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불안의 ‘뿌리찾기’
  • 박순철 편집위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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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은 인플레의 폐해를 이렇게 요약했다. “인플레는 질병이다. 위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치명적이다. 그것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한 나라, 한 사회를 붕괴시키는 질병이다.”

이렇게 ‘망국병’으로까지 불리는 인플레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월중 소비자물가는 81년 이후 거의 10년 동안에 가장 높은 1%의 상승을 나타냈다. 이러한 물가상승세가 계속될 경우 연율로는 두자리대의 인플레시대를 다시 맞게 되는 것이다.

정보당국은 1월중의 물가상승이 설날 연휴와 농축산물가격의 급등 등 계절적 요인에서 크게 기인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설명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경제내에 인플레를 다시 불붙일 요인들이 너무나 많이 잠복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엄청나게 풀린 돈, 과소비의 열풍, 부동산가격의 동요와 되살아나는 인풀레 심리, 임금상승 등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물가불안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 올해 실시가 예상되는 지방의회 선거와 안정보다는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으로 보이는 보수신당의 정책방향도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돈의 물줄기부터 바로잡아야 경제안정 가능

우리 경제내에 쌓인 인플레 압력을 우선 수요 쪽에서 보면 무엇보다 그동안의 급속한 통화팽창을 지적할 수 있다. 물가의 상승이란 뒤집어놓고 보면 돈가치의 하락이며 돈이 늘어난 만큼 재화와 용역의 생산이 늘어나지 않으면 돈의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의 통화동향을 보면 우려할 만큼 돈이 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4조2천억원이라는 사상최대의 통화팽창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도 총통화는 월중평균 2조6천억원이 늘어나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2.4%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이 큰 폭의 통화팽창은 주로 지난해 ‘11 · 14 경제종합대책’ 이후 경기부양과 증시부양 등을 위해 풀려나간 돈이다. 그러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이 돈은 기업의 운용자금을 원활하게 하는 선에서 멈추었고 생산적 투자를 적극 부추기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업과 대주주, ‘큰손’들이 거의 소유하고 있는 5조원의 뭉칫돈이 단자회사 등에 대기성 자금으로 몰려 있다고 한다. 총통화의 8%에 해당하는 이 거대한 규모의 대기성 자금이 혹시 부동산 쪽에라도 다시 몰려가면 어떤 사태가 빚어질 것인가?

趙淳부총리는 최근 잡초와 곡식이 섞여 있는 밭에 비료를 주면 잡초만 무성해지므로 전면적 경기부양보다 ‘김매기’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돈의 물줄기가 구조적으로 왜곡돼 있는 상황에서는 이것부터 바로잡아야 투자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물가위협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케인지언들은 인플레의 원인을 총수요가 총공급을 초과하는 이른바 인플레 갭에서 찾는다. 현재 총수요의 구성요소 중 투자와 수출이 부진한 상태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소비지출이나 정부지출로 한정될 것이다. 팽창예산의 비판을 받고 있는 정부지출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최근의 과소비현상이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이 과소비현상은 불로소득의 과다한 존재와 부동산값의 폭등으로 내집마련에 절망한 충동소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나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수요측의 인플레요인은 상당부분 우리경제의 구조적 왜곡 또는 불균형과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경제개혁의 정치적의지가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된다.


안정과 경제정의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

다음으로 공급측면의 비용인상요인을 보면 무엇보다 요즘 다시 들썩이고 있는 부동산가격을 들 수 있다. 최근 전세값이 크게 뛰고 있고 오른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 사람까지 생겼다는 가슴아픈 뉴스마저 들린다.

임대기간의 연장조치가 전세폭등 사태를 촉발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땅값의 상승이 집값의 상승으로, 이는 다시 임대료의 인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먹고 입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생활공간이다. 따라서 주거비의 상승은 사람들의 인플레 심리를 직접적으로 자극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공장이나 사무실 임대료의 상승은 생산비를 올려 공산품값과 서비스료를 뛰게 하고 농지의 가격상승은 농축산물의 생산비를 올려 농축산물 가격상승의 압박요인이 된다.

비용인상 요인 가운데 임금상승도 중요한 항목이다. 따라서 임금의 합리적 조정은 물가안정에 중요한 요건이 된다. 다만 일반물가의 상승이 임금인상의 요구를 초래하고 이것이 다시 물가상승으로 연결되는 중남미식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물가안정의 단호한 의지가 필요해진다. 특히 물가상승이 불로소득의 존재 등 경제적 부정의와 연유된다고 근로자들이 느낄 때 임금인상의 요구는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높은 물가는 시장구조와도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많은 산업이 독과점되어 있는 경우 독과점 기업들은 시장지배력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임의적으로 생산물의 가격을 인상시키고 이는 전반적 물가상승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고가의 상품을 수입, 수입가격의 몇배로 팔아 폭리를 얻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사의 제조품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것도 이러한 시장지배구조의 한 단면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공급측면 또는 시장구조면에서도 중요한 물가불안 요인들은 구조적 불균형의 문제, 즉 경제개혁의 과제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보수신당이 출현하면서 느닷없는 성장과 안정의 논쟁이 불붙어 일단 ‘안정 속의 성장’으로 수렴되었지만 안정과 경제정의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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