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개념의 군축 바람직 물꼬는 남한이 먼저 터야
  • 최영(외교안보연구원교수 국제정치학)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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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단거리핵전력 이전하고 공격무기 감축 요구를

 ‘대결에서 협조를’ 구가한 몰타 미 · 소정상회담은 2가지 중요한 합의를 선물했다. 금년 6월말 개최예정인 미 · 소정상회담시 ‘전략핵 50% 삭감에 조인키로 합의한 것과 빈의 CFE(유럽재래식전력감축협상)회의를 잘 진척시켜 90년대 첫해의 당당한 성과를 올리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군축의 90년대에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①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신사고’에 따라 소련군 총참모장직을 신세대가 맡고 있으며 이들 신세대는 과잉무장을 배제하고 질적 매개변수 즉 ‘합리적 충분성’ 원칙을 중시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 충분성 원칙이란, ‘공격하기에는 불충분하나, 방어하기에는 충분한’방위적 성격의 군사교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위적 방위개념에 입각한 전략을 뜻한다.

 ② 미국은 ‘쌍둥이 적자’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게 군사예산을 감축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군산복합체의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체니 미국방장관은 1994년까지 1천 8백억달러의 국방예산 삭감을 발표한 바 있다.

 ③ 유럽에서는 ‘트리플 제로 옵션’이 제기될 것이다. 이 정책은 ‘전략핵+중거리핵+단거리핵’ 3차원에 걸친 감축을 겨냥하고 있다.

 이른바 ‘유럽공동의 집’을 마련케 할 군축 · 화해노선이 정착할 90년대에, 이 노선은 ‘냉전의 漂流島’인 한반도만을 비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암흑시대를 청산하고 통합된 경제생활권을 형성할 유럽의 ‘신질서’가 하나의 유형이 되어, 90년대에 가서는 한반도에서도 서서히 군축의 노력을 전개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 ‘고르바초프식 구상’을 한국이 원용하여 평화지대형성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방위적 방위’개념에 입각한 합리적 충분성 원칙을 오히려 한국이 먼저 협상의제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이 원칙에 따를 때 북한이 공격형 무기의 65%를 비무장지대(DMZ) 가까이에 배치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게 된다. 북한이 지난 88년 11월 7일에 제안한 ‘평화보장의 포괄적 4개원칙’에는 유독 병력감축만이 언급되어 있다. 공격형 무기의 감축이 따르지 않는 병력삭감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90년대에 들어가서는 ‘고르바초프 도식’을 한반도에 적용하도록 DMZ의 남과 북은 함께 애써야 할 것이다. 이 물꼬는 한국이 터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원칙 수락을 북한측에 요구할 때에는 한국과 응분의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DMZ근방에서 후방으로 북한의 공격무기를 철수케 하는, 이른바 ‘후진’(disengagement)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주한미지상군이 보유하고 있다는 SNF(단거리핵전력)를 철거, 미해군함정으로 이전시키는 의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미국과의 사전협의가 필수적이다.

 INF(중거리핵전력) 폐기조약이 체결된 이 지구촌에서 SNF의 지상배치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우리와 꼭같은 운명인 분단 동 · 서독에서 SNF 완전철거의 요구가 메아리치고 있다. 한국의 땅덩어리에도 SNF가 존속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SNF의 바다로의 이전은 미국이 또한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토마호크(잠수함 발사 순항미사일 SLCM의 속칭) 체제로의 변신이다. 이 경우 미국은 한 · 소관계의 진전에 겨룰 수 있는 대북한 접근의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이 긴밀히 협의하여 SNF문제를 해결케 되면 미국은 이른바 전통적인 ‘대양전략’ 즉, ‘白鯨전략’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그만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좋을 것이다. 한국은 對美협상을 성공시킨 유리한 고지에서 북한의 공격형 무기를 후방으로 철수케 할 협상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북한의 공격형무기 후방 이동과 주한미지상군 보유 SNF이전의 동시타결’을 성사시킬 수 있다.

 이같은 일괄타결은 90년대의 남북한 군축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서울-평양軸’이 형성되어 ‘한반도 안전보장의 한국화’를 지향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안전문제를 미국과, 통일문제는 한국과 논의한다는 2분법을 줄곧 전개해왔거니와, ‘서울-평양軸’이 형성되면 남북한 당사자가 그대로 부각되는 것이다.

 ‘서울-평양軸’ 형성후 주한미지상군 철수문제가 서울과 워싱턴간에 긴밀히 고려되어, 구체적인 일정 즉 단계설정이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마도 90년대에 있어서 남북한 군축은 이러한 방향으로 진로를 잡을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허무를 되씹으면서 한민족의 공동생활권을 다져나가는 가장 원초적인 작업, 즉 ‘군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90년대에는 목격케 될 것이다.

 역사는 서두르고 있다. 우리들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냉전의 孤島’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남과 북은 90년대에 들어가서는 이같은 군축의 노력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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