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 로비에 밀리는 조세정책
  • 김재일 편집위원보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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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토지세 인하 방침은 ‘토지공개념의 전면후퇴’ 의미

 왜 하필 지금 문제가 되는가? 그 움직임은 과연 정당한가? 정부가 최근 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확정한 종합토지세 인하 방침에 대해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종합토지세법은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하여 올해부터 시행케 돼 있는데 세금을 한번 거둬보기도 전에 법개정 논의가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법개정 방침이 확정된 가운데 국회에서 다시 완화된 개정안을 심의, 통과시킬 경우 정부와 국회의 신뢰도는 크게 손상될것이 틀림없다. 설령 법개정이 옳다고 하더라도 한번 시행조차 못해볼 정도로 현실을 무시한 ‘졸속입법’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변덕이나 국회의 신뢰성 손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개정 움직임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데 있다. 개정방향이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조정작업일 뿐이라는 趙淳부총리의 말에도 불구하고 종합토지세의 완화는 지난정기국회에서 어렵게 입법된 토지공개념의 전면적인 후퇴를 뜻한다. 종합토지세제는 바로 토지공개념의 골간이기 때문이다.

 종합토지세란 지금까지 필지별로 과세하던 방법을 바꿔, 전국의 사유지를 소유자별로 합산하여 토지가 넓을수록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제도로서 토지의 과다보유를 억제하고 토지투기를 막아 땅값 안정과 토지공개념을 확립하자는 것이 입법취지이다.

 그런데 값비싼 도심지 땅을 보유해 5%의 최고세율을 적용받게 된 재벌그룹 소속의 관광호텔, 백화점, 병원, 은행 등 관련업체가 문제를 제기했다. 관련업계는 늘어난 세부담을 고객부담으로 건가할 수밖에 없고 임대료, 의료수가 등의 인상으로 물가앙등이 불가피하다며 아우성이고 정부는 조세저항 우려를 구실로 개정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2월부터 정부와 국회에 엄청난 수준의 로비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진 토지재벌들의 종합토지세 인하 주장은 부당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성균관대의 金泰東교수에 따르면 금년 전국 사유지의 땅값은 총 1천조원으로 추산되는데 종합토지세를 적용한다해도 토지분 재산세는 총 4천억원선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근로소득 60조원에 대해 근로소득세로 1조5천억원을 징수한 사실과 6백만원 짜리 자동차 소유자가 1년에 30만원의 세금을 낸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토지세는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아직까지 대토지 소유자들이 적은 세금을 내고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다는 말이 된다.

 중산층을 비롯한 국민들의 조세저항 우려또한 정부가 겉으로 내세우는 구실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 1평의 땅도 못가진 사람이 전체의 72%로서 종합토지세의 부과 대상도 아닐뿐더러 지가안정을 위해 세금이 제대로 걷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28%의 대부분은 1가구 1주택을 소유한 중산층으로 이들 또한 ‘집을 넓히는 꿈’을 이루기 위해 땅값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계층이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종합토지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본다.

 이같은 사실은 바로 정부의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지난 6월 경제기획원은 전국적으로 과세표준액이 3천만원 이하인 사람은 재산세과세대상자의 97.6%인 7백94만5천명인데 종합토지세제의 실시 이들의 토지제산세 부담은 88년보다 21.6%가 줄어들고, 3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인 사람은 전체대상자의 2%인 16만4천명으로 이들의 세부담 역시 8%가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이세제로 세부담이 느는 사람은 3만5천명으로 전국민의 0.1%에도 못 미친다. 또 최고세율 5%의 적용대상은 서울에 20~30건, 전국적으로도 50여건에 불과한데 결국 힘있는 극소수의 로비에 정부가 밀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토지세 인상으로 인상분이 고객 · 세입자에게 전가돼, 임대료, 입주금, 음식값 등이 오르고 물가를 자극, 경기후퇴를 가져온다는 논리 또한 터무니 없는 것으로서 종합토지세는 직접세이기 떄문에 조세전가가 안된다는 것은 조세의 원론에 해당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면 이제와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앞에 다가온 지방자치제 선거 때문이다. 이 세제가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땅 가진 지방유지들의 비위를 거스를 것이란 점을 뒤늦게 알아차린 민정당이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정부 또한 재벌들의 로비를 심하게 받아온 터여서 어렵지않게 총대를 멜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당 · 정 · 재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종합토지세 법안 심사소위위원이었던 평민당의 趙世衡의원은 “이제와서 문제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종합토지세법은 정부쪽에서 나온 법안을 극히 일부분 수정 통과한 것일 뿐 아니라 관련업계의 로비가 심했던 지난 연말에도 경제부처 실무자회의에서 “이 정도의 법은 실시할만 하다”는 결론을 내린 사실을 들어 “하자 없다”고 주장 했다.

 전후 사정을 살펴볼 때 대다수 국민은 종합토지세의 실시로 이득을 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산층의 조세저항이나 물가앙등 우려는 특권층의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종합토지세제 개정과 관련한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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