도는 ‘학력의 하향 평준화’ 현상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현행제도는 서울의 8학군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인구집중, 부동산가격 폭등 같은 사회병리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셋째, 형식적으로는 평준화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3류고가 존재하는 현실속에서 학군이라는 지역적 이유만으로 원하는 학교를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권과 질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고 사립학교의 설립취지에 맞는 학생 선발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다. 넷째, 1,3류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행제도는 경제적 · 지역적 편차를 심화시켜 그런 구조에 편입할 수 없는 서민계층의 소외감을 가중시키고 누구나 균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제공이라는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다섯째, 수재와 둔재를 한 교실에 몰아넣은 현행제도는 학습집단의 이질화를 초래해 교육의 秀越性 추구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하향평준화’-전제의 오류

한편 경쟁입시 도입을 반대하는 논리는 원칙적인 반대론과 평준화건 경쟁입시 부활이건 먼저 교육환경 개선이 이뤄진 다음 일이라는 신중론으로 나뉜다.

우선 현직교사들은 대개 경쟁입시 도입의 전제로 삼은 ‘학력의 하향평준화’ 현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학력이 떨어졌다는 아무런 실증적 근거가 없는데도 문교당국은 막연한 심증만 가지고 큰 탈이라도 난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박정웅교사(숭문고)는 “대학입시라는 최종 관문이 남아 있는 한 중학교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경쟁이 유지될 수밖에 없고 지금도 외국에 견주어 우리 아이들은 불쌍한 생각이 들 만큼 책가방이 무겁고 보충 · 자율에 시달림받고 있다”면서 평준화로 인해 학력이 떨어졌으니 경쟁입시를 부활해야 한다는 논리는 ‘전제의 오류’임을 지적한다.

교육전문가들은 8학군 같은 괴물을 때려잡는 도구로써 입시정책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심성보씨(한국교육연구소 연구 · 기획실장) 같은 이는 “인구집중, 부동산가격폭등 같은 사회병폐는 교육정책으로 고칠 수도 없거니와 과거 정권에서처럼 입시정책을 다른 사회정책의 수단으로 삼을 경우 시행착오와 부작용만 초래할 뿐” 이라고 지적한다.

반대론자들은 이른바 8학군현상은 정부의 잘못된 강남 개발정책 때문에 생긴 것이지 평준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사람의 자율성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경쟁을 허용하고 등록금도 자율화(인상)한다지만 이는 사학의 재정난을 사학 스스로 해결하라는 주문이고 이는 곧 학부모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8학군 같은 괴물이 살아 있는 한 서민들의 소외감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경쟁입시를 부활했을 경우 생길 망국적 과외붐속에서 받을 상처에 견주면 ‘새발의 피’라는 주장도 있다. 李圭煥교수(이대 · 교육사회학)에 따르면 학력에 따른 임금차, 부동산가격차 등 사회적 불평등조건 때문에 평준화제도가 서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석이 있고 중산층에도 평준화 해제를 바라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제도적으로’ 서민대중에게 좋은 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학업능력이 차이지는 학생들이 한 반에서 공부하는 현 제도에서는 이른바 수월성 추구나 영재교육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보편성 추구라는 것이다. 또 학력차이가 나는 아이들이 한데 섞인 반을 ‘이질집단’으로 간주하는 발상은 학력 중심의 엘리트교육만을 강조하는 지배계급의 교육관(이데올로기)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런 교육정책 아래에서 중 · 고교는 대학을 가기 위한 예비학교나 입시학원으로 전락될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쟁입시 도입을 둘러싼 찬반논쟁에 대한 가장 큰 비판론은 ‘애당초 잘못 낀 단추’ 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전 · 현직 교사들은 평준화제도에 문제점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교육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대통령의 한마디로 국가 교육제도가 금방 바뀔 수는 없는 것이며 따라서 지나치게 과잉반응을 보이는 세태를 못마땅해 하고 있다. 교사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교육정책은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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