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龍’으로 떠오르는 태국
  • 방콕 박순철 편집위원 ()
  • 승인 1990.01.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 일본 · 대만 등 외국투자 쇄도…지난해 경제성장률 11%에 달해

 태국의 1년은 3계절로 돼 있다는 농담이 있다. ‘덥고’(hot), ‘더 덥고’(hotter), ‘가장 더운’(hottest) 계절의 1년이라는 것이다. 열대의 태국 기후가 괴로운 외국인들이 지어낸 익살이지만 태국사람들이 ‘서늘한’(cool) 계절이라고 말하는 1월중에도 한낮의 수은주는 섭씨 30도를 쉽게 오르내린다. 이 열대의 태국사람들은 온대지방에서 찾아온 외국인들에게는 철없을 정도로 낙천적이고 걱정없는 사람들로 보인다. 월말의 봉급날이 되면 단숨에 돈을 써버려야 후련하다는 듯 백화점이나 식당을 찾아나서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꽉 들어차 보통 때도 교통체증이 심각한 방콕의 도로는 좀체 움직이질 않는다. 월급 다음날은 평상시에도 높은 직장의 결근율이 더욱 높아진다.

 열대 태국의 이런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의 ‘다섯번째의 小龍’ 또는 ‘제5의 신흥공업국’(NICs)으로 곧 올라설 것이라는 보도가 신기할 수도 있다. 또한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1%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도 일종의 이변처럼 보일 수도 있다.

 80년대 전반만 해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태국경제가 80년대 후반에 들어 이처럼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갑자기 개발도상국 사이에 경제우등생으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태국의 장기적인 경제사회개발계획의 수립을 위해 총리실 산하에 설립된 국가경제 사회개발위원회(NESDB)의 부위원장인 타마락 카라피싯씨는 그 이유를 급속한 수출증대와 활기찬 투자로 요약했다.

 “수출정책에 변화가 있었지요. 종전에는 생산해 쓰고 남는 것을 수출했으나 이제는 수출을 하기 위해 생산을 합니다. 세계시장의 수요변화에 맞춰 생산품을 다양화하는 겁니다.” 그는 수출증대의 주요한 원인으로 태국 바트貨의 환율이 그동안 안정됐다는 점도 인정했다. 하여튼 태국의 수출은 88년에 전년대비 33.9%의 폭발적 증가세를 나타낸 데 이어 89년에도 29% 증가했다. 89년의 수출액은 5천1백50억바트(1달러=25바트).

 수출경기의 호조로 투자도 자연 활기를 띠었고 이는 다시 경제를 고도성장의 궤도로 밀어올리는 또하나의 추진력이 되었다. 내국인 투자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해외로부터의 투자도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자국화의 평가절상으로 국제경쟁력이 크게 위협받게 된 일본 · 대만의 투자가 크게 늘어났고 그전에는 몇몇 기업에 불과했던 한국기업의 투자도 88년부터는 껑충 뛰었다. 태국투자청(BOI)의 통계에 의하면 외국인 투자신청액은 86년48억바트, 87년 2백52억바트, 88년 6백4억바트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BOI의 완차이 마하타난쿤 공보진흥국장은 일본 · 대만 · 한국의 평가절상과 노동력 공급부족을 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급증의 주요한 원인으로 보았다.

 방콕시내 라차다피섹거리에 있는 탐낙타이레스토랑은 세계 최대의 식당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타이궁전’의 뜻을 가진 이 야외식당은 종업원만 1천2백명이나 되고 손님을 한꺼번에 3천7백여명이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종업원들이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넓은 식당을 달리며 음식을 배달하는 이곳에는 태국사람들도 많이 찾지만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 홍콩 등 동남아 각국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외국관광객들로 밤마다 붐빈다. 수많은 사찰 등 풍부한 관광자원과 자유분방한 분위기, 그리고 ‘미소의 나라’로 알려진 태국사람들의 친절에 끌려 관광객은 지난해 5백만명까지 늘어나 태국의 외화 수입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태국경제의 붐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처럼 장미빛 일색인 태국경제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태국경제가 직면한 두가지 큰 제약요인으로 사회간접시설의 부족과 고급인력, 특히 기술인력의 부족을 꼽고 있다. NESDB의 타마락부위원장은 현재 태국의 국민학교 졸업생 가운데 중학교 진학률이 43~45%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향후 경제개발의 핵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수요의 폭발적 증대와 부동산 투기에 따른 물가불안, 소득의 불평등 등 태국경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낡은 아파트 건물을 연상시키는 우중충한 NESDB건물의 사무실에서 태국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 고급관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태국경제가 단단한 바탕 위에서 발전해 나아가리라는 예감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는 단순한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안정이 함께 하는 성장’ ‘고른 분배가 있는 성장’ ‘참여 속의 성장’을 강조했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